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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사 1호, 강전유 나무종합병원 원장

나무들에게는 내가 ‘장준혁’

나무들이 하나둘 몸을 푸는 계절이다. 바싹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연초록 새순이 뾰족이 얼굴을 내민다. 강전유 나무종합병원 원장(73세)은 누구보다 먼저 나무의 마음을 읽어 주는 나무의사다. 나무와 함께 생활한 지 47년째. 임업연구원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1976년, 우리나라 최초로 나무병원을 세워 나무의사 1호가 됐다. 그의 병원에서 10여 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후 독립해서 병원을 세운 후배 나무의사들이 20명 정도. 이들이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나라 나무들의 건강을 수호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나무종합병원에서 만난 강전유 원장은 소나무 가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니 가지에 주홍색 알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알 상태로 겨울을 난 후 4월쯤 부화해 수액을 빨아먹는 응애. 그냥 두면 잎을 누렇게 퇴색시키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나무는 아프면 아프다고 겉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걸 빨리 읽어야 하지요.”

나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병해충은 수백 가지. 그 외 영양이 부족하거나 대기오염, 유해물질의 피해를 입거나 태풍이나 폭설에 외상을 입는 등 환자나무의 증상은 가지각색이다. 그는 제 발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나무들을 위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왕진가방을 챙겨 두고 있었다. 다음날엔 속리산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의 상태를 점검하러 떠난다고 했다. 50년 가까이 나무와 함께해 온 삶이니 그동안 나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이 질문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들 그렇게 짐작하는데, 아니에요. 나무를 특별히 사랑하거나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반드시 살려 내겠다는 집념으로 매달립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나무를 보면 내 눈빛도 행동도 달라진다고.”


드라마 〈하얀 거탑〉이 한창 인기일 때, 능력 있고 냉철한 장준혁과 따뜻하고 인간적인 최도영 중 환자 입장에서 누가 더 좋은 의사인가 이야기되곤 했었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면 장준혁 같은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게 대세. 그는 나무들에게 장준혁 같은 의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무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차를 타고 가다가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나무가 보이면 곧장 내려 원인을 찾아보고, 해당 시-군의 산림과에 조처를 당부하는 그가 말이다. 그가 돌아보지 않았다면 죽어 베여 나갔을 나무들이 수없이 살아났다. 수령 600년이 넘는 우리나라 최장수 소나무인 정이품송도 무지한 사람들의 손길에 숨막혀 가던 것을 그가 살려 냈다.

“귀한 나무라 특별 취급한다면서 나무 주위에 펜스를 치고 흙을 두텁게 덮어 놓았더라고요. 지표에 가까이 있으면서 산소나 영양공급을 받아야 할 잔뿌리들이 깊이 파묻히면서 숨이 막히고 영양실조가 되었죠. 잎이 적고 죽은 가지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흙을 한꺼번에 치워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줘서도 안 될 일. 10년 동안 조금씩 흙을 걷어 내고, 잎에 영양제를 공급했다. 1989년 처음 만나 인연을 맺어 왔는데, 워낙 고령이라 항상 걱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제게 수많은 나무들을 살려 놓았으니 천당 가지 않겠느냐고 하대요. 그러면 나무를 살리느라 셀 수 없이 많은 병해충을 죽였으니 지옥 가는 것 아니냐며 웃지요.”

800년 된 송광사 향나무의 경우, 해충의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스님들이 “살생을 할 수 없다”면서 해충제를 뿌리지 않으려 했다. 결국 그때그때 약 치는 일은 아랫마을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없던 직업인 ‘나무의사’ 1호가 되었을까?

“중학교 때 농고에 가겠다고 부모님을 졸랐어요.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죠. 그래도 제 결심이 워낙 완강하니까 아버지와 타협을 본 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후 농대에 진학하는 거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나고 자랐으니 자연과 가까운 환경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시에서 벅적대며 사는 삶이 왠지 싫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에게 “장가갈 밑천을 미리 달라”고 해 경기도 광주군(현재 서울 방이동)에 땅을 마련,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복숭아, 딸기, 포도를 가꾸고 닭도 키웠다. 3년 후부터는 임업연구원으로 들어가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화폐개혁으로 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 임업연구원에서 15년 동안 나무에 해를 끼치는 병충해를 연구-진단했던 그는 “이것도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퇴직, 나무병원을 세웠다.

“국가 소유의 중요한 나무에 문제가 생기면 연구원들이 달려가지만, 개인 소유의 나무는 병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었죠.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일이니 내가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복토에 의한 산소 부족 수세쇠약


복토 제거


복토 제거 후 자갈처리에 의한 산소 공급


산소 공급에 의한 수세회복(2000~2001년 영월).

‘나무치료’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 후 10년간 고전

그런데 꼬박 10년을 고전(苦戰)했다. 나무가 병들면 베어 내면 그만일 뿐, 치료해서 살린다는 인식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멀쩡히 연구원 생활을 하던 사람이 리어카에 해충제가 든 분무기를 싣고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였다.

“남들은 어떻게 견뎠느냐고 하는데, 무슨 일이든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게 힘들다는 걸 몰라요. 일단 시작한 이상 포기나 물러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구멍가게도 3년은 버텨야 단골이 생기는 법 아닌가요?”

부자동네에서 나무를 치료하고 나오는 길에 한 재벌 회장집 정문 앞에 있는 소나무가 병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벨을 누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 정원사가 있으니 당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는 소리만 들었다. 다음에 보니 그 나무는 베이고 없었다. 오랜 세월 끝에 멋진 모습을 갖춘 나무가 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온 그의 노력 끝에 우리나라에 ‘나무치료’라는 영역이 자리 잡았고, 요즘 그는 개인 소유 나무들은 일일이 돌봐 주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나무치료’를 집대성하는 책도 써왔다. 의뢰 받는 일 중 90%는 국가 소유의 나무들.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치료하는 거목도 많아 나무 하나의 치료 예산이 500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나무도 사람과 똑같이 내과, 외과 치료를 받고 수술도 받는다. 청와대는 특히 나무에 이상이 생기면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소나무 잎이 벌겋게 타들어가 소란이 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근처에 있는 대리석을 염산으로 닦으면서 생긴 가스 때문이었다.

수령 600년이 넘는 우리나라 최장수 소나무인 정이품송.
그는 일흔이 넘었지만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 모습도 나이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나서기 싫어하고 돈 욕심도 없이, 내 하는 일에만 전념해 왔다”고 자신의 삶을 요약하는 그. 그가 가장 기쁨을 느끼는 때는 자연과 함께할 때다. 방이동이 개발된 후 퇴촌에 땅을 마련해 요즘도 주말이면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씨 뿌리고, 김을 매고….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제일 좋아요”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한다. 나무에게 왕진 가기 위해 새벽 4~5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때 차를 멈추고 해뜨는 것 지켜보기, 안개가 피어나는 산골에서 커피 한잔 마시기, 비 오는 바다 바라보기. 그는 “이런 나이에도 그런 때는 눈물이 나”라며 감회에 젖는다. 그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사람보다 낫지. 한 군데 서서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버텨 내는 것을 보면 대단해요. 몇 백 년을 그렇게 끈덕지게 살아왔으니. 살아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사진 : 문지민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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