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마술사 이제민ㆍ한나

스토리 마술 선보이는 한국 최고의 일루저니스트

마술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술을 단지 속임수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속임수가 아닌 마법이 된답니다.”
2007년 10월,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열린 제 1회 아시아 일루저니스트 페스티벌.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마술극을 펼친 이제민·한나 마술팀이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며 한국 마술을 세계에 알렸다. 터키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ㆍ홍콩ㆍ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일루저니스트들이 참가한 이 페스티벌에서 옷 갈아입기, 공중부양 등 고난도의 일루전을 선보인 이들은 폭발적인 관객의 반응과 함께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했다.

일루전은 매니 플레이션, 제너럴 매직과 함께 무대마술의 한 장르. 매니 플레이션은 카드나 볼 등 손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여주는 마술이고, 제너럴 매직은 비둘기나 실크, 링 등 일반적인 마술도구를 이용해 보여주는 마술이다.

“일루전은 무대마술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마술이에요. 사람을 공중으로 띄우고,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고, 몸을 분리하고 절단하는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죠.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연상하시면 돼요.”

일루전의 주 내용은 사람을 띄우거나 자르는 무시무시한 것. 하지만 그 핵심은 마술 도구에 있다. 도구 자체가 크고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용접과 목공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여러 단계를 거쳐 제작해야 하는 만큼 처음엔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학원을 다니면서 목공과 용접을 독학했어요. 직접 개발한 마술은 도구도 손수 제작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지요. 그렇게 개발한 도구들이 제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올 때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탄생한 마술 도구와 테크닉은 다음 버전이 개발되면 ‘매직 팩토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외국에 수출하거나 국내 마술사들에게 판매한단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마술 도구 시장이 커지면서 이로 인한 수익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그가 일루저니스트로서 기술적 욕심만 부렸던 것은 아니다. 마술을 공연문화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갖추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다.

마술 쇼에 스토리가 없다는 것에 착안, 마술극을 시작한 그는 한국적인 이야기를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이야기들과 마술을 접목해 나갔다. 지난 2003년, 이은결이 매니 플레이션으로 수상을 한 세계마술대회(FISM)에서 그는 일루전 한국 대표로 마술극 공연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때 보인 마술극이 ‘견우와 직녀’였는데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해 심사위원들과 관객들로부터 ‘아름답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서양인들은 우리 이야기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극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보다 완성도 높은 구성과 내용을 갖춰 외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스토리를 무대에 올리기로 한 그는 이번 매직 페스티벌에서는 ‘백설공주’의 스토리에 마술을 결합,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해 냈다.

이를테면 마녀는 계속 사과를 만들어 내고, 왕자는 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를 공중부양시키는 식이다. 극의 흐름과 함께 재미와 박진감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개념의 마술이다.

마술을 하기 전 그는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었다. 극단 ‘마당’, ‘사다리’ 등을 거치며 연극을 하다 아버지의 권유로 마임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1970년대 초창기 마임 배우로 유명한 이준오 씨다.

“할아버지가 기계체조 선수셨고, 아버지가 마임 배우셨거든요. 고모는 무용과 교수고, 저희 누나도 무용을 전공했죠. 그러다 보니 저도 어릴 때는 잠깐 무용을 배우다가 아버지 친구 분인 이진규 선생님께 마임을 2년가량 배웠어요.”

이제민은 재능과 끼가 가득한 유전자로 들썩이는 대학 시절을 보내면서 연기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대학 축제를 돌며 MC를 보기도 했지만 ‘얼굴이 잘생기지 않아’ 뜰 수 없다고 판단, 예술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다 우연히 마술을 접하게 됐다.

“처음엔 정말 취미였어요. 지인이 조언하기를 외국어를 빨리 배우려면 현지인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들의 관심을 끄는 데 마술만한 것이 없으니 한번 배워 보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마술을 배우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 급기야 유학을 포기하고 마술계에 입문하게 되었죠.”


취미로 배우던 마술에 빠져 프랑스 유학 포기

2001년, 한국마술협회 회장이던 정은선 마술사의 제자가 된 그는 그로부터 4년간 마술의 기초부터 차례로 배우기 시작한다.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을 도우며 1년 반 동안 힘들여 모은 유학비는 마술을 배우는 비용으로 고스란히 쓰였다.

“남은 돈으로는 정 회장님과 공동 투자해서 낙성대에 ‘마술극장’이라는 바를 차렸어요. 당시에는 바에서 마술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획기적이었죠. 그리고 독립하면서 한나 씨를 만났어요.”

인형 같은 외모의 한나는 2005년부터 이제민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보조 마술사. 165cm, 44kg의 가녀린 체구가 일루전 마술을 소화하기에 적합한 그녀는 마술의 ‘마’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연히 마술계에 입문하였다. 무대 위 한나는 복부를 관통하는 창에 찔리거나, 공중 위로 떠오르기도 하면서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친구의 남자친구가 마술사였는데 ‘여자 마술사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며 이 분(이제민 마술사)을 소개해 줬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때 무작정 무대 위에 올랐기 때문에 처음엔 심하게 떨리고 뻣뻣했었죠.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허리가 좀 아프다는 것 빼고는.(웃음)”

여자 파트너가 생기면서 이제민의 마술세계는 더욱 더 깊고 풍부해졌다. 파트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마술무대를 기획, 구상하면서 마술극을 올릴 때도 보다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한나와 함께 서울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벌에 초청돼 성인 무언 마술극을 공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마술이 대중화되고 더 큰 인기를 모을수록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마술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마술과 관련된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서 마술 감독을 하는 한편, 국제 규모의 마술대회와 페스티벌에도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대를 마술과 함께 성장한 이제민 마술사. 그는 어느덧 국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일루저니스트가 되었다. 2008년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편의 마술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쇼와 극의 중간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하지만 이제 소품이나 도구를 극에 맞춰 제작하면서 어느 정도 난점을 극복했으니까 해외시장을 겨냥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난타>를 역할 모델로 한 무대를 구상하고 있다는 그는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다. 마술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갖고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위해 더 많은 무대에서 새로운 마술들을 선사하고 싶다.

“마술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술을 처음 배우면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게 되거든요. 마술을 단지 속임수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속임수가 아닌 마법이 된답니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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