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아나운서 출신 배우 임성민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모바일 화보 찍었어요”

내가 아나운서 임성민을 처음 만난 것은 KBS에서였다. 그녀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행자였고 나는 매주 게스트로 나가서 문화계 소식을 전했다. 중간에 음악이 나갈 때, 우리는 스튜디오 안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임성민은 다른 아나운서들과 많이 달랐다. 그녀는 화장기 없는 ‘쌩얼’로 스튜디오에 나타나곤 했다. 우리가 흔히 아나운서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단정함이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편안하게 앉아 수더분하게 행동했으며, 방송용으로 다듬어진 멘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을 보여 주었다.

임성민이 TV의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홍대 앞 씨어터 제로에서 개최된 나의 퍼포먼스를 보러 왔다. 내가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연극으로 만들어 연출할 때도, 진행하던 프로그램 코디와 함께 보러 왔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그녀는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그녀와 연락을 했다. 임성민은 연기를 하고 싶어 했고, 접촉하고 있는 영화사, 감독, 작품 등에 관해 나에게 자문을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찍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연기자의 길로 드디어 들어서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나는 부산 MBC TV에서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여자 MC가 필요해서 그녀를 추천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2년 넘는 기간 동안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서울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공항에서 함께 차를 타고 방송국까지 갔고, 녹화가 끝나면 해운대에서 늘 함께 식사를 했다. 방콕영화제 취재를 위해 취재팀들과 함께 태국에 간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그녀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병헌과 KBS 탤런트 공채 동기

그녀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모바일 화보집을 찍은 것을 그녀의 어머니는 아시지만, 연로한 아버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버지가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할 때였다면 감히 용기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임성민의 아버지는 그녀가 좋은 직장에서 반듯하게 일하다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을 바랐다. 임성민은 이대를 졸업하고 1991년 KBS 탤런트 14기 공채 시험에 이병헌, 노현희 등과 함께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연기자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1994년 KBS 20기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니까 늘 몸이 아팠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항상 그녀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그녀는 그때의 그 부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했지만 아직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들어오는 역은 대부분 아나운서 시절을 연장시키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고 싶었다. 몇 군데 매니지먼트사를 거쳤지만 제대로 그녀를 후원해 주는 곳을 만나지 못한 것도 그녀의 불행이었다. 방송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방송국에서는 연기자가 되려 한다고 생각해서 섭외를 안 하고, 영화 쪽에서는 아직 연기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선뜻 캐스팅을 안 하는 사이, 그녀는 허공에서 방황했다.

“아나운서를 하면서 얻는 명예보다 연기를 하면서 얻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아나운서 임성민으로만 기억하려고 한다. 2년 전쯤까지는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지났다. 모든 욕망을 초월했다.”

1969년생인 임성민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여덟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20대처럼 탄력 있고 건강하며 아름답다. 168cm의 키지만 실제 그녀를 만나보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당당한 체격,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지성미와 야성미를 함께 갖고 있는 드문 배우다. 그녀가 모바일 화보집을 찍은 것은, 이대로 사라질지 모르는 연기자의 꿈을 붙잡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임성민의 모바일 화보집이 공개된 후, 비슷한 시기에 함께 공개되었던 채리나·아유미·김옥빈 등 젊은 여자 연예인들을 압도하는 거의 2배, 3배에 이르는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너무나 깜짝 놀랄 정도로 그녀의 몸매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시간에 방송국 앞 횡단보도를 옆에 두고 무단 횡단하는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는 연예인도 있다. 그만큼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반듯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대명사처럼 생각된다. 언제나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모범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완벽에 가까운 S라인의 몸매를 어떻게 아나운서의 딱딱한 틀 안에 가두고 살 수 있었을까? 그녀의 뛰어난 몸은 모바일 화보를 찍기 위한 트레이닝의 결과인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본 임성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3월 말부터 헬스클럽 다니면서 트레이너에게 10번 정도 훈련받고 7월 11일부터 2박 3일 동안 제주도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클릭 수가 높지만 그렇다고 임성민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출연료로만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 억울할 법도 한데 임성민은 담담했다. 모바일 화보집을 찍은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기자로 캐스팅되기 위한 마케팅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연기자를 꿈꾸어 왔고 재능도 많지만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임성민. 삶의 다양한 질곡을 거친 지금이야말로 연기를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닐까? 불의 욕망을 얼음의 차가움으로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얻은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밝고 맑은 햇볕만 내리쬐기를 기대한다.

사진 : 이창주
  •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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