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76) 우에노 타모쓰(上野保) 도세이일렉트로빔 회장

맨손으로 세계 최고의 전자빔 용접가공업 일구다

“아이가 둘이나 있잖아요. 월급이 줄어도 좋으니까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마세요!”

갓 태어난 젖먹이와 다섯 살 코흘리개를 둔 37세의 샐러리맨이 ‘독립’을 하겠다는 말을 꺼내던 날 밤, 부인의 일성이었다. 속 모르는 다섯 살짜리 아이는 아빠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놀아달라고 칭얼거린다.

“여보! 나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것을 꼭 이루고 싶어! 나를 한번 믿어줘.”

믿어달라는 말 외에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부부의 일진일퇴의 공방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1977년, 일본 최초이자 세계 제일의 ‘전자빔 용접가공업’ 전문업체 도세이일렉트로빔(東成エレクトロビイム)이 탄생하는 여명이었다. 이 회사를 만든 우에노 타모쓰(上野保) 회장은 F1엔진, 국제우주정거장용 실험장치, 인공위성, 원자력발전소,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기, 첨단 의료기기, 자동차 등 일본 최첨단산업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가 없었다면 일본에서 인공위성은 발사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각종 첨단기기 시제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시제품 개발의 거점기업’ ‘매년 100사씩 거래처가 늘어나는 마케팅의 귀재’ ‘보잉사의 부품을 가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일본 중소기업’ 등의 수식어가 붙는 기업이 됐지만 그는 독학으로 이뤄낸 독보적인 자체 기술 확립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긴다.

전철과 택시를 갈아타며 도쿄의 서쪽 깊숙한 끝자락에 위치한 도세이일렉트로빔을 찾았다. 본사 2층에 자리한 응접실에는 미국·영국 항공사 등과 거래에 필요한 자격증을 비롯해 각종 인증서, 정부와 업계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세 벽면을 즐비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엔지니어답지 않은 깔끔한 차림의 노신사가 각종 자격증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앞만 보고 달려온 엔지니어 인생,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겠다는 그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저희는 처음부터 항공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목표로 했어요. 당시에는 전투기 등 항공기술에 사용되는 기술이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전자빔 용접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의 꿈을 믿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부하 직원 두 명과 함께 창업했지만, 15년 샐러리맨 인생을 통해 모은 돈과 주변에서 모은 돈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수평짜리 공장 한 칸을 빌려 중고 기계 1대와 공구 몇 개를 들여놓는 게 전부였다. 창업 후 3년간 아침 7시에 출근해 이튿날 새벽에 들어갔다. 1년에 쉬는 날은 고작 이틀, 추석과 설뿐이었다. 구두 밑창이 다 닳도록 밤낮없이 일감을 찾아다녔지만 담당자는 만나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수위에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작한 무명의 중소기업은 지금 사원 100여 명, 4개의 사업소, 거래처 3100개사를 거느린 굵고 견실한 일본 대표 기업이 되었다.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갔더니 그러더군요. 야반도주하기 딱 좋은 형국인데 어떻게 돈을 빌려주느냐고요. 그때는 야속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더군요. 독자적인 기술도 없고, 번듯한 거래처도 없고, 게다가 공장도 임대였으니까요.(웃음)”

공장 문을 닫고 다시 취직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내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독립하기 전 그는 잘나가던 생산관리자이자 경영자였다. 공대에서 공업경영을 전공한 후, 항공기 엔진 등을 제조하던 후지자동차에 취직했다. 공대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는 유망 기업이었다. 간부후보생으로서 꿈에 부풀어 입사한 회사는 입사 5개월 만에 경영파탄으로 경영진이 바뀌었다. 두 번이나 회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부서도 관리직에서 현장직공으로 전환됐다. 한여름에는 기계마저 타버릴 것 같은 더위 속에서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대졸 사원들은 ‘직공 같은 것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다시 관리자가 되었을 때 현장을 아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는 상사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로 한 그는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직공들에게 다가가 기름때 묻은 손을 잡았다. 현장기술자들과의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했고 격을 두지 않고 대화에 참여했다. 언제부턴가 그의 말은 현장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그 후 각 부서를 돌며 다양한 업무를 익혔고, 33세에 사업본부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초고속 승진이 이어졌다. 자회사 임원을 거쳐 사장, 신규 사업 책임자 등을 두루 거쳤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샐러리맨 인생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소박하면서도 야무진 야망이었다.

그의 인내심과 당찬 야망은 쌀 한 톨을 구하기 위해 한겨울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던 어린 시절에서 유래한다. 1939년 5월,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니가타현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산자락 끝머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석회석 채굴장에서 전기기사로 일했지만 수입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해안에서 자갈과 모래를 주워다 팔았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추위에 금이 간 어머니의 거친 손을 보면서 매일 바다로 나가 어머니를 도왔다. 중학생이 된 그는 해안에 조그만 움막을 짓고 가마에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소금 한 가마니는 쌀 한 가마니와 물물교환이 가능했다. 낮에는 아버지와 함께 벌목해서 목재를 팔았고, 밤에는 소금을 만들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힘든 가계였지만 어머니는 어렵게 쌈짓돈을 모아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었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자신에게 경영을 가르친 스승 ‘바둑’을 만났다. 공돌이와 바둑, 그다지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었다. 두세 시간씩 앉아서 바둑판을 응시하는 그를 보고 희귀종이라고 놀리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그는 3학년 때 바둑부 주장이 될 정도로 바둑에 심취했다.

“바둑을 통해 사물을 보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미래를 위한 ‘포석’도, 선택과 집중도 바둑에서 배웠어요.”

그는 바둑을 통해 미래를 읽었다. 거품경제 붕괴, 그 후 전개될 산업구조의 변화를 읽었다.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 말부터 일본경제의 거품붕괴를 예견한 그는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제조인력의 유출과 제조부문 슬림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점쳤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대기업 개발팀의 시제품 의뢰로 시작한 가공부문의 이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 부품으로 확대되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제조부문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코디네이터가 되어 지역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기업 제조부문을 다양한 분야의 중소기업이 대체할 수 있도록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그의 중소기업 네트워크는 1996년 일본중소기업백서에 “기업집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기업 간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코디네이터 기업”으로 소개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보호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로 거듭나야 한다는 인식전환이 일면서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심의회의원으로 위촉되었고, 12년간 정책 입안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올해 일선에서 물러나 새로운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회사의 ‘얼굴마담’ 역할을 다하겠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비전을 물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시켰거든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결혼할 때의 약속을 늦었지만 지킬 생각입니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2년 10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