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남녀의 다른 질투 전략

보험회사에서 오랫동안 영업사원으로 일한 M씨는 입사 17년 만에 드디어 최고 영업 관리자 자리인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승진을 누구보다 좋아한 사람은 당연히 아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태도가 점점 이상하게 변했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남자 선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며 그 선배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등 다른 남자 이야기를 부쩍 자주 했다. 어떤 날은 부부가 함께 참석한 모임에서 다른 남자들이 말을 할 때마다 활짝 웃음을 터트리는 아내 모습에 M씨는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아내의 그런 행동은 M씨 회사의 여성 보험설계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유독 심해졌다.

M씨의 아내가 그런 행동은 한 것은 바로 남편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의 ‘성적 시장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중 절반 이상이 비슷한 상황에서 일부러 파트너의 질투를 유발했다.

성적 시장가치는 돈, 권력, 명예, 외모, 젊음 등 다양한 요소로 결정된다. 남녀 사이에서는 성적 시장가치가 떨어지는 쪽일수록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M씨의 아내 역시 잘나가는 남편에 비해 갈수록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성적 시장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편이 승진하거나 갑자기 유명해졌을 때 이처럼 종종 아내들이 고의로 남편의 질투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앞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남성 중 약 20%는 자신의 성적 시장가치가 열등하다고 느낄 때 파트너의 질투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투는 흔히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이 갖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도 여자만큼이나 질투를 많이 한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이 미국 성인 18~80세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질투심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은 79%, 남성은 74%가 최근에 질투심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질투를 하는 남녀의 비율은 거의 동일한 셈이다.

그런데 질투를 하는 상황은 남녀가 매우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 남성은 여자가 육체적으로 바람을 피울 때 질투심이 최고조에 달하지만, 여성은 남자가 정신적으로 바람피우는 것을 더 싫어한다. 다시 말해 남자는 파트너의 육체적 배신에 더 화를 내는 반면 여자는 마음만 변해도 배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질투와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는


이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연구가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가 1992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그는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인의 여러 가지 불륜 상황을 제시한 뒤 언제 더 질투심을 느끼는지 물었다. 그 결과 남성들은 60%가 연인의 성적 불륜에 질투심을 더 느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여성들은 83%가 연인이 감정적으로 다른 여자에게 집착할 때 질투심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버스 박사는 이 같은 결과가 신체적 반응과도 일치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남녀 대학생에게 자율신경계 흥분 상태 및 맥박수를 측정하는 장치를 부착한 후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장면과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두 가지 상황을 각각 상상하게 했다. 그 결과는 앞의 설문조사 결과와 일치했다. 즉, 남성들은 연인의 불륜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자율신경계가 흥분하고 맥박수가 높아진 데 비해 여성들은 연인의 감정적 집착을 상상했을 때 그 수치가 높아진 것이다.

남성은 연인의 섹스, 여성은 연인의 정서적 부정에 더 화를 낸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일치한다. 이는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기가 자신의 자식임을 100%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아기를 직접 출산하지 않는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남성이 연인의 성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친자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육아가 더 중요하다. 자신의 연인이 딴 여자와 일회성 섹스를 한다면 육아에는 그리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연인이 아예 딴 여자에게 홀딱 빠져버린다면 자신과 아이는 생존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원시시대부터 형성된 이런 성향이 남녀 간에 다른 질투 상황을 연출하게 된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혹시 있을지 모를 연인의 외도에 항상 민감하게 촉을 세우는 쪽은 남성들이다. 미국 코먼웰스 대학 연구진은 한때 외도를 한 경험이 있는 파트너가 일부 포함된 커플 200여 쌍을 대상으로 비공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상대방이 실제로 외도를 했을 때 남성의 94%는 이를 정확히 감지했지만 여자는 그 비율이 80%였다. 또한 남성은 커플의 외도 상대를 알아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조사 대상 남성의 75%가 연인의 외도 상대를 정확히 지목한 데 비해 여성은 41%에 그쳤다.

반면 여성은 배란기에 매우 예민해진다. 캐나다 연구진은 여성에게 생전 처음 보는 다른 여성 사진을 보여준 뒤 얼마나 매력적인지 점수를 매기게 했다. 그런데 똑같은 얼굴임에도 배란기를 맞은 여성은 유독 사진 속 여성의 용모에 낮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배란기가 되면 여성은 본능적으로 다른 여성을 경쟁 상대로 의심한다는 의미다.

또한 여성은 배란기를 맞은 다른 여성을 상대적으로 더 경계하는 성향을 보인다. 미국 연구진은 파트너가 있는 100여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동일 여성의 사진 두 장을 각각 보여줬다. 한 사진은 그 여성이 배란기일 때 찍은 얼굴이고 다른 사진은 배란기가 아닐 때 찍은 얼굴이었다.

연구진이 실험 대상 여성들에게 두 사진 중 어느 것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지 물은 결과, 배란기가 아닐 때의 모습을 선택하는 비율이 배란기 때보다 약 15% 더 높았다. 이는 배란기를 맞은 여성, 즉 더 매력적인 얼굴의 여성을 자신의 사랑에 대해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질투가 하나의 연애 전략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질투는 매우 큰 고통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캐런 배일 교수팀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티티원숭이를 대상으로 질투심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자신의 짝이 낯선 수컷 원숭이와 함께 있는 것을 본 남편 원숭이들은 사회적 고통과 관련된 대뇌 피질 부위가 활성화되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질투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신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질투가 종종 두 사람의 관계를 망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애교스러운 질투는 상대의 사랑을 붙잡아두는 연애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심한 질투는 연인 관계 자체를 망치는 해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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