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로 블루오션을 개척하라

손글씨와 디자인의 접목에 성공한 김종건 씨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 보면 교보생명 빌딩에 걸린 대형 간판에 눈이 머물게 된다. 올봄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정갈한 붓글씨가 새 봄의 순결한 초심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 글씨를 쓴 곳인 ‘필묵 calligraphy & design’은 199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캘리그라피(손글씨) 전문 회사다.

캘리그라피란 먹과 붓을 이용해 글씨를 쓰되, 기존 서예와 달리 디자인 컨셉트에 맞게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글씨를 말한다. 기존의 폰트 회사가 표준화된 글자체를 개발하는 곳이라면 캘리그라피는 ‘나만의 느낌’이 강조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글자체라는 특징이 있다. 김종건 대표(36세)가 회사를 창립하던 1990년대 말은 컴퓨터가 보편화하면서 손글씨 자체가 아예 사라지던 때였다. 하지만 김종건 대표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기계적인 글씨는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찾게 된다. 붓글씨의 손맛이 각광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의 예상은 지금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초창기 고전을 딛고 이제 ‘필묵’은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이고 있다. 농심 ‘純녹차’, 오뚜기 ‘生우동’, 로제화장품 ‘십장생’의 손글씨와 KT&G ‘아리랑’ 담배의 먹그림 등 ‘필묵’이 제품 포장에 쓴 손글씨와 먹그림은 일일이 예로 들기 숨 찰 정도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과 〈챔피언〉 포스터, 《장길산》·《봉순이 언니》 의 책 표지 글씨도 모두 ‘필묵’의 작품이다. 최근엔 SK텔레콤의 월드컵 광고에 나온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김종건 씨에게 ‘필묵’의 성공은 단순히 사업적인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시대에 뒤떨어진 뒷방신세처럼 여겨졌던 서예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 그에겐 더 기쁘다. 그는 원광대 서예과 출신으로, 한때 서예작가를 꿈꾸던 예술 청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서예학원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개구쟁이 꼬마는 그런데, 이상하게 묵향이 좋았다. 학원의 할아버지 아줌마들이 “고 녀석 글씨도 참 잘 쓰네” 하는 칭찬이 듣기 좋았고,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을 타는 맛도 쏠쏠해 남들은 몇 달 배우고 마는 서예를 고등학교 시절까지 계속 익혔다. 마침 고 2 때 원광대에 전국 최초로 서예과가 창설됐고, 그는 2기로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서예 전문 잡지 기자로 1년을 일하다 폰트 개발 회사에 들어갔다. 대학 때부터 ‘서예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붓글씨를 응용한 서체를 개발해 보자’는 꿈이 있었다. 이 무렵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일본에서 ‘상업 서예’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종건 씨는 “그걸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붓글씨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내가 쓴 글씨를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을까’ 하는 오랜 고민의 해답이 거기에 있을 것 같았지요.”

다니던 회사가 외환위기 와중에 부도가 나 졸지에 실직자가 되자 그는 꿈꿔 오던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국내 최초의 손글씨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처음에는 이 회사 저 회사에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길이 안 보이는가 싶었는데, ‘마린 디자인’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마린의 김대헌 사장은 “젊은 사람 생각이 신선하다”며 “함께 일해 보자”고 사무실 한쪽 공간을 빌려 줬다. 1999년 11월. 필묵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농심 ‘춘면’의 글씨체가 첫 작품

첫 작품인 농심의 ‘춘면’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그의 이름도 업계에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부살이 1년 반 만에 따로 사무실을 얻어 독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캘리그라피를 독립적 영역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미흡했던 것이다. 사무실 적자가 누적됐다.

방황하는 그에게 김대헌 사장은 국민대 변주석 교수를 소개시켜 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포스터에서 강렬한 붓 터치로 축구경기장을 표현해 주목을 받았던 디자이너다.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당신 혼자 구석에서 아무리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한마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이슈화시키라는 조언이었다. 2003년, 그가 주도해 필묵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고 5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첫 전시회도 열었다. 서서히 입소문 마케팅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마침 디자인 업계에 불어 닥친 감성 마케팅도 부채질 역할을 했다.

붓으로 쓴 손글씨는 워낙 개성이 강해 글자 자체의 조형미도 중요하지만, 다른 디자인적 요소, 즉 그림이나 사진 등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가 관건이다. 영화 〈챔피언〉 포스터를 제작할 때는 글자의 획이 영화배우 유오성의 팔 근육과 잘 어울리도록 배치했다. 〈복수는 나의 것〉 포스터에서는 배경의 물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글자 윗부분을 번지게 표현했으며, ‘것’자의 ‘ㅅ’은 칼의 비주얼과 연계성을 주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포스터들이 처음 나왔던 2002년만 해도 영화 제목이 붓글씨로 쓰여 있는 포스터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돼 버렸다.

혼자 백의종군하던 7년 전과 비교해 필묵은 이제 디자이너 10명 규모의 꽤 알찬 회사로 발전했다. 일반인 대상 손글씨 강좌를 여는 필묵아트센터도 자리를 잡아 개강 한두 달 전에 일찌감치 마감될 정도다. 그러나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멋이 듬뿍 담긴 캘리그라피로 세계에 진출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마음속에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일본의 상업 서예가들과 현재 접촉 중이다. 또 ‘생활 속의 서예’를 표방하며 머그잔, 조명등, 티셔츠 등 생활용품에 손글씨를 접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리랑시계’는 4월 초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출품된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 오션이 별거겠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분야에 진출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낸 그야말로 블루 오션의 실천자일 것이다. 그런데, 정통 서예를 한 사람답게 매사에 진지한 그의 속마음에 조금은 엉뚱한 소망이 숨겨져 있다.

“언젠가는 무술과 서예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태권 동작이랑 붓을 놀리는 동작이 비슷한 데가 많거든요.” ■
  • 200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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