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떠오르는 CEO (73) 솽퉁일용품유한공사 로중핑(樓仲平) 이사장

빨대로 세계를 제패한 빨대대왕

“빨대는 마시는 데만 쓰는 게 아닙니다”.

중국 최대의 빨대 생산기업인 이우시 솽퉁(雙童)일용품유한공사의 제품 광고다. 2005년부터 솽퉁은 광고에 제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사진이나 문구를 싣지 않는다. 창의력이 물씬 묻어나는 제품에 주력한지 벌써 7년째인 솽퉁은 빨대업계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실천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이 회사를 일군 로중핑(樓仲平) 솽퉁일용품유한공사 이사장을 만났다. 매일 아침 조선일보 중문판 뉴스를 즐겨본다는 그는 자신이 이우시의 시장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1979년부터 이우에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이우의 생활 여건이 무척 열악했어요. 먹을 것이 매우 부족했죠. 집안 사정상 저도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일에 뛰어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당시에는 비즈니스 여건도 열악했죠. 비즈니스를 하면 자본주의자라고 해서 잡혀가기 일쑤였거든요.”

1997년 솽퉁일용품기업을 설립하기 전까지 그는 20여 가지 비즈니스에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중에는 지마오환탕(鷄母換糖)이라는 것도 있었다. 농가에서 닭털을 거둬들여 그중에서 결이 괜찮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는 닭털 먼지털이를 만들고, 나머지는 분뇨에 섞어 발효시켜 새알처럼 동그랗게 만든 후 햇볕에 말려 비료로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지마오환탕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다. 닭털을 수거할 때 사탕을 주었기 때문에 지마오환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지마오환탕부터 칫솔, 계산기, 담배, 라이터 등 다른 사람들이 재미를 보는 품목마다 손을 댔지만 정작 ‘성공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비즈니스에 뛰어든 지 20년,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닝, 우루무치 등 중국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다시 고향 이우로 돌아왔다.

“초기만 해도 이우에는 공장이 없었어요. 좌판이나 소점포 상인이 대부분이었죠. 당시에는 다른 지역의 제품이 이우로 들어와 타 지역으로 도매하는 형태였어요. 저는 1990년에 처음으로 공장을 세웠는데, 당시에는 앞에는 점포가 있고 뒤편에 공장이 있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죠.”

그가 만든 빨대가 전 세계적인 공급망을 갖추는 데는 인터넷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전자상거래가 없었다면 오늘의 솽퉁은 없다”고 말하는 그가 인터넷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1995년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 이우에서, 그것도 나이가 어느 정도 지긋한 그의 연배에 컴퓨터를 다룬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지만 그는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매력을 느꼈다. 1997년부터 그의 회사도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제품을 선전하고, 야후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바이어에게 팩스로 자사 소개 자료를 보내기도 했다. 낮에는 바이어 정보를 검색하고 밤에는 바이어에게 팩스를 보내는 식이었다. 하루에 100건 넘게 팩스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의 회사도 100% 내수기업에서 점차 수출기업으로 변신해갔다. 1999년에는 중국의 유명 온라인 B2B거래 사이트인 환치우즈웬에 자사를 홍보했다. 이때부터 국외 오더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당시에는 전자상거래가 이우 지역의 업계 구조조정까지 몰고 왔다. 전자상거래에 능한 기업에게 주문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고사되는 식이었다. 1998년에는 이우에 있던 빨대기업 10여 개사가 문을 닫았다. 그는 10여 개사를 모두 인수했다. 그러자 이우에는 솽퉁을 포함해 3개의 빨대기업만 남았다.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당시, 그는 한편으로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 회사 전체 오더의 90%가 수출 오더였어요. 2002년 말부터 수출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오더는 그야말로 박리다매거든요. 수출 환경이 급변하면 직격타를 입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회사 전체 매출의 70%를 3~5개의 큰 기업이 좌지우지했어요. 그러다 보니 큰 기업에 끌려 다니게 되고 국내 소규모 기업에는 제품을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죠. 이 때문에 2002년부터 마케팅 방식을 바꿨습니다.”

솽퉁은 2002년부터 큰 기업이 아닌 작은 기업 위주로 거래처를 바꿔나갔다. 현재 3만 개사에 달하는 솽퉁의 고객은 모두 중소기업이다. 솽퉁의 ‘중소기업 위주 고객 원칙’은 베이징대와 칭화대 MBA과정의 기업 사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기업 한 회사가 주는 오더는 작은 기업 10개사의 오더와 맞먹는다고 본다. 큰 기업 몇 개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큰 기업에 좌지우지되면 가격 결정력을 잃고 납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결국에는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아예 큰 기업의 오더는 과감히 쳐내고 대신 중소 규모 바이어에게 공을 들였다. 차츰 내수 영업을 늘려 2005년에는 솽퉁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55%에 이르고, 전 세계 시장에서는 20%를 차지하게 됐다. 2008년에는 전 세계 빨대의 4분의 1을 솽퉁이 공급했다. 매일 1억 개의 빨대를 생산한 셈이다.

“2005년부터는 아이디어 빨대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빨대 모양을 변형하거나 캐릭터 형상을 넣는 방식으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인력난이 극심했기 때문에 생산 자동화를 많이 추진했습니다. 전에는 솽퉁 직원이 100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400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솽퉁의 매출이 2.5배 늘었는데 생산 제품 수량은 오히려 줄었어요.”


2011년부터 솽퉁은 ‘창조적인 제품 생산’으로 회사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솽퉁의 발전 방향이야말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다고 말한다. 문화 · 창의가 중국의 산업 발전의 화두인 것처럼 솽퉁도 저부가가치 제품으로 인식되는 빨대산업에서 고부가가치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대의 빨대기업, 일명 ‘빨대대왕’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사업 성과만큼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친환경적으로 만든 공장이다. 그는 회사 안에 창고, 저수지와 5개의 폐수 처리소까지 만들었다. 공장을 처음 설계할 때는 외부에 설계를 의뢰했는데, 원하는 수준이 나오지 않자 그가 직접 외국 서적을 공부해가며 설계했다. 일반적인 건축물에는 건물을 연결하는 관이 4개 정도지만 그가 직접 설계한 공장은 14개의 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관들은 공장 가동에 사용하고 남은 예열을 모아 적절히 사용하거나 제품 생산에 사용됐던 폐수를 다섯 차례에 걸쳐 정화해 화장실 변기용수 등으로 사용하는 데 쓰인다. 공장을 친환경적으로 만든 데는 2003년 발생한 이우의 단수사건이 계기가 됐다.

“빨대 생산에는 물이 필수적이에요. 솽퉁의 경우 과거에는 1년에 1만5000t의 물을 썼습니다. 2003년 이우에 극심한 단수가 있었어요. 화장실 변기 물조차 없어서 애를 먹었죠. 당시 1주일에 네 번, 4시간씩만 급수가 되다 보니 회사 운영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사스가 겹치고 정전까지 이어져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이우는 특히 물이 부족합니다. 물이 없기 때문에 근처 단양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용수 가격이 무척 비싸지요. 이 점 때문에 폐수 재활용시설까지 두고 공장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게 됐어요.”

수처리 시설을 갖추면서 그의 공장은 1년에 우리 돈으로 약 3억6000만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사용하는 물도 1만5000t에서 2000t으로 줄었다.

그는 그의 뒤를 이을 경영자를 직원 중에서 발탁할 생각이다. 외부 경영자를 초빙할 경우 문외한이 전문가를 관리하는 격이 되는데, 빨대와 같이 제품 기준이 완비되지 않은 업종은 외부 경영자를 초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솽퉁이 사회에 부합하는 기업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같이 일하는 근로자와 성과를 나누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김명신님은 KOTRA 상하이무역관 차장이며, 중국통상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KOTRA 중국직무전문가를 역임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외대 중국학(중국경제) 석사를 거쳐 중국 런민(人民)대학에서 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거시경제, 지역경제, 기업관리, 마케팅에 조예가 깊으며, 저서로는 《중국 CEO, 세계를 경영하다》(서돌), 《중국 비즈니스 로드맵》(KOTRA), 《중국 성시별 비즈니스 기회와 진출 전략》(KOTRA) 등 8종이 있다.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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