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율 이정은 대표

“한국 수공예 명품으로 세계에 K럭셔리 붐 일으키고 싶어요”

글 : 이근미 객원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한국 수공예 명품 브랜드 ‘채율’의 이정은 대표를 만나면 여러 차례 놀라게 된다. 진열된 제품들이 너무 고혹적이어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명품관에 입점한 유일한 한국 매장이라는 사실에, 대표가 30세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전국 백화점 명품관에 입점한 한국 매장은 단 3개. 모두 채율 매장으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압구정점, 대구 대백프라자점에 있다.

채율의 제품은 수십만 원대부터 억대까지 다양하다. 분류하자면 가구(나전칠기 장롱, 약장, 콘솔, 티 테이블, 서랍장, 식탁, 의자), 웨딩(목걸이, 반지, 귀고리, 브로치, 보석함, 구절판찬합, 경대, 거울, 반상기, 수저세트), 기프트(돌반지, 항아리, 화병, 휴지케이스, 액자, 다기세트, 나무쟁반, 필함, 약통, 손거울)로 나눌 수 있다. 열거한 것 외에도 여러 제품이 있는데 이정은 대표는 손으로 만드는 건 무엇이든 가능하다며 제품을 얼마든지 늘려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 명품매장과 이웃하고 있는 만큼 구매층은 여유가 있으면서 전통을 중시하는 일반 고객이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영국 왕실, 일본 총리, 캐나다 총리, 인도네시아 총리, 중국 국가주석 등 여러 국가원수가 채율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기업이나 외교부에서 선물용 제품을 종종 구매해 간다.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예비부부들이 채율 제품을 예단으로 선택했고 칠보를 입힌 돌반지는 매일 판매될 만큼 인기다. 명품관의 어떤 제품들과 경쟁하는지 궁금했다.

“래커 칠을 한 억대의 해외 명품 가구를 쓰다가 우리 제품으로 교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연목에 옻칠을 17번 이상 하고 은칠보로 장식한 식탁이나 서랍장, 귀패로 마감한 장롱을 보고 마음을 바꾸신 거죠. 외국인들에게 품격 있으면서 한국적인 선물을 하려는 분들이 특히 좋아하십니다.”

2008년 출발한 채율에 50대 이상이 주로 방문했으나 몇 년 전부터 30대의 발길이 늘고 있다. 코엑스에서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면서 세계의 비즈니스맨들이 채율을 방문하고 해외 백화점 MD들도 종종 찾아온다. 채율의 강점은 재구매율이 90%에 이른다는 점이다.

채율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자연산이다. 오동나무, 물푸레나무 등 자연목에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자란 옻나무로부터 채취한 최고급 원액으로 옻칠을 하고, 칠보로 장식한다. 은칠보 제품은 일곱 가지 보물(금·은·유리·파리·차거·적주·마노)을 배합하여 만든 1000가지가 넘는 색깔로 다양한 문양을 입혀 만든다. 나전칠기 장롱은 옻칠을 한 후 가장 품질이 좋은 전복의 귀패로 마감한다.


인간문화재가 정성으로 만든 제품


모든 제품은 인간문화재의 지도 아래 장인들이 손으로 제작한다. 전통 약장을 그대로 재현하는가 하면 현대적 디자인과 칠보로 장식한 6단 약장, 4단 약장 같은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끼워 맞추고 칠하고 장식하다 보니 제작 과정이 오래 걸린다.

이정은 대표는 약관 20세에 사업을 시작했다.

“10년 전에 언니와 함께 출발했어요. 교환학생으로 뉴욕에서 1년간 지낼 때여서 외국 동향과 시장을 주로 검토했어요. 2008년만 해도 맨해튼 5번가(Fifth Avenue)에 한국 매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곳을 오가며 우리 매장을 명품 거리에 꼭 오픈하겠다는 다짐을 했죠. 돌아와서 대학을 마치고 영국 런던으로 가 2년 동안 석사과정을 할 때도 유럽시장 동향을 파악했어요. 언니가 결혼과 동시에 외국으로 떠나면서 2013년부터 제가 대표를 맡았습니다.”

대학에서 전통미술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영국에서 브랜딩 디자인 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전통 제품과 명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게 사업의 동력이 되고 있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 때 꼭 저를 데려가셨어요. 일곱 살 때부터 해외 박물관에 따라다녔고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브랜드에 관한 설명을 들었어요. 아버지께서 1989년부터 전국의 장인들을 후원하신 덕분에 저도 그분들이 일하시는 모습을 볼 기회가 많았어요. 채율의 1인 투자자는 바로 아버지세요.”

외부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덕에 차근차근 정도를 밟고 있다. 채율은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까지 일괄적인 시스템을 갖추었다. 채율 본사에서 디자인과 전체적인 관리를 하고, 전국의 전통 공방에서 생산하여, 백화점에서 판매한다. 세계시장을 살펴봐도 일관된 사업 구조와 유통 규모를 갖춘 전통 수공예 회사는 채율이 유일하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실 때 외국 분들에게 선물할 만한 게 없어 장인들께 주문하셨어요. 재료 구매도 도와주고, 이런저런 주문을 하다가 전통 수공예를 알게 되셨어요. 아버지의 몇 십 년 지기인 분들이 지금 저희 협력업체 개념의 직영 공방을 맡고 계신 거죠.”

공방마다 인간문화재의 책임 아래 여러 장인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기술이 있으면서 사장된 분들이 많아요. 문화재급 장인인데도 신청 절차를 잘 몰라 못 오른 분들이죠. 현재 공방마다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께 기술을 배우는 20대와 30대가 있어요. 채율이 잘되어 젊은 공예가들이 이 분야에 많이 진출하는 게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남원(목기), 원주(옻칠), 통영(자개)을 포함하여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경기도 등 전국에 장인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백의민족, 오방색을 상징처럼 얘기하지만 우리는 색채의 민족입니다. 침략을 많이 당하면서 139가지 색채 비결을 담은 자료를 약탈당하고, 맥이 끊어졌어요. 고려 자료들을 보면 핫핑크색도 있어요. 스카이블루는 우리의 천정색이고 베이비핑크는 복숭아꽃을 물들여서 우리가 이미 표현한 색이에요. 우리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낸 훌륭한 민족입니다.”


문화를 만든다는 각오로 일한다


수익에 관해 묻자 이 대표는 어마어마한 투자가 되어 있는 상태라며 ‘고군분투 중’이라고 답했다.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데다 문화를 알아야만 진입이 가능한 분야인 만큼 지치지 않으면 좋은 성과가 날 거라고 기대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입점 의뢰가 오지만 탄탄히 다져나가며 시장을 관망하는 중이라고 했다.

“성급하게 진출했다가 철수하면 안 되니까 현지인이 운영할 수 있는 대리점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어요. 매장 숫자보다 시장을 단단하게 잡아 나가는 게 중요해요. 해외 진출에 대비한 수용능력을 만들어나가는 시점이죠. 채율의 글로벌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데다 여성이어서 겪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연세 드신 문화재 선생님들과 장인 선생님들을 대하는 게 힘들었지만 차츰 익숙해졌어요. 여성 사업가로서의 어려움은 없어요. 곧 결혼하는데 육아와 병행하려면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이정은 대표는 K팝과 K푸드처럼 채율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K럭셔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치품이 아닌 한국 전통을 알리는 깊은 예술품, 문화를 만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사용하는 한국 전통 수공예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문화예술을 사람들의 일상에 옮겨놓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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