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KBO 사무총장 된 최고의 해설가 하일성

내가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인 하일성 씨를 처음 만난 것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고교 교사를 하던 1981년이었다. 학교에 부임한 첫날,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를 인사시킨 사람이 하일성 씨다. 그는 당시 그 학교 체육교사로 있으면서 방송에서 야구 해설로 막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1990년대 초 KBS 복도에서였다.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방송을 하고 있었고, 그는 KBS 해설위원으로 있었다. 내가 방송국 출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를 만나는 일도 늘어났다. 나는 야구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 야구장에도 가고, 중요한 경기는 TV 시청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해설에 감탄을 했다. 그는 항상 정확했다. 마치 예언처럼, 경기는 그의 말대로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해설가 하일성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해설을 하면서 준 신뢰감 때문이다.

“이제 공개하는 건데, 해설을 할 때는 강한 집중력이 중요하다. 나는 해설 들어가기 전에 굉장히 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내가 점찍어 둔 선수들이 잘했을 때, 못했을 때를 각각 가정하고 이야기를 미리 만들어 갔다. 수많은 가상의 경우를 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1회전 때 이야기한 것과 9회전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내가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해설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역시 정상의 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의 노하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은 이해가 다른 8개 구단을 조율하고, 또 선수와 구단, 그리고 관객들과의 호흡을 맞춰 가면서 일해야 하는 자리다. 해설과는 다르다. 그가 프로야구 사무총장으로 갈 때 방송 해설처럼 프로야구 행정도 속 시원하게 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고, 해설을 통해 쌓은 신뢰가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하일성 총장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야구의 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 유소년 야구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가 부임하던 때 16개에 불과했던 리틀 야구가 22개월 만에 50개를 넘었다. 지난해는 프로야구 관중 400만을 돌파했고 올해는 500만 관중이 목표다. 야구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연장전을 없애고 무제한 승부제를 도입해서 무승부 경기가 없어졌다.

현대 구단의 반납으로 프로야구가 7개 구단으로 파행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를 낳았던 올 스토브 시즌은 하일성 총장의 종합시험대였다. 제 8구단인 센테니얼(우리 히어로즈) 창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소동의 한복판에 하일성 총장이 있다. 일부에서 하일성 총장이 임기 후 센테니얼로 갈 것이라는 루머까지 떠돌자, 하일성 총장은 대만 전지훈련에서 기자들에게 “나도 먹고살 만큼 돈이 있다. 내가 만약 임기가 끝난 후 그곳에 가면 개XX다”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루머를 부인했다. 이것이 그의 매력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는 지난 3월 8일부터 시범전을 치르고 3월 29일 정규 시즌을 개막한다.

몇 년 전, 하일성 씨가 쓰러졌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 나는 프로야구위원회 사무총장실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건강 문제부터 물어보았다. 얼마 전 요리연구가 임지호씨가 하는 경기도 양평의 음식점 ‘산당’에 갔다가 그를 만났는데, 얼굴이 초췌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는 그래도 혈색이 좋아 보였다.

“늘 병에 대한 잠재적 공포심은 갖고 있다. 그래도 건강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 아프다고 생각하면,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 밥 먹을 때 이걸 먹어도 좋은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밥 먹기 어렵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내 자리가 이러니 스트레스를 피하기 힘들다. 인간은 참 간사한 존재다. 위 수술과 담낭 수술을 할 때마다 정상적인 생활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니까 잊어버린다. 가끔은 검사를 핑계로 병원에 가서 하루 이틀 누워 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병은 받아들여야 한다. 잠자기 전에는 내일 아침 과연 내가 눈을 뜰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공포심이 들기도 한다.”


사무총장 된 후 세상 보는 눈 달라져

그는 달변이다. 오랜 방송생활 경험 때문인지 사소한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다. 야구해설가 하일성과 KBO 사무총장 하일성의 차이를 물어보았다.

“해설을 할 때는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지금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내 중심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나와 관련 없는 타인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라든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참는 법을 배운다. 과거의 나는 희로애락을 바로 표현했다. 그러나 지금은 감추고 산다. 화났을 때도, 싫은 사람 만났을 때도 표정을 숨기고 산다.”

과거의 그는 두주불사형이었다. 아프고 난 뒤의 그는 술을 예전처럼 마시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잔을 마셔도 열 잔같이 마신다. 과거에는 많이 마시고 취하고 시끌벅적하게 노는 게 즐거웠지만 지금은 만나서 어울리는 그 자체가 좋다.

“나는 일 열심히 하는 것과 술 좋아하는 것 말고는 취미가 없다. 심장 수술하고 나서 좋아하는 술을 못 마시니까 우울증 걸리고 힘들었다. 그때 《대망》을 읽었다. 2월 13일 수술하고 3월 7일부터 방송국에 들어갔는데 스포츠국 식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가슴을 열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안 나와 해설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저 사람은 일을 해야 빨리 회복된다’면서 계속 나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야기가 가족 관계로 넘어가자 그의 얼굴에 눈에 띄게 화색이 돌았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못 견디게 그리워한다는 것을 손녀들 때문에 느꼈다. 보고 싶다는 개념을 넘어서 어쩔 줄 모르게 그립다. 내 자신 나의 이런 모습이 신기하다. 내가 잘 때 다리를 꼬고 자는데 손녀가 유모차에서 잘 때 다리를 꼬고 잔다. 특히 큰 손녀가 나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의 큰손녀 채연이는 여섯 살이다. 부모와 함께 지금 호주에 있다. ‘할아버지’ 발음이 어려워서 “하부지 하부지”라고 한다. “하부지, 술 먹지 마. 힘내세요, 채연이가 있잖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울컥한다.

“손녀가 시집가는 것은 보고 죽고 싶다. 나이 들면서 인생관이 많이 변했다. 우선 드라마가 좋아졌다. 지금은 〈미우나 고우나〉 〈엄마 뿔 났네〉 이런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

지금 그는 사람을 하루에 많을 때는 20명에서 25명을 만나 가지각색의 대화를 한다. 똑같은 상황을 20명 이상의 기자에게 녹음기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이야기했더니 기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와서 이제는 감출 것 감추고 피할 것 피한다. 나는 그의 극언을 떠올리며 퇴임 후 무엇을 할 것인가, 물었다.

“죽기 전까지 야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야구를 떠나서 사는 게 힘들다. 모든 스포츠가 정해진 규격 안에서 일어난 것만 인정받지만, 야구에서 홈런은 규격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의외의 선수가 홈런 한 방을 쳐서 단숨에 모든 것을 역전시켜 버리기도 한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어떤 일을 해도 그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애정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프로라는 개념은 남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프로는,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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