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 최초의 여성 CEO

이향림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

실용성과 안정성 때문에 4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선호한다는 스웨덴의 명차 볼보. 우리나라에 볼보를 판매하는 총책인 ‘볼보자동차코리아’의 대표는 여성인 이향림 씨(45세)다. 2004년 3월 취임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 최초의 여성 CEO가 된 그는 2005년 1월부터 볼보가 속해 있는 자동차 그룹 PAG(프리미어 오토 모티브 그룹)코리아 CEO까지 맡고 있다.

그가 CEO를 맡은 후 볼보자동차코리아는 매년 매출이 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수입 자동차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언니 같은 인상이었다. 앳된 목소리 때문에 전화를 받으면 “사장님 바꿔 달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자동차가 남성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요? 깨야죠. 자동차에 심취한 여성 인구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볼보를 남성들이 좋아하는 차라고 생각하지만, 국내 볼보자동차 운전자의 70%가 여성이에요.”

이 사장은 드라이빙광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고막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속도를 높여 달린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해 지금도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드라이버를 들고 달려들고 본다. 애프터서비스 요원을 부르면 집요할 정도로 옆에서 캐묻는다. 뭐든 한번 걸리면 놓지 않는 ‘집요함’이 그를 지금 이 자리로까지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화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분자생물학 교수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유학비용을 벌기 위해 일단 취직을 했다. 연봉 높은 곳을 골라 입사한 영국계 석유회사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코리아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비서부터 번역, 경리, 보고서 작성 등 8년간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자신이 재무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재무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주)크라이슬러코리아를 거쳐 볼보트럭코리아에 입사했고, 입사 3년 만에 CFO(최고재무관리자)가 됐다. 그 후 PAG 코리아 CFO 겸 재무 총괄 이사, PAG코리아 상무 겸 볼보자동차코리아 CEO로 초고속 승진을 계속했다. 볼보에 입사한 지 5년 8개월 만에 CEO까지 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초고속 승진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는 것이다.


뭐든 끝장을 보는 집요함과 호기심, 당당함이 성공 비결

계속 비결을 캐묻자 그는 “제 장점은 어떤 분위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이에요. 덕분에 중요한 자리에서도 여유 있게 제 의사를 피력할 수 있어요. 치밀하게 준비해 놓았다 기회가 왔을 때 꽉 붙잡는 거지요”라고 대답했다. PAG 글로벌 전략회의에 참석했을 때 본사 임원들의 웃음을 이끌어 낼 정도로 여유 있고 당당한 모습에서 점수를 따 PAG코리아 CEO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는 해외 유학은커녕 해외 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다. 그러면서도 국제회의를 이끌 정도의 수준급 영어를 구사하게 된 것은 ‘뭐든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영화광이었던 그는 미군방송(AFKN)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곤 했는데,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그때부터 집요하게 영어를 공부해 결국 AFKN의 모든 프로그램이 귀에 술술 들어오게 됐다. 좋아하는 팝송이 생기면 그 노래가 실린 팝송 책 한 권을 몽땅 다 외우는 식이다.

집요함에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까지 갖췄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에도 전문가 급이 됐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85년, 그는 새로운 시대에는 컴퓨터 사용능력이 필수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컴퓨터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컴퓨터 프로그래머 코스에 등록했어요. 내게 필요한 것은 액셀 프로그램과 워드 프로세서를 익히는 정도였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정이 뭔지도 모르고 배우기 시작한 거죠. 그때 커리큘럼이 살인적이었는데, 훗날 그 덕을 많이 봤어요.”

남보다 일처리 속도가 몇 배 빨라졌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해결사가 됐다. 자신의 일을 해치워 놓고 다른 일까지 기웃거리다 보니 여러 가지 일에 통달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이력을 보니 1993년 8월부터 3년간이 공백기다. 아이를 낳은 후 8년 동안 근무했던 BP코리아를 미련 없이 떠났다고 한다. 그 후 3년 동안 육아에 몰두했는데, 아이가 주는 기쁨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CFO(최고 재무관리자)가 되기로 목표를 세우고 집에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사업자 등록까지 한 후 회계전문 용역을 맡아 일했고, 남의 손에 맡길 만큼 아이가 크자 (주)크라이슬러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여성’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 도움을 받지만 식구들 아침만은 자신의 손으로 꼭 챙겨 먹이고, 남편에게는 “애교 넘치는 아내”라고 한다. 시티 파이낸스 이사인 남편 박성수 씨와는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일에 대해 서로 카운슬링해 주는 둘도 없는 친구지만, 차 한 대로 움직여야 할 때는 서로 운전대를 잡으려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험악해진다고 한다.

볼보코리아는 업계에서 ‘여인천하’로 불린다. 김보미 마케팅 이사, 이관희 마케팅 과장 등 핵심적인 위치에 모두 여성이 앉아 있다. ‘수평적 리더십’을 실천하고 싶다는 그는 “권위적인 것은 딱 질색이라 전화로 직원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일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직원 자리로 가서 이야기한다면서 “의사소통이 원활한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
  • 2006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