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국제공항 조경 담당하는 플로리스트 문현선

플라워(flower)와 아티스트(artist)의 합성어인 플로리스트.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현선 씨(36)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플로리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2000년, 동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정부가 공인하는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했다. 현재 그는 인천 국제공항 조경 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학과 아카데미를 통해 수많은 플로리스트 후배들을 길러내고 있다.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독일의 마이스터 과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동양인 중 독일의 마이스터 자격을 따낸 사람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문 씨는 대학에서 원예육종학,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후 4년간 실무 경험을 쌓다 독일 유학을 떠났다. 유학 과정부터 까다로웠다. 독일 상공부가 주관하는 플로리스트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후에야 독일 쾰른 아우바일러 학교의 플로리스트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방송국의 무대장식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늘 마음 한켠에‘좀 더 제대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플로리스트 과정을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독일로 떠났지요.”

스물일곱 살. 안정된 일자리를 버리고 어렵게 오른 유학길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어 장벽은 물론이고, 수업 방식이 우리나라와 전혀 달라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실기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뿐. 나머지 시간에는 식물의 학명, 생태, 재배법 등 이론 수업이 이어졌다.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수업은 밤 11시가 되어야 끝났는데, 언어가 서투른 그로서는 매일 밤을 새워 복습을 해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다 기절을 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어요. 학교로 진단 결과가 통보되었는데, 무려 13일이나 집에서 쉬라는 거였어요. 매일 밤을 새워도 모자라는데 2주나 수업에 빠지라니 눈앞이 캄캄했죠.”

최종시험을 한 달 앞두고는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어? 여태까지 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며 충고했고, 남은 한 달 동안 모든 걸 걸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무려 3개월 동안 이론과 구두시험, 실기로 나누어 치러지는 시험. 이론시험과 구두시험을 턱걸이로 통과한 후 마지막 날 실기시험에서 그는 리스 부문 만점, 평균점수 89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지름 1m의 링을 장식한 그의 리스를 본 심사위원들은 “동양과 서양의 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유럽 방식에 익숙한 심사위원들에게 동양의 미를 살린 작품이 신선하게 어필한 것 같다”며 “클래스 내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제가 한국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독일의 것만 무턱대고 따라 했더라면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도 싸리 빗자루와 콩깍지, 보리를 말려서 탈색한 것 등 토종 재료를 자주 활용한다.

“독일 유학은 꽃을 하나하나 생명처럼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동양 여성 최초로 독일의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 취득

3년 반에 걸친 공부를 마치고 2000년 6월에 귀국하자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내친김에 서울 양재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문현선 플로리스트 아카데미를 설립, 본격적으로 플로리스트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가 6년 동안 아카데미를 통해 길러낸 졸업생만 2000여 명. 한 해에 300명이 넘는 숫자다.

“플로리스트로서 자격을 갖추자면 식물학적 소양 외에도 미학, 공간 연출, 색채학, 경영학, 교육학 등을 두루 섭렵해야 합니다. 재능이나 미적 감각만 있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라 끈기를 가지고 3년 가량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요즘은 호텔, 백화점, 병원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플로리스트를 채용하는 추세다. 플로리스트의 직업적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만큼 체계적인 전문 교육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먼저 아카데미에 와서 배우다 적성에 맞다 싶으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엔 중고생이 부모님과 함께 진로 상담하러 오는 경우도 꽤 많아요. 그중에는 플로리스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쉽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등학교 때까지는 착실하게 공부만 하라고 말합니다. 끈질기게 노력해야 빛을 볼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하지요.”

문 씨는 2004년 우리나라에 화훼장식기능사 국가 자격증이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문 씨가 독일 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돌아오자 산업인력공단에서 국가자격증 신설에 관한 도움을 요청했던 것. 그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서 함께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현재까지 이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은 모두 10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인천 국제공항의 조경을 맡아, 우리나라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세계인을 싱그러운 식물들로 맞이한다.

“간혹 제게‘인천 국제공항에 조경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꽃이 없으면 조경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인천공항은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닫힌 구조라 이파리 식물로만 조경을 합니다.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관엽수들을 주로 활용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황엽 현상이 빨리 생겨 주기적으로 바꾸어 줘야 합니다.”

플로리스트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카라다. 어느 나라에서는 삶의 시작을 의미해 결혼식 부케에 쓰이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생의 마감을 의미하며 장례식장에서 쓰이는 꽃이다. 이렇게 상반된, 여러 의미를 가진 꽃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의 플로리스트 경력은 올해로 16년째.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롯이 꽃에 투자했다. 꽃을 만지고 바라보고 공부하며 꽃과 함께 나이를 먹은 셈이다. 그는 “플로리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간 장식을 하면서 안 만지는 재료가 없었어요. 동대문 시장까지 가서 천을 끊고, 금속·유리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도 많았죠.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고 그들 작업실도 방문하면서‘아, 다들 나처럼 힘들게 일하는구나’ 하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플로리스트는 살아있는 생물을 만진다는 게 다른 점이지요. 인간을 대하듯 꽃을 다루면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일. 이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플로리스트란 직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사진 : 이규열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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