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영원한 삼촌 되고 싶어요”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 제작하는 가수 유열

가수 유열 씨(45세)가 뮤지컬 제작자로 변신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유 미디어는 정동극장과 공동으로 가족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를 제작, 4월 14일부터 5월 21일까지 하루 두 차례 정동극장 무대에 올린다.

편안한 미소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마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올해로 가수 데뷔 20년을 맞는다. 1994년에 시작한 KBS 2FM 〈유열의 음악앨범〉 DJ는 벌써 12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뒤로 하고 그가 뮤지컬 제작이라는 낯선 분야에 ‘신인’으로 뛰어든 특별한 계기라도 있을까.

그는 사실 공연계에서 알아주는 뮤지컬 마니아다. 해외 대형 뮤지컬뿐 아니라 국내 소규모 뮤지컬 공연도 즐겨 찾아다닌다. 그 자신 뮤지컬 배우로 선 경험도 많다. 1990년대 〈빠담 빠담 빠담〉에선 이브 몽탕 역으로, 윤복희 씨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그는 “막이 오른 순간부터 오직 진실만이 통하는 무대의 긴장감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제대로 된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도 안 한 노총각이 어린이에게 관심이 많은 이유는 또 뭘까? 그는 세간의 이 호기심이 좀 섭섭한 눈치다. “꼭 부모가 돼야 어린이한테 관심을 가지나요? 저처럼 미혼이면서 어린이 좋아하는 사람들 많아요.”
<브레멘 음악대>의 음악대장 역할을 맡은 이언경씨와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단원들
그는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이미지 때문인지 가수 데뷔 후부터 유달리 어린이 프로그램과 연관이 많았다. 〈뽀뽀뽀〉 〈TV유치원〉 등을 진행했고, 각종 동요대회의 단골 진행자였다. 1996년 대한민국동요대상에서 ‘동요를 사랑하는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동화 읽어 주는 남자’ 코너를 맡은 것이 인연이 돼 오디오 북 회사를 설립, 뮤지컬 동화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린이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어린이용 작품을 너무 건성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아니거든요.”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구상은 정동극장 최태지 극장장을 만나면서 구체화됐다. 마침 최 극장장은 지난해 박정자 씨의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아동극 분야를 확대해 볼 생각이었다. “제대로 된 어린이 뮤지컬을 올려 보자”는 유열 씨의 제안에 최 극장장이 동의, 제작비를 절반씩 부담해 공동 제작하기로 결정이 났다.

작품은 〈브레멘 음악대〉로 정해졌다. 독일 그림형제의 명작동화가 원작으로, 당나귀·개· 수탉·고양이 등을 의인화해 어린이 관객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꾸몄다. 사람들에게 구박받더라도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는 것을 좋아하는 느림보 당나귀 ‘동키’, 상대방이 무서워할까 봐 짖는 것도 삼가는 신중하고 마음씨 착한 강아지 ‘도기’, 아기쥐가 가엾어 엄마쥐를 잡아먹지 못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고양이 ‘캐티’, 아무리 연습해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는 수탉 ‘러스티’ 등이 나온다.

유열 씨는 “다양한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며 이 작품을 골랐다”며 “어른들의 일방적인 잣대 때문에 스스로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뮤지컬을 보고 용기와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는 기존의 어린이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가 포진해 눈길을 끈다. 총연출은 한진섭 씨. 화제작 〈아이 러브 유〉 〈맘마미아〉 등을 연출했으며 2005년 뮤지컬대상에서 연출상을 수상한 스타 감독이다. 올해 다섯 살 된 딸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성인 뮤지컬의 잇따른 러브 콜을 뿌리쳤다. 무대와 관객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음악대장 역에는 EBS 〈딩동댕 유치원〉으로 친숙한 이연경 씨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 조남희 씨가 더블 캐스팅됐다.


완성도 높여 장기공연할 터

총 연출을 맡은 한진섭 씨와
〈브레멘 음악대〉에는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요소가 가득하다. 대충 동물 탈을 뒤집어 쓰고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캣츠〉처럼 특수 분장을 도입했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라이브로 노래하고 연주하며, 전 세계 갖가지 민속악기가 등장해 천둥소리부터 시냇물 소리, 청개구리 합창소리까지 다양하게 들려준다.

‘허접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당초 다짐을 지킨 덕분이다. ‘제대로 정성껏 만들면 관객은 오게 돼 있다’는 것이 제작자로서 유열 씨의 확고한 철학이다. 이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 총 66회 공연에 90% 이상 티켓이 팔려야 겨우 본전이라고 한다. 밑지는 장사를 하려는 걸까.

“한번 공연으로 끝날 일이 아니죠. 저희는 롱런이 목표입니다. 무대의 완성도를 높여 매년 봄 정동극장에서 〈브레멘 음악대〉를 공연할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수 활동은 접고 제작자로 본격 나서겠다는 뜻일까. 유열 씨는 “그건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가야죠”라고 평소보다 더 느릿느릿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가수 데뷔 자체가 ‘흘러가는 대로’였다. 어릴 때부터 노래라면 자신 있었지만 가수가 될 생각은 언감생심 못 했다. ‘목소리가 너무 스탠더드해서’ 가수로 성공하긴 힘들겠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가수를 좋아해서 곧잘 따라 불렀어요. 친구들이 ‘꼰대’라고 놀렸지요. 하하.”

그런데, ‘기념 앨범이나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한 1986년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유명 기획사에 스카우트돼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때 대상을 받은 곡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를 작곡한 지성철 씨가 이번 뮤지컬의 작곡을 맡았다. 데뷔 후 ‘이별 이래’ ‘가을비’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풀 꺾이게 된다. 10대 위주의 댄스음악으로 흐르는 가요계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사업이든, 노래든 크게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도 않는다. 뮤지컬만 해도, 좋은 작품이니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몇몇 지인들이 “소외된 어린이들에게도 보여 주라”며 단체관람권을 사줘 그를 행복하게 했다. 물론 그가 가장 행복해할 시간은 무대에 올라 그가 가장 잘하는 일, 노래를 부르는 때일 것이다.

“진심을 담은 내 노래가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잠시 쉬어 갈 수 있게 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겠지요. 저는 늘 무대를 꿈꿉니다.” ■
  • 200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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