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아트 세계대회에서 수상한 최지욱 씨

커피에 올인한 최고의 바리스타

“전혀 기대도 안 했어요. 한국 커피 역사가 이제 걸음마 단계인걸요. 세계 챔피언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정도 했으니 후배들은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웃음)

빡빡 민 머리가 영락없이 커피의 생두를 닮은 바리스타 최지욱 씨(32세). 2004년 제 1회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CBC)에서 우승한 그는 2005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12위에 랭크됐고, 2006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세계 라떼 아트 챔피언십(WLAC)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란 뜻으로,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원두 배합, 물의 온도와 질량 등에 따라 매 순간 맛과 향이 변하는 독특한 향가루인 커피는 만드는 이의 손길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바리스타는 원두 종류는 물론 볶는 방법, 분쇄 입자의 크기, 에스프레소 머신 등을 컨트롤하는 장인이자 예술가다. 이 중 라떼 아트는 카푸치노 커피 위에 스틱을 이용해 하트, 꽃, 사람 얼굴, 토끼, 강아지 등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내는 신생 분야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친다고 야단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라떼 아트는 신선한 에스프레소와 벨벳처럼 부드러운 우유 거품 그리고 바리스타의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의 3박자가 만들어 내는 예술이죠. 시간이 지나면 기포가 굵어져 감촉이 나빠지기 때문에 20초 안에 신속하게 끝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2006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세계 라떼 아트 챔피언십(WLAC)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각 나라에서 한 명씩만 출전하는 세계 바리스타 대회는 15분 안에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 창작 메뉴 4잔 등 총 12잔을 만들어 내 심사를 받는다. 이를 심사위원들에게 직접 서빙을 하는데, 맛과 향, 모양은 물론 서비스도 점수에 포함된다. 라떼 아트 대회에서는 6분 안에 에스프레소 2잔, 카푸치노 2잔, 창작 2잔 등 총 6점의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시간이 초과되면 그만큼 감점이 된다.

“라떼 아트 대회에서는 긴장하는 바람에 3초를 초과했어요. 그래서 2위를 했죠. 대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면서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라고 하시더군요.”

최근 커피 마니아가 늘어나면서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현재 국내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수만 명에 이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커피를 창조할 수 있는 바리스타는 3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세계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은 60여 명이 안 된다고. 아직까지 바리스타에 대한 공인 자격증이나 국가 공인 양성소는 없지만, 커피 관련 직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몇 대학교에 커피 관련 학과가 생겨나고 있다. 최 씨 역시 부산 동아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커피는 정성이에요. 맛만 훌륭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가 뒤따라야 하죠. 바리스타는 고객 기분을 돋워줄 줄도 알고, 커피 관련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해요.”

최 씨가 커피에 입문한 것은 스물다섯 살 때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던 그는 재즈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음악가로서의 창의력이 있는지’회의가 들었다. 1년 반 만에 어렵게 결단을 내리고 귀국했는데, 중도 포기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방황하는 그에게 어머니는 늘 “사람들 얘기에 흔들리지 마라.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할 수 있다”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음악가에서 바리스타로 진로 수정

2001년 그는 수원 아주대 앞에 다섯 평짜리 커피숍을 열었다. 희귀한 원두를 얻어와 직접 갈아서 마시던 아버지처럼 그도 커피를 좋아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인스턴트 믹스 커피를 10잔씩 마실 정도였다. 오랫동안 걸어온 음악의 길에서 방향 선회한 그는‘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스스로 다짐했다. 성공하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선한 원두로 커피의 질을 높였고, 작은 가게에 텔레비전을 두 대나 달고, 각종 신문과 잡지들을 비치해 놓았다.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패션 잡지를 외국에서 직접 구매해 놓아 두었는데,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였다.

하루에 700~800잔을 팔면서 다섯 평 가게의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을 넘었다. 그 후 바와 일식집 등 영역을 넓혀가며 돈을 벌었지만, 그에게는 음악 대신 미칠 만한 대상이 필요했다. 그는 커피에 미쳤고, 세계적인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밤낮으로 새로운 커피를 개발하기 위해 매달렸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그는 코코넛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캐러멜과 아몬드가 들어간 커피를 선보였다.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 대신, 새로운 커피를 만들어 내는 바리스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대회가 다가오면 아침잠을 포기하고 새벽 5시에 가게로 나가 9시까지 네 시간 동안 혼자 연습에 열중했다. 가장 최근에 나간 대회에서는 식용 금가루와 크림치즈 등을 이용한 메뉴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요즘 그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커피 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공생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중국, 필리핀, 태국 등지에 있는 커피 원두 생산농장을 견학하고 온 후 비전이 더 명확해졌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에 살면서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커피 노동자들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더군요. 그런데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낯선 방문자에게 무언가 자꾸 주려고 했어요.”

그런 환경에서도 나누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라고 한다. 커피 사업으로 얻은 이익으로 그들이 살 집을 지어주고,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자녀 교육도 지원하면서 공동체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지금 경기도 성남에 커피 카페뿐 아니라 유통, 아카데미까지 겸한 토털 숍을 준비 중이다. 커피를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후 들여와 로스팅하는 등 ‘커피의 전 과정’을 모두 챙기겠다는 것. ‘코페아(Coffea) 커피’라는 회사 이름도 지어 놓았다. coffea는 커피콩이 열리는 나무를 말한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최고의 맛’ ‘독창성’ ‘정직’이 세 가지입니다. 제 인생을 커피에 올인할 생각이에요. 물론 장가는 가야 하지만.”(웃음)

사진 : 신규철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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