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소리 디자이너 윤중삼

휴대전화를 악기로 만드는 남자

세상에 없던 디지털 기기의 출현은 많은 신종 직업을 만들어 냈다. 휴대전화 소리 디자이너도 그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Auditory User Interface 디자이너’라 부른다. 즉, 소리를 통해 휴대전화 이용자와 제품 간의 교감을 쉽게 해준다는 뜻. 휴대전화에서 사운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국내외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대부분 소리 디자이너를 두고 있다.

국내 업체로는 삼성전자가 선두주자 격. 그 중에서도 경력 4년 차의 윤중삼 선임연구원은 업계 최고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소리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쉽게 말하면 애니콜의 벨소리와 키패드 음을 만드는 게 주 업무이지만 휴대전화 소리와 관련한 모든 일을 하고 있어 간단히 정의하기는 힘들다”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중앙대 작곡과를 졸업한 그가 소리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 디지털 피아노 사운드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디지털 피아노가 막 보급되던 당시, 그는 몇 안 되는 디지털 피아노 전문가로 전국으로 시연을 다녔고 직접 교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ㆍ광고ㆍ음악 분야로 방향을 틀어 한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멀티미디어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중 삼성전자 소리 디자이너 모집 공고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설렁설렁 왔어요. 어차피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원서를 내러 왔다가 회사를 보고 갑자기 마음이 달라진 거예요. 이렇게 좋은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이 좋았는지, 딱 한 명 뽑는데 제가 뽑혔어요.”

그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작곡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피아노ㆍ비올라ㆍ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고, 실용음악 분야에서도 경력이 많은 그야말로 소리 디자이너로는 더없는 적임자였다.

입사한 그해, ‘2004 세계 디자인 어워드’에서 사운드 부문상을 수상한 것이 그 증거. 그는 사람들이 벨소리를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데 착안, 기능적인 면에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웰빙 사운드’를 개발해 이 대회에 출품했다. 웰빙 사운드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자연의 빗소리, 바다와 바람소리를 창작음악으로 만든 뒤 여기에 뇌를 편안하게 한다는 알파파 촉진기술을 배합한 것. 임상실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얻었다. 이 독특한 소리는 출품과 동시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수상으로 이어졌다. 당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소리 디자이너’라는 신종직업을 널리 알린 계기이기도 했다.

그가 디자인한 키패드 소리는 한인 2세 현대음악가인 윤보라 씨가 최근 ‘음악’으로 만들었다. 뉴욕 링컨센터와 한국, 중국 무대에 연이어 올라 휴대전화로 연주를 한 윤보라 씨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버튼마다 독특한 음향을 가지고 있어 내게 일종의 휴대용 피아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오르골처럼 소리 내는 휴대전화도 개발

그는 그 외에도 휴대전화에 갖가지 ‘소리 효과’를 집어넣는 시도를 해왔다. 비트박스 폰은 휴대전화가 악기가 되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만든 것으로 출시 이후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흔들 때마다 탬버린 소리와 함께 비트박스 리듬이 흘러나오는 것이 특징. 마치 오르골처럼 한 번 흔들 때마다 예쁜 화음이 흘러나와 생일 축하곡을 연주할 수 있는 휴대전화도 그의 작품이다. 그동안 그가 만든 벨소리는 100여 곡에 이른다.

“어려운 점이라면 휴대전화를 출시하는 나라마다 사운드가 다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에 맞는 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같은 음악인데도 나라별로 반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가 없거든요. 요즘은 미주, 유럽, 아시아 등지로 나눠 지역별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소리를 선별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인도에 출시되는 휴대전화 소리를 만들 때는 1주일 내내 인도 음악만 듣기도 했지요.”

벨소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기능음들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휴대전화에서 메뉴를 이동할 때 나는 소리인 휠 사운드는 그가 용산전자상가의 오디오 매장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 어떻게 하면 휠 사운드에서도 애니콜이 가진 명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명품 오디오의 조그 셔틀을 떠올렸다는 그는 “그걸 돌릴 때 나는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에서 명품으로 소문난 오디오들만 골라 일일이 소리를 녹음했다”고 한다.

숫자를 누를 때 화면에 나타나는 깃털펜의 효과음도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슥삭’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써지는 펜 소리를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써가며 녹음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진짜 깃털펜을 구해 다시 시도해 봤지만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아예 문구점에서 모든 종류의 종이와 필기구들을 구입해 하나씩 조합해 가면서 녹음을 했어요. 도화지나 A4 용지 하나에 볼펜, 크레파스, 색연필, 사인펜을 모두 그어 보는 식으로요. 며칠 동안 그 작업에만 매달렸는데 결국 도화지에 목탄을 그었을 때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는 “소리 디자인을 시작하고 난 후 발끝에 채이는 나뭇잎 소리 하나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어디서든 휴대전화 소리가 울리면 자동으로 귀가 쫑긋해진다고.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는 “아주 짧은 소리지만 완전히 새로운 소리여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요즘은 문화 전반에서 복고가 유행인 것처럼 휴대전화 소리에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가 대세입니다. 한때 테크노풍의 전자사운드가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더 많이 찾아요. 그러니 디지털 기술로 최대한 아날로그 느낌을 구현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신제품이 노리는 타깃 고객층을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소리를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벨소리만 들어도 삼성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브랜드 고유의 소리도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뛰어든 만큼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곧 이 분야의 새로운 길이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윤중삼 연구원. 지금도 종종 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그는 앞으로 아날로그적이고 감성적인 소리를 찾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소리에 대한 열정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서른네 살 총각이 올 한 해, 또 어떤 좋은 소리들을 만들어 내놓을지 기대가 크다.

사진 : 장성용
  • 2008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

201908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8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