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펑크록의 시조 크라잉넛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노는’ 밴드

빨간색 가죽 재킷에 스키니진(skinny jean·딱 맞게 입는 청바지), 주렁주렁 체인에 선글라스. 평균 나이 33.5세인 그들은 여전히 악동(惡童)이었다.

“악중년(惡中年)보단 낫잖아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이미지 아니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더욱 짓궂은 대답으로 응수하는 이들, 국내 펑크 밴드의 선구자라 불리는 크라잉넛(Crying Nut)이다.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에두르지 않고 뿜어내는 노랫말 때문에 노래방 애창곡이 된 크라잉 넛의 데뷔곡 ‘말달리자’. “저희보다 더 미친 사람들 같던데요?” 보컬 박윤식 씨는 노래방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단다. 1996년 <말달리자>로 데뷔한 크라잉넛은 우리나라 펑크록의 시조로 불린다. 영국 노동계급의 하위문화로 생겨난 펑크는 1970년대 록의 체제화에 반발하면서 본래의 과격하고 정열적인 사운드를 강조한다. 반항과 계급적 저항이라는 록 음악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펑크록을 하는 그들은 소위 ‘곱게 자란’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다.

“어려움 모르고 자란 애들이 무슨 펑크를 하겠느냐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어요. 그때 고민하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펑크라는 건 규정짓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규정지을 때 이미 펑크가 아닌 것 같아요.”(한경록)

“처음에는 ‘너희는 펑크가 아니다’라는 주변의 시각이 저희를 괴롭혔어요. 그때 ‘뭐 어떠냐? 우리는 어차피 브리티시(British) 펑크가 아니라 조선펑크를 하는 건데’라고 했죠.” (이상면)

어떤 규율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 자체가 펑크란다. 김인수(키보드) 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멤버들(기타 이상면, 드럼 이상혁, 보컬 박윤식과 베이스 한경록)은 동부이촌동에서 초·중·고를 함께 다녔다. 이상면과 이상혁은 쌍둥이 형제. 네 사람은 2002년 12월 군대도 함께 갔다. 이들과 두 살 위 김인수 씨 사이에 거리감은 없을까.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던 인수 형을 만난 게 13년 전이에요. 서로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리감 같은 것은 없어요.” 다섯 명 모두 동조하는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본다. 그룹 대부분이 멤버들 간의 불화로 오래가지 못하는 데 비해 한 명의 멤버도 바뀌는 일 없이 13년을 함께해온 그들이다. 기자의 질문이 어리석었다.


유럽에서도 열광적인 반응


“2005년 7월, 스웨덴 트라스톡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땐 정말 벅차올랐어요. 동양인 밴드로는 처음 초청 받았는데, 처음엔 야유를 보내던 관객들이 공연 후에는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오더군요. 저희도 놀랄 만큼 열광적인 반응이었죠.”(한경록)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동양인 밴드의 음악성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다. 그 텃밭에서 오로지 음악으로 소통해 열렬한 환영을 이끌어낸 것이다.

“요즘엔 잘하는 인디밴드들이 너무 많아요. 그중에서도 저희가 다 인정하는 친구들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그 외에도 참 많죠.”

인디밴드는 Independent(독립적인) Band의 약자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밴드다. 이미 인디밴드를 뛰어넘는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고, 수많은 공연에 불려 다니기 바쁜 크라잉넛이 과연 아직도 인디밴드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음악을 만드니까요.”(박윤식)

“인디의 장점은 자유로움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많은 팬을 확보하지 못해도 진정성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이상면)

멤버 모두 작사·작곡한다. 그렇다면 대중을 배제한 채 항상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만 하는 걸까. “곡을 만들어 멤버들한테 들려주었을 때, 멤버들이 별 반응 없으면 ‘아! 잘 못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나머지 네 명을 만족시키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이상혁)

“그렇게 보면 우리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네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소비하는 입장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대중을 위해 곡을 만든다고 볼 수 있겠군요.”(이상면)

음악을 만들 때 이들은 스스로가 온전한 주체이자, 대중의 입장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객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유로우면서도 서로의 평가라는 구속에 매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디밴드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실력 있는 인디밴드들이 수없이 많지만, 크라잉넛이나 자우림처럼 성공한 케이스는 천 팀에 하나 나올까 말까다. 그들에게선 언더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이 엿보인다. 그것은 그들의 꿈, 목표와도 연결돼 있었다.

“올해는 록 페스티벌을 멋지게 만들어 팀들을 많이 소개하고, 대한민국의 혁명을 이루는 게 꿈입니다.” 한경록 씨는 혁명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주먹을 꼭 쥔다. 이들은 인터뷰를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만큼 장난을 치다가도 음악 얘기에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그런 그들이 음악을 안 했으면 뭘 했을까.

김인수 씨는 공무원이란다. 3년 전 결혼한 아내가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이상면 씨나 생명과학을 전공한 이상혁 씨는 전공을 따라 직업을 택했을 것 같단다. 오른쪽 눈에 시퍼런 멍을 달고 나타난 한경록 씨는 “만화방에서 좋아하는 만화나 실컷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3년째 복싱을 배우고 있는 한경록 씨는 며칠 전 복싱을 하다 얻은 멍을 사진기 앞에서도 숨기지 않는다. “숭례문 화재의 아픔을 제 얼굴로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그대로 찍어 주세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한 사람 한 사람 대답할 때마다 서로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기 바쁜 그들. 그러다 박윤식 씨가 내뱉은 마지막 말에 금세 조용해진다.

“그런데 직장인이 됐어도 밴드 만들어서 음악을 했을 것 같아요. 워낙 좋으니까….”

크라잉넛에게 음악은 놀이일까, 직업일까.

“직장 동료가 매일 붙어 있다면 지겹기도 할 텐데,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놀이거든요. 놀 때도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 음악 하며 놀고, 우리 일이 공연인데 그때도 놀지요. 노는 게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음악은 진보하고 있을까. “진보까지는 모르겠고,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상혁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느는 것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주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에 대한 자괴감이 는다는 것이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모두 음악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악기 레슨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연주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그들이 만족하고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자신들이 음악을 한다는 그 자체이지, 음악 수준이 아니었다.

크라잉넛은 변화하고 있었고, 변화에 목말라하고, 그 목마름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인 듯했다.

“‘물밑의 속삭임’이라는 남녀 듀엣 곡을 만들었는데, 이 노래에 어울리는 여자 목소리를 찾다가 심수봉 선배님이 생각났어요. 녹음해서 보내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시던데요.”

이들의 노래 중에는 심수봉 씨가 피처링해 준 곡도 있다. 격하고 요란한 펑크록과 애절한 트로트의 만남이다. 감성적이고 여린 심수봉 씨의 목소리와 투박한 느낌의 박윤식 씨 목소리가 멜로디를 따라 묘하게 어울린다. 크라잉넛의 노래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변화무쌍했다. 홍대 뒷골목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크라잉넛의 연습실은 멤버들이 직접 꾸몄다.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노란색 페인트칠도,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전등도 그들의 작품이다.

“저희가 데뷔한 지 십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 연습실을 마련했죠.”

어깨를 으쓱하며 연습실을 둘러보는 이상혁 씨의 눈길에 애착이 그대로 묻어난다. 탁자에는 담뱃갑, 악보, 재떨이, 책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오늘 날짜에는 ‘인터뷰’라고 씌어 있다. 사무실 오른쪽으로는 녹음실이 있다. 연습하고 녹음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담뱃재도 재떨이도 없다. 악보와 음악 관련 책들, 그리고 악기만이 자리하고 있다.

어지러운 사무실에 비해, 악기와 악보만 놓여 있는 연습실.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피우던 담배를 끄는 크라잉넛. 그들은 음악에 대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놀고’ 있었다.

음악 하는 크라잉넛보다 우리가 모르는 인간 크라잉넛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 크라잉넛과의 인터뷰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었다. 아니, 음악이 전부였다.

“탐구생활이요.”(이상혁) “모든 것이죠.”(한경록) “생존 이유?”(김인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박윤식)

크라잉넛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모든 것을 던질 만큼, 평생을 탐구해야 할, 그래서 살아가는 이유였다.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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