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난 윈도 페인터

창문에 그림 그리기가 제 일이에요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윈도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창문에 비치는 풍경, 시각, 조명 등에 따라서 제가 그린 드로잉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때그때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죠.”
나난(본명 강민정).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을 꿈꾸는 스물여덟의 신세대 아티스트다. 그가 건넨 초록색 명함에는 ‘LOVEAND MONEY 크리에이터 나난’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다. ‘LOVEANDMONEY’는 직역하면 돈과 사랑이라는 뜻. 그가 다니는 광고기획사 이름이다. ‘돈과 사랑을 빼면 인생에 뭐 있나’ 라는 심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단다.

나난은 잡지사 기자로 시작해 일러스트레이터,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디렉터, 광고 기획자를 두루 섭렵한 재주꾼이다. 서울예대 광고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2000년 국민일보가 선정한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영향력 있는 신세대 뉴 트렌드’ 아이콘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 통신회사에서 발행하는 멤버십 잡지 <카이매거진>에 나난 다이어리를 연재하다 2002년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그리고 스물네 살 때 주식회사 〈나난〉 법인을 설립했다. 이쯤 되면 치기 어린 아티스트의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연상되게 마련. 하지만 직접 만난 그는 외려 맘씨 좋은 이웃집 아가씨 같은 푸근한 이미지였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래요. 같이 작업하는 분들이 많이 예뻐해 주시고. 제가 워낙 쾌활하고 즐겁게 일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그는 여전히 잡지 그림도 그리고 문화 매거진 등에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도 쓴다. 또 프리랜서로 콘텐츠 기획일도 하고 있다. ‘쓰리 잡(three job)’을 가진 영리한 신세대 문화 전도사인 셈이다.

“개인 예술 작업으로 윈도 페인팅을 하면서 광고회사 크리에이터로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일하고 있어요. 자유롭게 한다고 해서 절대 방종은 아니에요. 오히려 일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머리가 굳지 않게 해주거든요. 다양한 범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작업의 밑거름이 돼요.”


나난이 윈도 페인팅이라는 새로운 자기만의 영역을 발견해 낸 것은 2004년.

그전부터 잡지를 통해 일러스트레이션을 발표하고, 그래피티도 하면서 그림을 그려오던 그는 어느 날 페인트 마커를 사용해 무심코 자신의 집 창문 밖에 보이는 나무나 집들을 배경으로 상상했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윈도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창문에 비치는 풍경, 시각, 조명 등에 따라서 제가 그린 드로잉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때그때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그때 마음을 정했어요. 이 작업을 평생 해야겠다고.”

나난은 집 안의 윈도에서 더 나아가 충무로역 영상센터 ‘오재미동’, 유네스코회관 미지센터, 현대백화점 신진 디자이너 편집숍 ‘씨켄셉’의 윈도로 자신의 페인팅 영역을 넓혀 나갔다. 얼핏 보면 그의 광고일과 동반되어 운 좋게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이전에 작가로서의 작품성이나 대중성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다.

캔버스로 윈도를 사용하다 보니 밀폐된 공간보다는 외부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작업 중인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며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 “뭘로 그리느냐”는 등 갖가지 질문과 평가를 쏟아낸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려 혼이 쏙 빠지곤 해요. 그래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작업에 몰두해요.”

윈도 페인팅은 스케치 없이 그려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에너지 소모가 굉장하기 때문에 하루에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 하루 네다섯 시간을 넘길 수가 없다.

나난은 지난 6월 이태원에 개인 작업실을 오픈했다. 스무 살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 자립한 그가 지금까지 번 돈을 몽땅 털어 세운 자신만의 ‘왕국’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연구실이라 부른다. 연구실에는 비공개 작품들이 쌓여있는 관계로 아직까지 누구도 초대받지 못했다. 내년에 개인 소장용 윈도 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잡지사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비주얼 디렉터, 광고 기획자로 활동

2005년 일민미술관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한국 작가들의 축하 전시 중 나난의 윈도 페인팅.
‘나난’은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스무 살부터는 주체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이름을 정한 것이다. 당시 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부터“영화 〈싱글즈〉의 여자 주인공 이름으로 쓰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허락한 일도 있다. 덕분에 지금은 ‘나난’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후회막급이라고.

“‘무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난’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어요. 일이든 예술이든 무난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좋거든요. 예술이라는 단어가 갖는 진지함과 정중함이 오히려 예술에 대한 벽을 쌓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난은 그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따로 없고 작가와 관객이 협조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일종의 공동예술이자 즉석예술 전시회를 추구한다. 지난 2004년 그는 서울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안에서 ‘윈도 페인팅 프린팅’전시회를 열었다. 관객들이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 등을 그려놓은 유리 뒤편에서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으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즉석에서 인쇄해 전시장에 전시하는 새로운 거리 예술이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최근에 그는‘함께하는 미술 재미있는 미술’을 주제로 한 청담 미술제에 참가했다.‘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공공 미술의 의의를 담은 거리 설치미술전. 나난은 퓨전 레스토랑 ‘카페 티’의 유리창에 야생식물과 나무, 숲을 그렸다. 곧이어 서울 압구정점 현대백화점과 부산 현대백화점의 윈도 페인팅 작업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에는 글 쓰는 친구와 함께 아트북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미대 편입을 준비하다가 우연찮게 잡지에 발을 들이게 됐고 그림 실력이 남달랐기에 잡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를 맡게 됐다.

“사실은 제가 일러스트를 맡겨주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편집장님을 협박(?)했어요. 좋아해서 그리다 보니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됐고, 기회가 온 거죠. 새벽 4시에 일이 끝나 모두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혼자 남아 일러스트 작업을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혼자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도움과 저 때문에 기회를 잃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난은 국내 최초 윈도 페인터로서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의 작가들도 간혹 다양한 재료 중의 하나로 유리를 쓰는 경우는 있었지만 장르의 하나로 구축하기는 그가 처음이다.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나도 윈도 페인팅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많은 이들이 물어오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뭐고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아는 거예요. 제가 치열하게 고민해서 윈도 페인팅이라는 장르를 찾았듯이 다른 젊은이들도 자기한테 맞는 장르와 색깔을 찾는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아주 많이요.”(웃음)

사진 : 이창주
  •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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