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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유혹하는 글쟁이 카피라이터

직업의 세계 / 카피라이터

카피라이터(copywriter)는 광고문구를 쓰는 사람이다. 광고에 들어갈 캐치프레이즈, 슬로건, 문장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쓴다. 성공한 카피라이터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전설적인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는 호기심, 유머감각, 체력, 문장력, 미적감각,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카피라이터의 덕목으로 제시했다.

참고자료 : 워크넷(www.work.go.kr), 커리어넷(www.career.go.kr),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카피라이터라는 단어는 카피(copy)와 작가(writer)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직역하면 ‘카피를 쓰는 사람’이 된다. 카피란 광고에 사용되는 모든 글이다. 헤드라인, 리드카피, 보디카피, 브랜드 네임, 슬로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의 카피는 헤드라인과 보디카피만 포함하기도 한다. 헤드라인은 광고물에서 소비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역할을 하기 위해 글씨 크기가 제일 크다. 보디카피는 제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간략히 설명해주는 문장으로 보통 헤드라인 밑에 배치된다.

광고는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카피라이터의 역할은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카피라이터는 상품의 성격과 광고의 목적에 맞게 설득의 방법을 정한다. 언어유희를 이용한 카피는 웃음을 유발하여 호감을 얻는다. 서울우유 체다치즈의 ‘잘난체다’나,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반하나 안반하나’ 등이 그 예이다. 반대로 진정성이 담긴 감동적인 카피가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 때도 있다. 대림 e편한 세상의 ‘진심이 짓는다’와 SK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가 그 예이다.

카피라이터는 광고회사가 공채나 특채를 통해 신입을 뽑는다. 광고업의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쌓은 사람이 카피라이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격 조건에 학력 제한은 없지만 85% 이상이 대졸자다. 워크넷에 따르면 대학교 전공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나 광고홍보학, 신문방송학, 국문학 등을 전공한 경우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광고 동아리나 마케팅 학회에서의 활동이나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 등도 도움이 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주관하는 광고교육원의 교육과정이나 사설 학원의 카피라이팅 과정을 들으면 카피라이팅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지만 필수는 아니다.

카피라이터는 혼자서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카피를 쓰기 이전에 광고주와 관련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하며, 이후 제품과 소비자에 대한 공부에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방대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광고 기획자나 콘셉트를 정해야 하며 아트디렉터와 광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카피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건 그다음 일이다. 따라서 광고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함께 일하는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다.

‘광고의 마술사’로 불린 전설적인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1911~1999)는 카피라이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제품·사람·광고에 대한 호기심이다. 아는 게 많아야 제품에 잘 맞는 카피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머 감각이다. 카피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더 잘 써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튼튼한 체력이다. 야근을 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연스러운 문장력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글로 표현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다섯째는 미적감각이다. 광고는 디자인과 글이 잘 어울려야 시너지가 극대화된다. 마지막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다. 항상 전보다 더 나은 카피를 쓰려고 노력해야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웹(web)카피라이터’도 새롭게 생겼다. 일반 카피라이터와 달리 홈페이지 선택부터 인터넷 광고 문구 작성 및 그림 제작 등의 일을 한다. 쇼핑몰의 경우에는 웹MD(web merchandiser)와 함께 이벤트를 기획하고 상품을 고르는 일도 한다. 바이럴 광고와 온라인 쇼핑의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어 웹카피라이터는 당분간 성장세일 전망이다. 웹 광고는 일반 광고보다 주기가 짧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요하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해야 한다.



‘공공기관 카피라이터 1호’ 김건호

소비자를 위한 카피에서 시민을 위한 카피까지

김건호 카피라이터는 20여 년 가까이 광고 문구를 썼다. 민간 기업에서 다양한 광고 카피를 써오던 그는 2008년 서울시로 소속을 옮겨 ‘공공 카피라이터’ 1호가 됐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존재를 안 이후로 단 한 번도 다른 직업을 꿈꿔온 적이 없다고 한다.


물건을 잘 팔리게 하는 ‘말의 힘’에 눈뜨다

김건호 카피라이터의 부모님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옆에서 어떤 말을 하면 손님이 기분 좋게 물건을 사는지 관찰하는 습관이 생겨 자연스럽게 광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부터 좋아하던 글쓰기는 교내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진로 안내를 하는 책자를 보다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광고 분야에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광고를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군 제대 후 대학교에 1년 휴학계를 내고 상경했다. 서울에 있는 광고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집이 어려워 숙식을 제공하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을 다녔다.

“광고 학원을 다니는 게 필수는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광고홍보학과처럼 광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과를 전공하지 않아서 학원에서라도 광고에 대해 배우고 싶었어요.”

광고에 대한 그의 애정은 복학 후 더 불타올랐다. 광고 동아리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물론, 프로들의 세계에 가까이 가고 싶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여러 광고회사를 찾아다니며 사보를 구해 모으고, 공부할 만한 자료가 있는지 폐지함까지 뒤졌다. 다짜고짜 카피라이터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광고회사 코래드의 대표가 직접 강의하는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이 되기 위해 한 학기 내내 노력한 그는 졸업 후 사장의 제안으로 코래드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3개월 후에는 정식 사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카피라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입사 초기에 의욕적으로 쓴 카피들이 선배 카피라이터의 빨간 펜 앞에 무참히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며 좌절을 맛보았다.

“실전 광고의 세계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달랐어요. 잠깐 방황했지만 다시 꾹 참고 카피를 쓰다보니 언제부턴가 간간이 제 카피가 반영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제 카피들이 왜 채택이 안 됐는지, 어떤 카피가 소비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지도 점점 알게 되더라고요.”


소비자와 광고주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카피라이터 개인이 오랜 연습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게 되더라도 매번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수차례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광고주와 의견 조율이 안 되면 광고 콘셉트부터 다시 설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광고주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광고주는 소비자가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보다 기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중시해요. 예를 들면 광고 스토리라인의 개연성이 부족해도 제품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을 좋아하죠. 그런데 이런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하면 광고가 딱딱하고 재미없어집니다. 제 카피에 누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카피라이터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좋죠.”

카피라이터가 되는 방법에는 정도가 없다. 광고 관련학을 전공하고 광고 동아리에 가입한 뒤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코스’를 밟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유창한 외국어 능력, 좋은 학점이 합격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 카피라이터들의 스펙은 천차만별이며 좋은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광고에 대한 열정을 증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다.

“스펙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다양한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릴 거예요. 저처럼요.”


카피라이터는 중재자

김건호 카피라이터가 문구를 쓴 광고물들.
카피라이터는 광고 문안가다. 광고에 들어갈 캐치프레이즈, 슬로건, 문장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글만 잘 쓴다고 일 잘하는 카피라이터가 될 수 없다.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카피라이터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광고의 방향 설정부터 광고물 디자인 구상까지 카피라이터가 함께 해야 해요. 논리적인 광고 기획자와 감성적인 디자이너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리더가 돼야 하죠.”

그는 자신의 카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해태제과 ‘자유시간’의 ‘남에게 자유를 줄 때 더 큰 자유를 느낍니다’를 꼽았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아이의 소원이 바다를 보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이뤄주려고 실제 자원봉사자가 바다 앞으로 데려가 자유를 선물한다는 것이 광고 내용이었다.

“당시 자유시간이 초코바 시장에서 점유율 1위였어요. 맛이나 영양 성분 등을 부각시킬 필요가 없었죠. 감성적인 광고와 카피로 소비자에게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건호 카피라이터는 코래드에서 시작해 금강기획을 마지막으로 다섯 군데의 민간 광고 회사를 거쳤다. 2008년 그는 서울시로 소속을 옮겼고 ‘공공 카피라이터 1호’라는 별칭이 생겼다. 그때부터 카피의 타깃은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바뀌었다.

“공공 홍보물의 카피를 쓸 때는 아무래도 공익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어 표현에 제약이 생기더라고요. 그걸 극복하고 시민들이 공감하거나 재미를 느끼는 카피를 써서 정책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일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그는 카피를 쓸 때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잠깐이라도 이걸 볼까’를 가장 고민한다. 수많은 광고물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목적이다. 그다음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의도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하나의 예로 서울시에서 위험에 노출된 노숙인을 보면 신고해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홍보물을 제작한 적이 있어요. 거부감 없이 행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포스터에 예쁜 곰 인형이 길에 누워 있는 사진을 썼어요.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길에서 잠들면 영원히 잠들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크게 쓴 뒤 그 밑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썼죠.”

그는 올해 초 다년간의 카피라이팅 노하우를 담아 《비틀어 글쓰기》라는 책을 냈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말을 조금만 바꿔도 센스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글쓰기 방법론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만 글쓰기에 재밌게 입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은 드물었어요. 언어유희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문장을 쓰는 법을 담는다면 그런 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을 조금만 ‘비틀어’ 사용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으니 누구나 따라할 수 있죠.”


인터넷 댓글은 카피 영감의 원천


카피라이터들은 매번 새로운 문장을 생각해내기 위해 뭔가를 끊임없이 보고 듣고 느끼며 ‘아이디어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저는 평소에 인터넷 댓글을 자주 봐요. 게시글의 내용보다 많을 때는 몇백 개의 댓글을 유심히 읽어보는데 그게 다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해학이나 반전이 담긴 엉뚱한 댓글에서 카피의 영감을 얻을 때가 꽤 많아요. 또 매일 신간 제목을 훑어보는데 어설픈 광고보다 훨씬 임팩트 있고 짜임새 있는 것들이 많아서 재밌어요.”

김건호 카피라이터는 그 외에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한 광고의 장단점을 분석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카피라이터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광고계는 급변하고 있다. SNS의 활성화로 소비자들의 물건 구매 양상이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TV나 신문 광고만 보고 구매를 하지 않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의 사용 후기, 바이럴 영상 등을 보며 구매를 결정한다. 자연스럽게 카피라이터의 영역도 급변하고 있다.

“TV, 신문, 잡지 등 전통 매체의 광고 비중이 줄고 SNS 마케팅, 바이럴 영상,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등의 비중이 늘고 있어요. 카피라이터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광고 카피 작성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매체 및 트렌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접목이 필요합니다.”
  •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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