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품격

영원한 젊은 오빠 / 임하룡

겁 많은 큰형 같은 선 굵은 조연

배우 임하룡(66)은 더는 희극인이 아니다. 책가방을 끼고 빨간 양말을 신은 채 다이아몬드 춤을 추던 모습은 아주 먼 추억이다.

대신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안긴 〈웰컴 투 동막골〉(2005)에서 “네레 아버지 돼 보면 기 마음 알끼다”던 북한군 하사 ‘장영희’의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 겁은 많지만 큰형 같은, 넉넉한 아버지 같은 연기였다.

임하룡은 〈엑스트라〉(1998), 〈얼굴〉(1999), 〈묻지 마 패밀리〉(2002), 〈아는 여자〉(2004), 〈범죄의 재구성〉(2004) 등에서 감초 같은 단역으로 코미디가 아닌 정통 연기를 타진하더니 〈웰컴 투 동막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의 길로 들어섰다.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2006), 영화 〈원탁의 기사〉(2006), 〈맨발의 기봉이〉(2006) 이후 조연으로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이웃사람〉(2012)에서는 사체가 담긴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사 간 ‘102호 남자’를 의심하는 가방가게 주인으로 분(扮)했다. 섬뜩한 ‘102호 남자’ 김성균(류승혁 역)과 조폭 건달 마동석(안혁모 역)만 있었다면 살벌했을 영화가 임하룡이 있어 풍성했다고 할까.

그는 허수아비 같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선 굵은 조연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니 직업(코미디언)을 바꾸었느냐고 묻지만 같은 뿌리다. 코미디도 연기고 영화와 연극도 다 연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팬티를 팔든 겉옷을 팔든 옷 장수는 옷 장수 아닌가”다.


대학 중퇴에 관광 가이드 이력


충북 단양이 고향인 임하룡은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생으로 서울 중동중, 충북 제천고(서울 장충고에서 1년을 다녔다)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 71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 2년을 다니다가 중퇴했어요. 집안이 어려워져서… 봉지 쌀도 못 살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아버지, 어머니가 동시에 아프셔서 제가 안 움직이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어요.”

사실 그의 꿈은 영화배우였다. 배우 허장강을 동경해 액션배우를 꿈꿨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만화방과 극장을 전전하던 학창 시절, 춤추고 배우 흉내 내는 게 낙이었다.

“군(최전방 하사관)에 갔다 와서 대학을 그만두고 1976년 극단 가교에서 연극배우로 처음 무대에 섰죠. 〈포기와 베스〉라는 작품이었어요. 제 기억으로 출연료 1만 원에 초대장 20장을 받았는데 그게 밥벌이가 되겠어요? 시험을 쳐서 관광회사 가이드로 취직했죠.

그런데 회사에서 저더러 관광객을 모아서 가이드를 하라는 거예요. 영업에 자신이 없어서 그만뒀어요. 수금사원으로 취직한 적도 있는데 수금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습니다. 물건 값 받으러 갔다가 판 물건 도로 가져가라는 말만 듣고 그날로 그만뒀어요. 학벌도 없었으니 직장을 잡으려 해도 도저히 안 됐어요.”

밥벌이가 너무 절실해 아르바이트로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조수 겸 사이코드라마 ‘배우’로 4년간 환우들과 함께 생활한 적도 있다. 연기가 그럴듯했던지 임하룡을 같은 환우로 착각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 밤무대 사회자로 취직하면서 인생 경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정통 나이트클럽보다 값싼 안주와 술을 먹는 주점이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였어요. 막걸리도 팔고, 낙지볶음도 팔고…. 그런 곳에서 밤무대 MC를 했죠. 무명 밴드와 곡명(曲名)을 소개하는 일이었어요. 그때 전유성·김학래 씨를 만난 게 제 인생을 바꾸었어요. 또 막막하던 시절, 일자리를 구해준 임진규·손철·하철 씨도 잊을 수 없어요.”

1970년대 명동 쉘부르를 돌아 무교동에 들어서면 버스 정류장 옆에 ‘꽃잎’이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명동의 쉘부르, 이브 음악감상실과 무교동 ‘꽃잎’으로 몰려들었다. 어느 곳에 앰프를 새로 들여놨다고 입소문이 나면 그쪽으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통기타 라이브 레스토랑 ‘꽃잎’은 전유성이 연예부장을 맡았고 임하룡, 김학래가 DJ로 인기가 많았다.

“김학래가 두 살 아래지만 지금도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때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나이 따질 개재는 아니잖아요. 하하하. 전유성 선배 소개로 라디오(1978년)도 하고, 서른 되던 1981년 KBS 특채로 개그를 하게 됐어요. 전유성·김학래 씨를 만난 게 ‘개그맨’이란 타이틀을 붙인 계기가 됐어요.”


심형래와 콤비 플레이로 주목… 각종 유행어 창조

1991년 KBS 코미디 대상 피로연에서 임하룡과 전유성, 최양락, 장두석(왼쪽부터).
임하룡은 1981년 KBS 코미디언으로 특채돼 방송에 데뷔했다. 동료 개그맨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우스꽝스런 분장을 할 때는 무척 쑥스러웠다고 한다. 실제 성격은 TV 화면과 달리 내성적이란다.

1987년 KBS2 코미디프로 〈쇼 비디오 자키〉의 ‘도시의 천사들’ 코너에서 조직폭력배의 보스 ‘쉰 옥수수’ 역으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당시 ‘이 나이에 내가 하리~’라는 극 중 대사가 유행어가 됐다. 그 외에도 ‘일주일만 젊었어도!’, ‘쑥스럽구먼’, ‘젊은 오빠’,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같은 따끈따끈한 유행어를 창조(?)했다.

“이름이 나게 된 계기는 심형래를 만나면서입니다. 심형래가 당시 어린이들한테 우상이어서 같이 출연하며 제 이름이 더불어 회자되더라고요.”

심형래는 임하룡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임하룡은 좋은 배우다. 어시스트 면에서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제가 (심형래보다) 여섯 살 많아요. 꼬박꼬박 존대하느냐고요? 그럼요. 아무래도 제가 한참 선밴데. 데뷔 때부터 콤비로 꽤 각인되다가 나중에 전유성·김정식·이홍렬 씨 등과도 콤비 플레이를 많이 했죠.”

심형래와 임하룡은 인기 코미디 코너의 단짝이었다. ‘변방의 북소리’에서 바보 병사 심형래에게 당하는 장군이 임하룡이었다. ‘X특공대’에서는 얼간이 부하가 심형래, 그는 특공대장을 맡았다. 임꺽정을 패러디한 ‘임걱정’이란 코너에서는 임하룡이 임걱정, 그를 골탕 먹이는 부하가 심형래였다. ‘내일은 챔피언’에서는 복싱관장 임하룡과 연습생 심형래가 시청자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개그맨 시절, 배구로 치면 스파이크보다 토스를 많이 했지만 어떨 때는 심형래가 저를 받쳐줄 때도 있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입장이었죠. 배구에서 세터 역할처럼 계속 띄워줄 수는 없죠. ‘추억의 책가방’, ‘도시의 천사’ 같은 코너는 제가 주도해서 웃기려 했죠.”

그에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코미디 프로는 ‘하룡서당’이다. 그가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역이라고 할까.

“처음에 PD가 코너명을 ‘갑자서당’(그해가 갑자년이어서)으로 정했는데 제가 만화 〈와룡서당〉을 읽고 나서 ‘하룡서당’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미술하는 분께 찾아가 ‘내가 책임지겠다. 하룡서당으로 고쳐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첫 회부터 ‘하룡서당’이 재미있었어요. 운도 좋았던 게 ‘지구를 떠나거라~’는 유행어를 만든 김병조 씨의 일밤(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 끝나고 광고가 나올 때쯤 채널을 돌리면 ‘하룡서당’을 했어요. 그러니 ‘하룡서당’이 뜰 수밖에 없었죠.”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1991년 KBS2 〈유머 일번지〉의 ‘추억의 책가방’에서 맡았던 날라리 고등학생 ‘해룡’ 역이었다.

“가수 강수지가 예쁜 여학생으로 나왔는데 거기서 나온 유행어가 ‘안녕하셔요?’예요. 불량 학생이 모범 학생처럼 구는 말이죠. 이마에 분필을 테이프로 붙였는데 그 시절 선생님이 조는 학생에게 분필을 던졌잖아요. 분필이 이마에 꽂힌 걸로 설정했죠.”

스포츠머리 가발을 쓰고 교복 안에 폴라티셔츠를 입고 나와 다리를 연신 건들거린 ‘추억의 책가방’은 그에게 자서전 같은 코너다. 유난히 눈에 띄던 빨간 양말도 임하룡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나중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CCR의 히트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의 멜로디만 따온 가요 〈추억의 책가방〉을 앨범으로 낸 적이 있다. 가사는 이렇다.

‘나팔바지 빨간양말 납작한 책가방을 옆에 끼고 트위스트 다이아몬드 스텝 따라 빡빡머리 향수가 있는 곳. 촌스런 모습이지만 낭만이 있었지. 예! 너와 나의 책가방 속 추억 꾸벅꾸벅 수업시간 아슬아슬 방과 후엔 극장구경 우정을 나누던 그 빵집.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실까.’


“주연, 조연 따지기보다 어느 분야에서든 잘하고 싶어요”


임하룡은 리액션이 좋은 배우다. 순발력이 좋다는 얘기다. 극 중 애드리브를 자주 구사하는 편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애드리브를 해도 극 흐름을 깨면 안 돼요. 적재적소에 양념 같은 단어로 표현하죠. 어떨 때는 준비해서 하기도 해요. 영화 〈이웃사람〉에서 가방가게 주인이 저였는데, 손님에게 받은 수표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와요.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손님이 ‘왜요?’라고 묻는데 제가 애드리브로 ‘왠지 알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양념처럼 재미있으니까 감독도 허락했죠.

CF에서도 애드리브를 친 적이 있어요. 즉석 짜장 ‘짜스면’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제가 쿵후 도장 관장인데 ‘짜스면’을 달라는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며 ‘달랠 걸 달래야지?’ 그랬거든요. 대본에 없던 말이에요.”

그는 “미리 준비해 둔 애드리브도 있고, 순간적으로 만든 애드리브도 있다”며 “비율은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더 많다”고 했다.

― 리액션이 좋은 배우가 되려면.

“글쎄요. 과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1970년대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사이코드라마 ‘배우’로 일한 적이 있어요. 김유광 박사 밑에서 조수 노릇을 하며 투잡(two job)을 뛸 때였어요. 환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연기를 해야 했고 대사는 애드리브로 해야 했죠. 심리적 흐름에 따라 극을 만들어야 했으니 꽤 많은 연기 연습이 됐던 것 같아요.”


― 드라마와 코미디의 리액션은 다른가요.

“코미디언은 상대가 웃길 때 자기 웃길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상대의 반응을 놓치기가 쉽죠.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연기의 리액션은 상대 얘기에 반응하면서 감정 표현을 해야 하니 딴생각, 예를 들어 제 대사만 생각해선 극의 흐름을 놓치기 쉬워요. 코미디 리액션은 말로 애드리브를 하는 것이 많지만 아무래도 (영화와 연극의) 연기는 감정과 표정이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 다르죠.

과거엔 ‘나’를 벗어날수록 사람들을 웃길 수 있었어요. 모습을 과장하고, 순간 돌변하고, 망가지기도 하고요. 근데 영화와 연극은 철저히 나 자신과 캐릭터를 일치시켜야 진실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 임하룡도 연기가 어렵습니까.

“연기에 100%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저도 만족하고, 관객도 만족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참 묘해요. 진짜 괜찮은 연기를 했는데, 주위에서 ‘왜 그리 어색해?’ 그러거든요. 그리고 제가 볼 때 연기가 별로인데 ‘와! 연기 좋았어’ 그래요. 정말이지 정답이 없어요.

연기는 주연, 조연이 따로 없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현장에 충실한가가 관건이죠. 연기는 앙상블을 잘 이뤄야 해요. 혼자 튀면 잘 못하는 연기라 봅니다.”

― 배우에게 필요한 자질은.

“착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착하지 못하면 배우가 되는 길이 힘들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감성 연기를 하려면 착한 역에서부터 악역까지를 모두 소화해야 하는데 견뎌내려면 착해야 해요. 착하지 않으면… 힘들죠. 착하지 않으면 동료들하고도 힘들게 돼요. 한순간 잘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착하지 않으면, 도태되니까. 착해야 오래 남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위에 평이 좋아야 같이하려 하잖아요.”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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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명예   ( 2018-01-30 ) 찬성 : 10 반대 : 5
명배우이자 인기개그맨 임하룡님 축복합니다
  명예   ( 2018-01-30 ) 찬성 : 6 반대 : 4
명배우이자 인기개그맨 임하룡님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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