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현 아트벨리 단장

몸치에서 최고의 벨리댄서로

“그때부터 전공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웃음)
졸업도 간신히 했죠. 정말 벨리댄스에만 미쳐 살았거든요.
방학 때는 아예 터키로 날아갔어요.
벨리댄스의 종주국이라는 곳에 가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요.”
배꼽을 드러내는 섹시하고 화려한 의상에 엉덩이와 허리의 관능적인 몸짓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벨리댄스. 복부 근육과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강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최근 그 동호인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대형 스포츠센터에는 대부분 전문 강좌가 개설되어 있을 정도다.

중동 지방의 민속춤이었던 벨리댄스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아트벨리’ 안정현(28세) 단장이다. 지난가을에는 세계 대회에서 당당히 2위에 입상함으로써 한국 벨리댄서의 위상을 높였고, 풍물·록 음악·마술 등과 벨리댄스를 접목한 실험적인 무대로 주목받고 있는 스타 벨리댄서다. 현재 그가 직접 만든 프로 무용단 아트벨리를 이끌면서 성신여대 레저스포츠학과와 같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며 제자들을 길러내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마치 모델 같았다. 169cm의 늘씬한 키에 작은 얼굴, 군살 하나 없이 탄력 있는 몸매에는 건강미까지 넘쳤다. 외모에 대한 칭찬에 그는 ‘벨리댄스 덕분’이라고 응수했다.

지난해 가을 벨리댄스 세계 대회에 출전한 안정현 단장.
“제가 벨리댄스를 하게 된 게 바로 ‘건강’ 때문이었어요. 정말 볼품없이 말랐던 데다 너무 허약해서 병을 달고 살았거든요. 대학교 3학년 때는 허리 디스크 판정까지 받았어요. 병원에서 ‘디스크 때문에 임신과 출산에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운동을 결심했지요. 가급적 허리에 좋은 운동을 찾다가 벨리댄스라는 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 광주여대에 계시는 안유진 교수님이 국내에 처음 소개했는데, 막 시작할 무렵이라 정식 학원도 없어서 무작정 그분의 개인 연습실을 찾아갔어요. 그게 벌써 6년 전의 일이네요.”

하지만 경영학과 학생으로 춤과는 거리가 멀었고, 평소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였던 그가 벨리댄스에 입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디스크까지 앓고 있던 터라 몸을 움직이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울수록 재미있었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열심히 하면 내가 할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부터 전공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웃음) 졸업도 간신히 했죠. 정말 벨리댄스에만 미쳐 살았거든요. 방학 때는 아예 터키로 날아갔어요. 벨리댄스의 종주국이라는 곳에 가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요.”


벨리댄스 종주국 터키에서 집중 훈련

안정현 씨가 지난 2월 개최한 벨리댄스 축제 포스터.
무작정 날아간 터키에서 그는 벨리댄스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체력 관리 트레이너는 그에게 근육을 키우고, 근력을 다지는 기초훈련부터 다시 시켰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고난도 동작을 쉽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 근력 운동을 하는 데만 하루 세 시간씩 걸렸고,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만 살았다. 3개월 체류하는 동안 벨리댄스 공연 관람 외에는 여행을 한 번도 못 했다고 하니, 그 고된 훈련 과정을 짐작할 만하다.

터키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이례적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교수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라 강의를 못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벨리댄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높이 산 모교의 배려 덕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벨리댄스에만 매달렸다. 수시로 터키와 이집트를 오가며 실력을 다졌고, 세계적인 벨리댄서인 ‘싸이다’와 ‘딜라일라’를 만나기 위해 그들이 있는 아르헨티나와 미국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는 “세계 대회에 출전한 것도 이집트의 유명 벨리댄서인 나구아 푸아드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인도, 중국 등에서 각 나라 대표가 참여했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처음 열리는 대회였어요. 출전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나구아 푸아드’라는 것을 알고 나서 바로 준비를 했지요. 지금 70세가 넘었는데 벨리댄스계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는 분이거든요. 그런 분 앞에서 제 춤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잖아요. 2등을 해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즐겁고 행복한 무대였어요.”

당시 1등을 한 대만 대표와는 친구가 되어 지금도 교류를 한다고.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연습복이 그 친구가 직접 만들어 선물한 것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벨리댄스 종주국과 세계무대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겴瞿퍊대만겲틘G箸설?등의 유명 벨리댄서들을 한자리에 모은 벨리댄스 축제(The Art of Belly-dance)를 개최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벨리댄서들과 그 전속 음악단 초청을 모두 자비로 해결하느라 경제적으로는 큰 부담이었지만 벨리댄스를 올바로 이해시키고 싶었다”는 것이 그가 공연을 기획한 의도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분들이 더 많고, 무조건 ‘야한 춤’으로만 인식하는 분들도 있어요. 완전한 춤 예술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는 뜻이죠. 음악만 해도 벨리댄스 음악을 연주하는 아랍 악기가 따로 있는데, 국내에는 그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벨리댄스는 음악, 관객이 함께 호흡할 때 감동도 더 큰 법인데 라이브가 아닌 반주로만 춤을 춰야 하는 게 참 안타까워요. 이런 공연들이 자꾸 생겨야 음악 하는 분들도 관심을 갖고, 벨리댄스에 대한 인식도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400여 석 규모의 공연장이 전석 매진되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던 이번 공연으로 그가 얻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강원도 삼척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그의 부모님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 그동안 벨리댄스에 빠진 딸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의 열정적인 행보를 지켜보며 마침내 마음을 돌린 것이다.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연습 때문에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고질병인 디스크도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벨리댄스를 발전시키는 일에 주력할 계획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5월에 열리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서 ‘The Art of Belly-dance’의 세 번째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벨리댄서를 초청하는데 좀 더 새로운 형식의 벨리댄스 무대가 될 겁니다. 발레처럼, 1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을 하나의 스토리로 이끌어 나가 보려고요. 제가 무용과 출신이 아니라 안무를 짜는 데 많이 서툴러서 고생을 좀 하고 있지요.(웃음)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책도 많이 읽고, 상상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으니, 멋진 작품 기대해 주세요.”

사진 : 이창주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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