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안 갈아 주는 수족관을 아십니까?

2005 ‘신지식인’ 양기해 (주)세기종합환경 대표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명가들은 알고 보면 간단한 생활 속 과학의 원리를 응용해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주전자의 물이 끓어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조지 스티븐슨이 그렇고, 인디언 추장의 창 끝을 보고 위쪽에 있는 바늘구멍을 아래쪽으로 옮겨 재봉틀을 발명한 엘리아스 하우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 또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개선하려 노력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굳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양기해 (주)세기종합환경 대표는 발명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미생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산소가 많아야 잘 산다는 상식적인 원리를 오·폐수 처리 장치에 응용, 기존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고 친환경적인 정화 기술을 고안해 냈다. 이 기술로 그는 2005년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주)세기종합환경은 전북 전주에 있는 전라북도 생물벤처기업지원센터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스무 평 정도인 연구실을 겸한 그의 사무실에는 크고 작은 수족관들이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오·폐수 처리 시스템에 이어 부수적으로 발명했다는 수족관 ‘누나’의 모델들이었다. 일명 ‘물 안 가는 수족관’으로 불리는 이 수족관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물을 안 갈아 줘도 되는 수족관 ‘누나’는 늦둥이 아들 현호 때문에 우연히 발명했다고 한다.

“현호가 세 살 되던 해 봄이었어요. 어느 날 저녁 약속이 있어 급히 외출하려는데 아이가 물고기 밥을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안아 수족관 가까이에 대 주었는데, 아이가 그만 물고기 밥을 봉지째 수족관에 쏟아 부었어요. 약속 때문에 시간도 없고, 나중에 다녀와서 청소해 주면 되겠지 하고 그냥 외출했는데, 세 시간쯤 후 돌아와 보니 물고기가 반 이상 죽은 데다 수족관 물이 심각하게 오염돼 있었어요.”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물고기들을 위해 수족관 물을 교환하면서 그는 ‘수족관 물을 갈아 주지 않아도 깨끗하게 유지되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곧 수족관 모형을 만들어 실험에 착수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수족관을 2층으로 구성, 아래층에는 물고기를 기르고 위층에는 계단식 미생물막을 설치해 물고기 밥 찌꺼기나 배설물이 정화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족관 속에 생기는 오물은 세균이, 세균은 미생물이, 미생물은 원생동물이, 원생동물은 물고기가 먹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물을 갈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양 대표는 “미생물막 주변에 다양한 수생식물이나 고구마와 감자 같은 야채를 심으면 잘 자라서 집 안의 작은 정원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자연친화적 수족관은 집 안에서 생태계를 볼 수 있어 아이들 정서 함양이나 교육에도 효과적이지만 무엇보다 건강에 좋아요. 수족관에서 음이온이 자연적으로 발생돼 새집 증후군 같은 집 안의 독소를 중화시키거나 흡수하기 때문이죠.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가 있다면 한번 사용해 보는 게 좋습니다.”

물 안 갈아 주는 수족관 ‘누나’의 원리는 간단하다. 미세한 실로 된 미생물 집을 산소가 풍부한 밖으로 꺼낸 다음, 펌프를 이용해 더러워진 물이 통과하게 하면 된다.
양 대표는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공기 청정기도 개발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일반 청정기는 필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미세먼지는 그냥 통과시킨다는 한계가 있다. 그는 이 같은 한계를 물과 미생물막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미세먼지는 물로 흡착해 제거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 수족관 ‘누나’의 원리에 공기를 순환시키는 송풍기를 단 청정기를 개발한 것이다. 그가 개발한 이 기술들은 모두 특허 등록돼 있다. 그는 “당장 제품화해도 되는 6개의 기술 외에도 총 43개의 아이템을 특허 출원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수족관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폐수 처리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영국식 오·폐수 처리 시스템은 정화조 안에 미생물을 배양하고, 그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함으로써 수질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생물이 잘 자라도록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전문 인력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료와 인건비 등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양 대표가 개발한 ‘YAN’ 시스템은 미생물막을 정화조 밖으로 꺼내 자연적으로 배양한다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미생물 배양 환경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어 에너지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대표가 발명한 ‘YAN’ 시스템은 밖으로 빼낸 미생물막에 오·폐수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정화가 이뤄진다. 그는 너무나 간단한 이 원리를 ‘산소를 좋아하는 미생물을 왜 물속에서 배양하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찾았다고 한다.

‘누나’의 원리를 이용하면 바닷물도 정화가 가능해 해양동물도 수족관에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아들 현호와 함께.
양 대표는 이 시스템 개발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환경전문가가 됐고, 여러 개의 국제특허도 받아 놓은 상태다. 미국, 중국, 호주 등지에서는 벌써부터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싶다는 제의가 오고 있단다. 인공 섬 건설로 바닷물 오염이 심각한 두바이는 현지에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기술이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사업을 확장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환경공학과 출신의 양기해 대표는 전북 군산의 빈농 집안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가 환경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입 재수생 시절이었다고 한다.

“대입 학력고사를 치른 후 포항제철에 근무하는 형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장이 없어 청정지역이나 다름없는 전라도에서만 생활한 제게 충격적이었죠. 그때 마침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과 선택으로 고민하던 시기여서 환경공학이라는 분야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폐수 처리 시스템 개발에 나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할 수 없어서였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학 3학년생이었고, 전북대 내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계엄군에 체포됐다. 그 이력 때문에 국내 어느 기업에도 취업할 수 없었다고 한다(양 대표는 5?8 유공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한 그는 1989년 전주에 살던 누이네 연탄가게 한쪽을 빌려 공장 폐수 처리 시설을 시공해 주는 (주)세기공해를 설립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그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그는 지금껏 한 우물만 팔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며, 물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 200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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