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점장 된 고졸 여행원

김현숙 하나은행 서청담 지점장

글 한민정 파이낸셜 뉴스 기자 | 사진 이창주
동생이 많아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공인재무설계사, 투자상담사 등 4개의 자격증을 따 내며 배움의 한을 풀었다.
하나은행 창립 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경영평가 대상’을 받은 김현숙 서청담 지점장(42세)은 인터뷰 약속을 위한 전화통화에서도, 만난 자리에서도 지나치게 조명을 받는 것에 대해 적잖이 경계하고 있었다.

“직원 모두가 함께 한 일인데 혼자서만 조명을 받으니 제가 잘나서 그런 것처럼 비춰질까 걱정스럽습니다.”

‘경영평가 대상’은 전국 600여 개 하나은행 영업점 중 가장 성과가 좋은 지점장에게 돌아가는 상. 서청담 지점은 직원 10명이 한 해 44억 원의 이익을 올리면서 예금, 대출, 외환, 카드, 방카 슈랑스, 고객 민원 등 전 분야에 걸쳐 최고 평점을 받아 이 상을 받았다.

김현숙 지점장은 탁월한 영업실적으로 ‘영업의 귀재’라는 말을 들어 왔던 인물. 2001년 압구정 지점에 근무할 때 ‘우수 PB 특별상’, 2003년 반포 서래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경영평가 우수 영업점상’을 받은 데 이어 2005년 ‘경영평가 대상’을 받았다. 그는 모두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절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 상을 받은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혹시 이 때문에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1981년 동구여상 졸업과 함께 은행에 들어온 그는 25년에 이르는 은행원 생활 동안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고객을 만나면서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해 왔다. 그 자세가 혹 자만심 때문에 흐트러질까 걱정하는 듯이 보였다.


학력 콤플렉스 극복하기

김현숙 지점장은 고졸 여행원 출신이다. 돌봐야 할 동생이 많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업 고등학교(동구여상)로 진학해 취직을 준비한 그는 여상 졸업생들에게 ‘최고의 직장’이었던 은행에 취직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고졸 여자 행원은 대학을 나온 남자 행원과 경쟁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기회를 찾아 과감한 선택을 했다. 1993년, 12년 동안 근무하던 은행을 떠나 공채를 통해 하나은행의 대리로 자리를 옮긴 것. 전 은행에서 여자 행원들은 창구 업무밖에 할 수 없었다. 직접 영업을 뛰어 실적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은행을 옮겼다고 한다. 2002년 그의 첫 직장이었던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해 이제는 옛 동료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1995년 하나은행이 부자 고객을 대상으로 PB(프라이빗 뱅킹) 영업을 시작할 때 그는 누구보다 먼저 PB가 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집 근처 독서실에 등록한 후 밤마다 지친 몸을 다잡고 공부해 공인재무설계사, 투자상담사 등 4개의 자격증을 따 냈다. 제대로 공부해 자격을 갖추고 PB로 활약하고 싶었고, ‘길게 배우지 못한 한(恨)’도 풀고 싶었다.

“학력 콤플렉스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어요. 학벌 좋고 각 분야에서 전문가인 고객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이 제 학력에 대해 물어보시면 ‘전 공부를 잘 못했어요’라고 얼버무렸죠. 그러면서 한편, 배움이 짧은 내가 그런 분들께 조언할 입장이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은행에서 마련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자격증을 잇달아 따면서 그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얻었고, ‘상고 출신’이라는 것을 떳떳이 밝힐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다만 20대에는 가족들을 챙기느라, 30대에는 영업에 몰두하느라 놓쳤던 대학 교육을 이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이 김 지점장의 작은 소망이다.

그가 행원에서 대리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은 12년. 그러나 대리에서 지점장이 되는 데는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워낙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술을 못하는 것이 영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 대신 ‘찾아가는 영업’으로 자신을 친구처럼, 딸처럼 여기는 고객들을 많이 확보해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렸다.

“술을 못 먹는다고 고객 만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잖아요. 부지런하다는 장점 하나만 믿고 몸으로 부딪쳤죠. 잠을 줄이고 새벽에는 골프연습장으로 나가 고객들과 안면을 텄습니다. 우리 은행 고객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열심히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생겼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대신 술자리의 뒤처리를 도맡는다. ‘대리 운전’을 자청해 고객을 집까지 모셔다 드릴 때도 있다고 한다. 어느 음식점이 맛있다거나 어느 한의원이 용하다는 소문을 들으면 직접 가서 먹어 보거나 체험해 본 후 고객들에게 알려 준다. 이 때문에 집안 대소사까지 상담해 오는 고객들이 많다. 감성 마케팅으로 접근한 덕분인지 지점을 옮겨 다니는데도 20여 년 가까이 김 지점장만 찾는 ‘단골’ 고객들이 자식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를 하소연하기도 한다.

2005년 하나은행 경영평가 대상을 수상하는 김현숙 지점장.
2002년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는 이제 개인 실적이 아니라 지점의 실적으로 평가받는 자리에 올랐다. 고객 만족뿐 아니라 직원 만족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해지고, 그것이 곧 영업실적으로 연결된다”는 게 그의 생각. 직원들과의 유대 형성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근무하던 지점이 2003년, 2005년 연이어 상을 받으면서 ‘직원들을 신나게 뛰게 하는’ 관리자로서 그의 능력도 인정받은 셈이다.

“지난여름 직원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했어요. 비행기 대신 KTX와 배를 이용했죠. 부산까지 KTX를 타고 가면서 1∼2시간마다 짝을 바꿔 앉게 했어요.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죠. 밤에 잘 때도 제비뽑기로 짝을 정했어요. 안 그러면 평소 친하던 동료하고만 자려 할 테니까요. 소원하던 사이끼리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되도록 했어요.”

올해에는 ‘경영평가 대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지점 직원 전원이 해외여행을 갈 계획이다. 점포 영업시간이 끝나고 하루 정리를 다 마쳐야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는 지역만 갈 수 있는 등 선택의 폭이 좁지만 함께 간다는 생각만으로 즐겁다고 한다. 한 달씩 약속을 미리 짜 놓고 고객을 만나는 그는 매주 금요일 점심만은 비워 둔다.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가 가장 공을 들여야 할 서비스 대상이 부하 직원이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은 직원들에게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게 해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가족의 날’로 정해 6시 30분이면 모두 퇴근하게 합니다. 가정이 원만해야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즐겁기 때문이죠.”

그도 일요일 하루만은 가족과의 시간으로 무조건 비워 놓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토요일에는 고객과의 골프 약속으로 새벽같이 나갈 때가 많은데, 아무리 이른 새벽이라도 골프백을 들어 주며 배웅하는 남편과 시아버지, 엄마 도움 없이도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고등학생 딸까지 가족은 그의 또 다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서청담 지점은 얼마 전 소매금융점포에서 기업금융까지 함께하는 복합점포로 바뀌었다. 점포 인근의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욕심을 낸 김 지점장이 변경을 신청했다. 기존 강점인 VIP 영업과 가계여신, 방카 슈랑스와 함께 기업금융까지 할 경우 더욱 수익을 많이 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은 복합점포로 변경되면 지점장이 바뀌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여성 지점장들은 대개 소매금융점포에 배치되고, 기업점포나 복합점포에는 거의 없거든요.”

그러나 하나은행은 김 지점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복합점포도 맡기기로 했다.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제가 워낙 도전이나 변화를 즐겨요. 기업금융을 새롭게 맡아 떨리고 걱정도 되지만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정도로 한가족이 된 우리 직원들과 함께라면 분명히 잘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이 사람의 성공 비결

◎ 기회를 포착, 도전했다
12년간 다니던 은행을 퇴직, 공채로 새 직장에 들어가 대리가 됐다.

◎ 쉬지 않고 공부했다
퇴근 후 독서실에서 공부, 자격증 4개를 따 냈다.

◎ 밀착, 감동 서비스로 고객 마음을 샀다
음식점과 한의원, 여행사 정보까지 확보해 고객을 위한 정보통이 되고, 친구처럼 딸처럼 지내며 마음을 샀다.

◎ 부하 직원도 서비스 대상이다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 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영업실적으로 연결된다는 게 그의 신념. 직원 만족을 위해 갖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 가족의 후원을 받았다
시아버지, 남편, 딸이 모두 그의 후원자. 그들을 위해 일요일 하루만은 비워 둔다.
  • 200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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