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75) (주)도시마야혼텐(豊島屋本店) 요시무라 토시유키(吉村俊之) 사장

418년 역사의 사케 제조 기업

도쿄 치요다구 도심 한복판에 400년 넘게 서민의 편에 서서 ‘사케’를 공급해온 기업이 있다. 1594년 창업한 주식회사 도시마야혼텐(豊島屋本店)이다. 300년 전 후지산의 눈이 녹아 지하 150m를 흐르는 복류수로 ‘사케’, 글자 그대로 ‘청주’를 만들고 있다. 자사 브랜드 ‘긴콘(金婚)’ 등은 각종 청주대회에서 금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술 ‘하네다(羽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 스카이트리 개장 기념으로 출시한 ‘스미다미인’ 등 각종 히트상품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약간 뒤틀린 키다리처럼 길게 목을 내놓고 있는 술병은 바람에 흔들리는 스카이트리를 연상하게 한다. 다 마신 후에는 꽃병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다.

418년 역사의 기업이라 고목 냄새가 날 법도 하건만, 도시마야혼텐은 첨단 트렌드를 읽고 적절한 시기에 신제품을 개발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이 작은 고목에 끊임없이 새싹을 돋아나게 하는 재주꾼 요시무라 토시유키(吉村俊之) 사장은 지속적인 혁신의 비결을 ‘불역유행(不易流行)’이라고 했다.

“창업 이래 계승되어온 경영이념은 ‘고객 제1주의’와 ‘신용 제1주의’입니다. 대대로 실천해온 것은 ‘불역유행(不易流行)’이지요. 즉,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은 온 힘을 다해 사수(不易)하고, 바꿔야 할 것은 대대적으로 바꾼다(流行)는 의미입니다. 신용·신뢰·품질은 사수하고, 마케팅, 상품 구성, 판매 채널 등은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전통을 계승해왔지요.”

도시마야혼텐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그중 하나가 ‘최초의 선술집’이다. 에도막부 개막과 함께 전국에서 무사와 기술자들이 몰려들었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짧은 시간에 목을 축이고 저렴하게 배를 불릴 수 있는 술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서 간단하게 목을 축이고 작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술집을 열고, 술을 원가에 팔았다. 술로는 이익을 내지 못하자 다 비운 술통을 되팔아 이문을 남기는 ‘박리다매’를 마케팅으로 점포를 키워갔다.

또, 당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로자케(白酒)’를 여자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인 ‘히나마쓰리’용으로 만들어 서민과 여성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여성의 음주가 수치로 여겨지던 시대에 여성도 당당히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이렇다보니 도시마야혼텐은 술을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늘날까지도 ‘산 하면 후지산, 시로자케 하면 도시마야혼텐’이라고 회자된다. 에도시대의 관광명소를 그린 지도나 풍습을 소개하는 서적에는 빠짐없이 도시마야혼텐이 등장한다. 도시마야혼텐의 역사는 ‘일본 문화사’의 한 토막이다. 418년의 역사에서 풍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은 모두 세 번. 첫 번째 위기는 메이지유신이었다. 당시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무사계급이 메이지유신으로 모두 실업자가 되면서 에도 경제는 마비상태가 됐다. 외상 술값을 받지 못했고, 현금부족으로 경영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12대 당주가 간장, 미린, 조미료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두 번째 위기는 관동대지진이었다. 대지진으로 도시마야혼텐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고객장부와 제조법도 모조리 사라졌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고객과의 신뢰가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세 번째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도쿄대공습으로 점포가 완전히 소실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주류 관련 기업이라는 이유로 연합군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금 본사 자리로 이전해 다시 점포를 열었다. 신뢰로 다져진 고객들이 대부분 따라와주었다.

고객과의 신뢰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힘이었다고 말하는 요시무라 사장. 그는 쌀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술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쌀이 없어 술을 만들 수 없을 때에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어떻게든 쌀을 구해 술을 빚어 꼭 필요한 곳에는 빼놓지 않고 보냈다. 그런 신뢰가 지금까지 도쿄의 3대 신사인 메이지신궁(明治神宮), 간다묘진(神田明神), 히에진자(日枝神社)의 유일한 신주(神酒) 납품사로 지정된 바탕이 되었다.

부동의 입지를 다졌지만, 싱싱하고 작은 고목의 변혁은 끝이 없다. 획기적인 발상으로 평가를 받은 발포성 사케 ‘아야(綾)’는 탄산수가 아니라 사케를 만들 때 나오는 모로미(걸러지지 않은 술) 성분을 남겨 사케 자체가 발포성을 지니도록 해 여성이 마시기 쉽게끔 했다. 개발하는 데 약 3년이 걸렸다. 또 지역과 연대해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지역 브랜드의 사케를 개발했다. 하네다공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사케 ‘하네다(羽田)’도 그중 하나다. 이외에도 신주쿠·아사쿠사 등 도쿄 각지의 지역 브랜드를 늘려가고 있다.

사케 수요가 평행선을 긋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연전연승 히트상품을 내고 있는 비결을 요시무라 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조용히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낸다. “사케는 인간의 오감을 활용해 만드는 음료입니다. 와인의 품질이 포도의 작황에 크게 좌우되는 것과는 달리, 사케는 도지(사케 양조장인)의 숙련된 기술에 따라 맛이 크게 좌우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원의 만족은 양질의 사케로 이어지고, 이것은 바로 회사의 미래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인센티브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사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지속적인 혁신도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참여형 경영’을 주창했다. 전 구성원이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 사원에게 ‘경영이념’과 ‘행동지침’, 그리고 회사의 ‘가치기준’을 기록한 ‘신조카드’를 배포했다. 그리고 항상 이 카드를 휴대하며 판단 기준으로 삼도록 했다. 사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스럽게 권한 이양도 이루어졌고, 사원들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또한 사내에 ‘제안함’을 두고 제안된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피드백을 할 수 있도록 챙기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가업을 이어 16대 사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직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전혀 간여하지 않았고 경영도 모르는 사람이 40세가 넘어 사장으로 부임한다니 거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조부는 은행원으로 일하다 40세 즈음에 가업을 이었고, 그의 아버지도 공학박사로서 기업 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일하다 40세 즈음에 가업을 이었다. 요시무라 사장은 교토대학 대학원을 나와 히타치제작소 중앙연구소에서 반도체 집적회로 미세가공에 대해 연구해온 공학박사다. 그는 경영을 배우기 위해 연구소를 그만둔 후 미국계 컨설팅회사에 입사했다. “2년간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겸허하게 물었고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내세워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사원들을 선배라고 생각했고, 섬겨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입사 후 그는 직접 트럭을 몰고 배송을 하며 먼지 묻은 손으로 고객을 만났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무대로 반도체 강국의 꿈을 키웠던 그였다. 남부럽지 않은 대우에 장래가 약속되었던 공학박사. 가업을 승계하는 데 주저함은 없었을까?

“사케는 일본의 식문화를 지탱하는 기둥 가운데 하나입니다. 양조를 만들고 판매하는 행위는 일본 문화를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시마야혼텐의 사명은 ‘영속’이며, 저의 사명은 우리 회사가 단기적으로 500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것입니다.”

그 영속을 위해 욕심 부리지 않고 ‘분수경영’을 잊지 않겠다는 그는 기업이 살아남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기업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가족과 같은 사원들의 일터를 빼앗는 것이며, 고객에게는 크나큰 폐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분수경영으로 500년 기업의 토대를 굳건히 하겠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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