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미투’ 가늠하는 신체 접촉의 규칙

“장례식장에서 옆자리에 앉아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현직 여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한국판 미투(Me Too) 운동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폭로가 계속되니 이제는 꽤 가까운 사이라도 가벼운 포옹 같은 스킨십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스킨십은 인간에게 허용된 가장 큰 축복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신체 및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보육원에서는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수용해 좋은 음식과 깨끗한 환경을 제공했는데도 거기서 자란 아이들의 사망률이 유독 높았던 것. 이에 대한 수수께끼는 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자 해리 할로 박사에 의해 풀렸다.

그는 새끼가 어미를 따르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하나는 철사로, 다른 하나는 포근한 헝겊으로 원숭이 어미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원숭이 새끼를 어미 모형이 있는 우리에 넣었다. 그는 당연히 새끼 원숭이가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를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헝겊으로 만든 엄마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철사로 만든 엄마에게는 우유병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새끼 원숭이는 온종일 헝겊 엄마에게만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우유를 먹을 때만 잠시 철사 엄마를 찾았던 것. 이 실험으로 새끼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젖이 아니라 엄마의 포근한 품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후 추가 실험을 통해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하고 자란 새끼 원숭이의 경우 뇌에 손상을 입으며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오감 중 촉각만 느낄 수 있으면 다른 네 가지 감각을 잃은 새끼 원숭이보다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촉각을 느낄 수 있는 피부는 태내에서 만들어질 때 뇌와 똑같이 외배엽으로부터 발달하므로 ‘제2의 뇌’라고 불린다. 피부와 뇌는 섬세한 회로로 연결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피부에 가해지는 약한 자극도 뇌에 잘 전달된다. 아기를 더 많이 안아줄수록 뇌가 발달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추위와 위험 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무게 3kg의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기관이기도 하다.


포옹과 스킨십의 효과


포옹과 스킨십의 효과는 과학 실험에서도 증명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진은 커플 100쌍 중 50쌍에게 손을 잡은 채 영화를 보게 한 뒤 20초 동안 포옹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50쌍에게는 아무런 신체 접촉 없이 영화를 보게 한 뒤 참가자 모두에게 최근에 받았던 스트레스에 관해 이야기하게 했다.

그 결과 신체 접촉이 없었던 커플은 신체 접촉이 있었던 커플에 비해 혈압 및 심장박동이 두 배 이상 높았으며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량도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늘어나는 호르몬이다.

포옹을 하거나 피부가 서로 닿으면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이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랑과 행복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도 관련이 있어 사회적 상호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엔도르핀은 모르핀과 같은 진통효과를 가지는 호르몬인데, 이것이 분비된다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엄마의 포옹은 때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2010년 3월 호주 시드니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실제로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쌍둥이 중 한 명이 출생 20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자 엄마가 작별 인사라도 하기 위해 죽은 아기를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몇 분 후 사망한 아기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 이 사건은 캥거루 케어의 효과를 입증한 사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캥거루 케어란 이처럼 엄마와 아기가 서로 피부를 맞대고 포옹함으로써 신생아의 정서 안정과 발달을 돕는 케어 방법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와 가슴의 맨살을 밀착시켜 피부를 자극하는 것이다. 캥거루 케어를 받은 아기의 경우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주사를 놓거나 혈액을 채취할 때 덜 운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는 프리허그(Free Hug) 캠페인이나 커들러(Cuddler)라는 신종 직업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에는 돈을 받고 타인을 안아주는 커들러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뉴욕타임스는 커들러의 주 고객이 이혼한 50대 초반 남성이라고 보도했다.


포옹 많은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

킨제이연구소가 5개국의 중년 및 노년의 결혼한 이성애자 커플 1000쌍을 조사한 결과, 포옹 등의 스킨십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50대 남성은 신체적 접촉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기도 하다. 남성의 경우 동성 간에는 친한 사이임에도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 간 접촉 회피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조선시대 때만 해도 모르는 남성들끼리 주막의 봉놋방에서 함께 잠을 잤으며, 에이브러햄 링컨도 수년간 남성 친구와 한 침대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현대 남성들에게 신체적 접촉은 이제 폭력 아니면 동성애만을 의미하게 됐다.

이처럼 남성들 간의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사회는 오히려 폭력성이 극대화된다. 2002년 《청소년과 청소년기 저널(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49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아이들에게 육체적 애정 표시를 금지하는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은 문화권보다 성인들 간의 폭력 사건이 더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세계 400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포옹을 많이 하는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포옹과 스킨십의 효과가 아무리 긍정적일지라도 여기엔 지켜야 할 규칙이 하나 있다. 반드시 편하고 익숙한 사람과의 포옹이어야 한다는 것.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구팀이 2013년 발표한 연구결과, 불편한 상황이거나 낯선 사람과 포옹할 경우에는 옥시토신 대신 코르티솔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불안감 및 우울증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나쁜 호르몬이다. 즉, 낯설거나 원치 않는 상대와 포옹하면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포옹의 효과를 더 크게 보는 이유는 포옹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가 싫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건 진리다. 프리허그나 커들러 산업이 더는 확장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 규칙 때문이며, 자신의 신체 접촉 행동이 ‘미투’에 해당하는지의 기준 또한 이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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