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80) 이시코 다쓰지로(石子達次郞) 닛신산업(日進産業) 사장

단열효과 있는 도료 개발해 세계에서 주목받다

1mm 두께로 얇게 바르기만 해도 탁월한 단열효과를 내는 도료가 인기다. 에다노 전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 도료의 성능 실험을 보고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 기술”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벽이나 천장에 바르는 것만으로 난방비를 줄일 수 있는 도료인 가이나(GAINA)를 제조 판매하는 기업은 도쿄 이타바시구에 있는 사원 30명의 중소기업 닛신산업(日進産業)이다. 이는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산업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온 중소기업 경영자 이시코 다쓰지로(石子達次郞) 사장의 집념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미래를 열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이 도료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인정한 기술이다. 7년 전 JAXA가 일본에서 발사할 로켓 선단부분의 단열기술을 공모했을 때, 일본을 대표하는 수많은 대기업이 응모했다. 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대기업을 누르고 뽑힌 것은 무명의 닛산산업이었다. 바로 닛산산업의 새로운 기술 가이나(GAINA) 덕분이었다. 세계를 돌며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중국도 탐내고 있는 일본의 3대 기술 중 하나로 알려지면서 일본 산업계를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중국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에 이 기술에 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라는 제안을 해와 놀랐다”는 이시코 사장을 도쿄 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한 대형은행이 금리 0.6%로 거금을 융자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가이나(GAINA)의 미래에 투자하겠다면서요.”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업체 가운데 하나로 성장한 ‘혼다’의 주거래 은행이기도 한 이 은행은 혼다의 창업 초기, 혼다 소이치로의 기술과 정열을 믿고 0.6%라는 저리로 융자를 했던 곳이다. 회사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가이나의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의 미래를 보고 외국인과 금융계의 유능한 인재들이 앞다투어 전직해오고 있다고 한다.

가이나는 현재 일본 경제산업성 기자회견실과 1층 현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본점 흡연실, 가나자와시청 흡연실 등 관공서를 비롯해,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던 지역의 건축물을 재건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어떤 성능을 지녔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회의실에 설치된 각종 실험기구에 전기를 이용해 1시간 반 동안 공개실험이 시작되었다. 천장과 벽, 심지어 유리창까지 모두 도료가 발라져 있었다. 바로 회의실 자체가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먼저 100w의 전구를 사용해 철판을 가열하는 실험을 했다. 단열재를 바른 철판은 온도가 76℃에서 멈췄지만 일반 철판은 98℃까지 올라갔다. 지붕을 가정한 실험에서는 7℃의 온도 차가 나타났다. 도료가 발린 프라이팬을 아무리 달궈도 78℃를 넘기지 않았다. 만져봐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

“이것이 이 도료의 특징입니다. 단열과 방열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세라믹의 성질을 잘 활용한 것이지요.”

한창 실험을 진행하던 그가 갑자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조금 쉬려나 했더니 냄새를 제거하는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라며 조금만 참아달란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피어나던 담배 냄새는 어느새 사라졌다.

“처음에는 소취효과가 있는 줄 몰랐어요. 저는 애연가인데, 도료가 칠해진 방에서 담배를 피우면 진한 니코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어요. 덕분에 이제 집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내에서 덜 구박받게 되었답니다.”

이시코 사장이 이 도료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약 25년 전. 닛신산업은 공장용 기계를 제조하고 설치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는데, 어느 날 거래처에서 “여름에 공장 내부가 더워서 벽에 단열재를 넣고 싶다”고 상담을 해왔다. 기계로 가득한 공장은 기계와 벽 사이가 좁아 단열재를 넣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궁리를 거듭하던 그는 빛을 잘 반사하는 흰색 전단지가 검은색보다 덜 뜨거워진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당장 공장 내부의 벽을 모두 흰색으로 칠했다. 그랬더니 실내온도가 내려가는 효과가 나타났다. 단순한 발상이 실제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왜 온도가 내려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료의 색에 따라 함유된 물질이 다른데, 그 때문에 도료 색과 실내온도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를 활용하면 단열효과를 내는 제품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라믹은 주변 온도에 따라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도료에 세라믹을 섞으면서 그 종류와 비율을 잘 맞추면 단열효과를 내는 도료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1층에 마련한 연구실로 달려가 700종류의 세라믹 가운데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합할 세라믹의 종류와 비율을 조절했다. 단열성이 높은 제품이 완성되기까지는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도료는 일반 도료보다 30% 정도 비싸지만, 최근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한다. 이 도료를 사용한 가정의 겨울철 전력사용량이 약 30%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 도료를 바른 공장의 전기요금이 연간 약 172만엔에서 약 88만엔으로 줄어든 사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단열효과가 입증되면서 최근 들어서는 불상 등을 보존하는 사찰의 불당이나 적도를 통과하는 자동차 운반선에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개발한 가이나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천신만고 끝에 4년 만에 개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개발 후 10년 동안 단 한 통도 팔리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였고 심지어 사기꾼 취급까지 받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를 찾아갔다.

“이 건축가에게 인정을 받으면 인지도가 올라가고 회생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에서였지요. 그런데 이 건축가는 설명을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테이블 위에 있던 재털이를 던지며 소리를 쳤어요. ‘누구 앞에서 감히 사기를 치느냐’고 말이죠.”

한 가닥 남아 있던 자존심마저 모두 무너져내렸다. ‘이제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게 인사를 돌았다. 그런데 한 업자가 20통을 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수고했으니 정으로 사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우연이 기적을 낳았다. 자신의 가게에 직접 도료를 발랐던 업자는 주변의 평이 좋자 이를 건축잡지에 투고한 것이다. 이 도료의 효과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그 해에는 80통, 이듬해는 200통, 그 이듬해는 450통이 팔렸다. 지금은 적게는 하루에 200통에서 1000통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도료의 상표인 가이나(GAINA)는 그의 고향 시마네현의 방언으로, ‘크다’ ‘훌륭하다’는 의미다. 가이나를 개발하기 전부터 그는 이미 닦인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당시 JR(국철)의 임원이었던 아버지가 취직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창업을 결심했다. “내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23세에 창업했지만 일감은 겨우 하수구 청소나 배달 등 흥신소나 심부름 센터 같은 잡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흙범벅이 되어도 항상 웃었다. 젊고 활기찬 그의 모습에 일감이 하나씩 늘어났다. 공장의 선반설치에서 기계설계와 설치로 영역을 넓혀갔고, 사원이 56명까지 늘었다.

회사 규모가 커가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사원이 전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었다. 20대의 새파란 젊은 사장이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어색해 그는 38세가 될 때까지 사원들이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했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기 위해 42세까지 회사 화장실 청소도 자신이 직접 했다.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원들에게 떳떳해야 하고 그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것이 선두에 서려는 사람의 최소한의 모습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기술의 향후 비전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순간 그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동안의 고뇌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한 표정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한국을 필두로 세계시장을 개척해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나이 59세. 경영자로서 젊은 나이지만 그는 후계자를 고민하고 있다. 음악을 하는 아들이 있지만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 사기꾼 취급까지 받았던 이 기술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할 수 있도록 “사원 가운데 목숨을 걸고 일해줄 수 있는 후계자를 키우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3년 0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