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슬기로운 감빵 생활〉 ‘해롱’이의 ‘동성애’는 왜?

영어권에서 남자 동성애자를 비하할 때 ‘패것(faggot)’이라는 속어를 사용한다. faggot의 원래 뜻은 땔감용 나무, 즉 장작이다. 과거 영국에서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할 때 장작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해 이제는 아예 동성애자를 경멸하는 말이 돼 버린 것이다.

가톨릭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동성애는 교회법에 따라 더욱 엄격히 다스려졌다. 즉, 동성애 자체가 범죄행위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1950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는 술집에서 동성애자들을 체포하는 게 경찰의 업무 중 하나였다.

성과학이 태동한 이후 과학자들은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여겼다. 따라서 수많은 동성애자가 호르몬요법이나 정신분석, 전기충격 치료 등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취급을 받은 사람 중에는 현대 컴퓨터의 원리를 제시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컴퓨터는 못하는 일이 거의 없는 만능 기계다.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웹 브라우저를 통해 전 세계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으며 동영상 재생, 게임 등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어떤 작업이든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컴퓨터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 범용성이다. 앨런 튜링은 이 같은 범용성을 컴퓨터에 최초로 부여한 주인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도 앨런 튜링 덕분이다.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생성기를 개발해 세계 각지에서 보고되는 비밀문서 전송이나 군 작전 통신 등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연합군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선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해야 했다.

하지만 독일이 만든 에니그마는 매우 복잡한 체계에 의해 암호가 만들어지고 경우의수 또한 인간이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많아 암호를 풀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튜링은 에니그마의 암호화 과정을 역추적할 수 있는 ‘봄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동성애를 들킨 과학자의 선택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봄베를 개선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암호해독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다. 이 기계는 암호를 전송받는 독일군보다 더 빨리 암호를 해독할 만큼 성능이 뛰어났다.

어느 날 연합군은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 잠수함에서 발사된 암호 전문을 해독했다. 그 결과 그들이 생각하는 연합군의 유럽 상륙작전 예상지는 노르망디가 아니라 칼레였던 것. 그처럼 암호 해독을 통해 독일군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할 수 있었던 덕분에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차질 없이 감행해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튜링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그의 동성애적 기질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의 엄격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튜링 역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자신의 동성애자 파트너가 집에 있는 물건을 훔쳐가자 경찰에 신고하면서 동성애자임이 그만 들통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해야 했다. 화학적 거세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는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튜링은 치명적인 신체 변화를 겪었다. 발기 불능과 중추신경계 손상,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청산가리를 사과에 주사한 후 그 사과를 먹는 방법으로 자살한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시신 옆에는 그가 한 입 베어 먹다 남긴 사과 한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독일군의 암호를 완벽하게 풀어낸 수학천재 튜링은 독사과를 먹는 자살 방식으로 과연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남기려 했던 걸까. 혹시 동성애란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고 얻은 인간의 원죄와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동성애는 유전한다?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암호를 풀기 위해 그동안 과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했다. 만약 동성애가 인간의 원죄, 즉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쌍둥이를 연구하면 된다. 실제로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마이클 베일리 박사는 161명의 남자 동성애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동성애자면 나머지 쌍둥이 형제가 동성애자일 확률이 52%인 데 비해 이란성 쌍둥이는 그 확률이 22%에 불과했던 것.

이 연구결과를 두고 베일리 박사는 동성애 유전자가 태아의 남성화를 막아서 게이가 된다는 게이 유전자 가설을 세웠다. 이밖에도 동성애가 유전자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까지 수없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동성애를 유발하는 구체적인 유전자는 밝혀진 바 없다.

동성애자는 선천적으로 다른 뇌 구조를 지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솔크생물학연구소의 사이먼 리베이 박사는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여성에 대한 성 충동을 지배하는 뇌 특정 부위의 크기가 정상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동성애의 결과로 일어난 후천적인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된 행동이라는 증거도 물론 있다. 미국의 ‘동성애 연구와 치료를 위한 전국연맹’의 조사결과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에서는 이성애적 성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동성애자 860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치료 전에 자신을 배타적이며 완전한 동성애자로 여긴다고 응답한 이가 68%였으나, 치료 후에는 단지 13%만이 자신을 여전히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응답한 것. 즉, 동성애자 중 32%는 처음부터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일지라도 대부분은 치료 후 그 같은 생각이 바뀐다는 내용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두 요소가 모두 작용한다는 이론이 점차 힘을 얻는 추세다.

그럼 당사자인 동성애자들은 정작 어떤 이론을 더 지지할까. 사실 그들은 동성애를 후천적인 것으로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선천적인 것으로 여기는 입장을 달가워하는 것도 아니다.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라면 정상인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동성애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사실 동물 세계에서도 동성애 현상은 매우 흔하다. 펭귄, 보노보, 갈매기, 기린, 알바트로스를 비롯해 바구미, 초파리 등의 곤충까지 약 1500종에서 관찰된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오직 한 종에서만 나타난다. 바로 인간이다. 현재 동성 간 성교가 불법인 나라는 78개국에 이르며,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고 있다.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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