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업체 ‘지나’ 김지은-박욱성 씨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인정한 생화 주얼리

활짝 피어있을 때는 더없이 예쁘지만, 지고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꽃. 그 꽃을 귀금속으로 ‘부활’시키는 사람이 있다. 주얼리 업체 ‘지나’의 박욱성 이사. 서울 강남구 신사동 ‘GINA(지나)’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양란들이 얼굴을 내민다. 박 이사가 줄기에 매달린 양란 한 송이를 따더니 석고 매몰재에 집어넣는다. 꽃은 하루 정도 석고 속에 파묻혀 있다 뜨거운 소성로에 들어간다. 꽃잎은 800℃ 소성로에서 4시간 동안 있으면서 모두 타 없어지지만, 석고 틀에는 미세한 주름과 솜털까지 아로새겨진다. 녹여놓은 금이나 은을 이 틀 속으로 부어 굳히면 생화 그대로를 재현한 주얼리가 된다. 한 송이씩 살아있던 꽃 그대로를 되살려 놓았으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얼리인 셈이다.

어떤 꽃이든 재현할 수 있지만, 이제까지 실험 결과 양란이 가장 적당했다고 한다. 옐로 골드 18K를 바탕으로 핑크 골드, 화이트 골드, 퍼플 골드 등으로 도금해 꽃잎의 색을 내고, 진주 등 보석을 넣어 브로치나 목걸이, 귀걸이, 머리 장신구 등을 만든다. 두께는 꽃잎과 같은 0.2~0.7mm 정도. 이렇게 얇게 주조하면서 살짝 말려 올라간 꽃잎 끝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은 독보적인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그에게 비밀이 뭔지 묻자 복잡하고 전문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제까지 기술로는 녹인 금속이 급속 냉각으로 굳어버려 이렇게 얇고 섬세하게 주조할 수가 없었는데, 연구를 거듭한 끝에 세계 최초의 기술을 획득했다고 한다. 녹인 금속을 붓는 주입구 구조를 바꾼 게 키포인트라고.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디자이너보다 과학자나 엔지니어, 장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곁에 있던 ‘지나’의 김지은 대표가 “문제에 부딪히면 물리, 금속 주조 등 외국의 전문 서적까지 구해 연구하거나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며칠이고 밤을 새워 결국 답을 찾아내시더라”고 덧붙인다. 박욱성 이사는 홍익대 미대, 김지은 대표는 서울여대 공예학과와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서 각각 공예와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했다. 김지은 대표는 박 이사가 보통 디자이너나 공예가는 엄두도 못 낼 기술에 도전한다며 “디자인계의 돌연변이”라고 평한다.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으니 남은 흉내도 내지 못하는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전시회에 나가면 ‘지나는 참 행운아다. 네가 생각하는 디자인대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두 사람의 합작품은 최근 소더비, 크리스티 등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로부터 경매 참가 허락을 받았다. “보석 경매에 참가할 수 있는지” 양쪽으로 의사를 타진한 결과, 두 곳 모두 “제품을 보내라”며 OK 사인을 보낸 것. 우리나라 업체로서는 최초다. 그동안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브랜드 이름을 키우는 데 한계를 느꼈던 이들은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국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해와 홍콩의 최고급 백화점에 입점

이들의 세계 공략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국제 전시회에 참관하다 작품을 내기 시작했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특히 생화 주얼리에 “굉장하다(gorgeous)”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와” 하고 몰려들어 구경할 정도. 동경, 홍콩, 상해, 북경, 두바이, 바젤 등 부지런히 전시회에 참여해 세계 바이어들에게 물건을 팔았고, 홍콩 레인 크로포드 백화점과 상하이 뚱팡상사 등 명품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GINA’ 사무실을 찾은 날도 박욱성 씨는 바로 다음날 동경, 김지은 씨는 3월에 홍콩에서 열리는 전시를 준비해야 한다며 분주했다.


“홍콩 전시회 때 레인 크로포드 백화점 사장이 우리 제품을 주의 깊게 살피고 가더니, 두 번째 찾아왔을 때 바로 입점 이야기를 꺼냈어요.”

세계 시장을 겨냥하다 보니 어느 지역 소비자를 겨냥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진다. 두바이 등 중동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크고 대담한 디자인을 좋아해 생화 주얼리도 큼직한 꽃송이로 제작한다. 같은 일본이라도 도쿄를 기점으로 북쪽은 아기자기 작고 섬세한 것을, 남쪽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등 차이가 있다고. 상하이 뚱팡상사에서 팔리는 상품은 한국보다 2배 가까이 비싼데도 선호해 ‘중국의 경제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50대인 박욱성 이사가 중장년층을 위한 디자인에 강한 반면, 40대인 김지은 대표는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 디자인에 강해 역할 분담이 되고 있다.

홍익대 미대 졸업 후 귀금속 디자인과 제작을 해온 박욱성 이사는 최고의 기술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장인이었다. 그런데 자기 브랜드를 가질 생각 없이 임가공 형식으로 디자인-제작해 제품을 납품했다. 그저 일이 좋을 뿐 굳이 ‘내 것’을 내세워서 뭐 하느냐고. ‘GINA’라는 브랜드를 가지게 된 것은 김지은 대표와 함께 일하면서부터였다.

박욱성 이사의 네 살 위 형이 금속공예가인 성신여대 박호성 교수. 김지은 대표는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박호성 교수로부터 금속공예를 배웠다. 박호성 교수와 박욱성 씨의 작업실은 같은 건물에 있었는데, 수업 때문에 자주 작업실을 비우는 박호성 교수 대신 박욱성 이사로부터 실습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박욱성 이사를 “사부님”이라고 부른다. 각기 따로 일하던 두 사람은 1997년부터 ‘GINA’라는 이름으로 합쳤다. 나서기 싫어하는 박욱성 씨 대신 김지은 씨가 대표를 맡았다. 국제 전시회에 참가해 ‘GINA’라는 이름을 알려야 한다고,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것도 김지은 씨였다.

‘GINA’는 각종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우수 산업디자인(GOOD DESIGN)으로 여러 번 선정되는 등 디자인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업체. 그런데도 한국에서 귀금속업을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소비자는 디자인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게 단위로 가치를 평가하려 하고, 정부는 귀금속 산업을 사치 산업으로 치부해 수출기업이면서도 장애가 많다고 말한다. 주얼리 산업이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인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국의 명품 주얼리는 고가를 주고 척척 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지만 나가서 먼저 인정받자는 게 이들 생각. 실제 외국에서 이들 제품을 더 알아준다.

“2004년 3월 홍콩 쇼에 작품성 강한 주얼리만 전시하는 모험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적중했어요. 바로 명품 백화점에 입점하게 되었으니까요.”

귀금속을 다루지만, 이들이 만든 주얼리는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게 많다. 금과 진주를 사용한 주얼리에 자연에서 채취한 이파리와 애벌레 집을 결합시킨 작품, 백금·오팔·호박·비취 등으로 만든 잠자리, 새, 게 모양의 주얼리들이 금방이라도 꿈틀대고 날아갈 것같이 생동감 있다. 평상시엔 오브제로 전시되다 사용 시에만 분리하는 브로치 등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자신들의 ‘자연주의 주얼리’를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 ‘알고 지낸 지 20년, 함께 일한 지 11년’ 됐다는 열 살 차이 동업자인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이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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