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천사의 음성, 나나 무스쿠리

긴 생머리 휘날리며 감미롭게 노래하던 그녀가 70세란 사실을 누가 믿을까?

글 류태형 월간 <객석> 기자
글쓴이 류태형님은 월간 〈객석〉 기자로 활동 중이며 KBS-1 FM <출발 FM과 함께> 프로의 ‘류태형의 출발 퀴즈’ 코너에서 매일 아침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평론가들은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고 평한다.
뿔테 안경에 흰색 옷을 입고 긴 생머리 휘날리며 들려오는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는 애틋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나나 무스쿠리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세월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존재다. 그녀의 나이가 70이 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어릴 적부터 그녀의 모습은 익숙했다. 청순하며 섬세하고 깊이 있는 그녀의 노래는 긴 세월 동안 많은 가지를 아름답게 드리운 아름드리 나무와 같이 느껴진다.

나나 무스쿠리는 마리아 칼라스, 아그네스 발차와 함께 그리스가 배출한 위대한 디바(최고의 여자 가수)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평생 오페라와 리사이틀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계의 두 여인과는 달리 무스쿠리의 음악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이와 계층을 불문하고 스며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는 모든 음악의 고향과 같이 편안하고, 어머니와 같이 푸근하다.

요안나(나나의 본명) 무스쿠리는 1934년 10월 13일 토요일 새벽 5시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아테네의 작은 영화관에서 영사 기사로 일했기 때문에 세 살 때부터 영화관 뒤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따라서 나나 무스쿠리의 어린 시절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영화관의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인생은 그녀의 꿈이었다. 특히 뮤지컬 영화를 좋아했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쓰곤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전쟁에 대한 공포가 지배한다. 걸핏하면 공습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때마다 요안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노래로 이겨 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그녀의 회고담.

“지금도 폭격으로 인한 공포와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요. 어린 시절에 체험한 전쟁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죠. 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평화와 사랑,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나 무스쿠리는 열두 살 때부터 보컬 레슨을 받았다. 그 무렵 접한 프랭크 시나트라나 엘라 피츠제럴드, 에디트 피아프의 음악은 그녀의 삶의 나침반을 돌려 놓았다. 열다섯 나이에 그녀는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했지만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버지가 조립한 라디오로 아테네 방송의 재즈 프로를 들었다.

그녀는 클래식 음악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미쳐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나 듀크 엘링턴의 재즈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조니 미첼이나 조운 바에즈의 포크를 즐겨 듣기도 했고, 레오 페레나 자크 브렐 같은 샹송 가수들은 그녀의 우상이었다.

이러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두기에 클래식의 영역은 좁기만 했다. 그녀는 재즈 밴드에서 노래를 시작하면서 아테네 음악원의 이단아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결국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아테네 방송국에 출연하여 소편성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한 것이 물의를 일으키면서 그녀는 졸업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때부터 수년간 그녀는 클럽에서 노래하며 기약 없는 삶을 이어 갔다.

때마침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그리스 음악계의 거인으로 꼽히는 마노스 하지다키스가 그녀를 찾은 것이다. 하지다키스는 무스쿠리의 노래에 깊이 공감하고 그녀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1958년 무스쿠리는 하지다키스가 작곡한 노래를 담은 음반을 발표했다. 이듬해 그리스 음악제에서 대상, 지중해 음악제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녀는 확실한 실력파 가수로 떠올랐다.

이후 해외에 진출한 무스쿠리는 하지다키스의 노래 <아테네의 흰 장미>를 독일어 가사로 부른 음반이 독일에서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월드 스타로 대접받는다. 이 무렵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가 <하얀 손수건>으로 번안해 부른 가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하지다키스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1960년)의 주제곡도 무스쿠리가 불렀다.

1963년에는 유러비전 송 페스티벌에 참가해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앨범은 프랑스와 벨기에, 이탈리아 등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해리 벨라폰테와 <벨라폰테와 무스쿠리의 밤>이라는 앨범을 발매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앨범도 큰 반향을 일으켜 두 가수는 캐나다와 미주 지역을 투어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녀는 흑인 가수인 벨라폰테에 쏠리는 인종 차별의 편견을 함께 맞서 싸웠다. 나나 무스쿠리는 벨라폰테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벨라폰테 역시 무스쿠리에게 정체성 확립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무스쿠리는 자신의 음악으로 사랑과 평화에 대한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해 나갔다.

평론가들은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고 평했다. 마치 도노반이 ‘밥 딜런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고 평가받은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은 재즈와 팝, 록, 샹송, 그리스 전통음악, 오페라 아리아, 종교음악,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또 모국어인 그리스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7개 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해 들려준 번안곡이나 편곡들은 원곡의 존재를 떠나 그 자체로 ‘나나 무스쿠리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 월드 투어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은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발표했지만,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가 가장 사랑받았고, 그로 인해 원곡의 뜻(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곡)과는 달리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불리는 일이 많아졌다.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 가운데 ‘보리수’를 노래한 ‘린덴바움’(Lindenbaum)은 원곡대로 독일어로 부르는데, 그녀의 동경을 품은 듯한 아련한 목소리는 색다른 감상을 안겨 준다. ‘오버 앤드 오버’(Over And Over)는 급박한 시대성과 연애의 애틋함을 살리는 드라마의 장면들에서 많이 사용되면서 21세기의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사랑받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자.

“음악에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마술이 있어요. 어릴 적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저는 노래를 통해 이를 견뎌 냈어요.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을 겁니다. 아무리 지치거나 슬퍼도 무대에만 나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어요. 노래는 나를 안정시켰고 힘을 북돋워 주었죠. 청중들은 나를 고무시키고 내가 노래하는 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 주었어요. 무대에 서는 것은 치유 받는 일이었어요.

이처럼 만인의 연인이며 누나, 어머니 같았던 나나 무스쿠리가 팬들의 곁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월드 투어에 나섰다. 그 여정에 우리나라가 포함되어 있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르른 10월의 가을 하늘 아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가 우리 앞에서 노래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하루하루 각박하게 살아가며 우리는 마음의 고향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 온 것은 아닐까. 그 작지만 뭉클한 노스탤지어의 등불을 켜 주러 그녀가 오고 있다.

“음악에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마술이 있어요. 어릴 적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저는 노래를 통해 이를 견뎌 냈어요.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을 겁니다. 아무리 지치거나 슬퍼도 무대에만 나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어요. 노래는 나를 안정시켰고 힘을 북돋워 주었죠. 청중들은 나를 고무시키고 내가 노래하는 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 주었어요. 무대에 서는 것은 치유 받는 일이었어요. 나의 마음을 내보이고 그보다 더한 사랑을 받는 일이었죠. 청중들이 손을 내밀어 저를 포옹하는 것 같았어요.” ■
  •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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