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72) ‘나카무라 샤미센’의 나카무라 이사무(中村勇), 나카무라 고지(中村浩司), 나카무라 겐타(中村健太)씨

일본 전통 악기 ‘샤미센’의 맥을 잇는 장인 3대

‘효율화’와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폭풍처럼 밀려오던 ‘기계화’라는 단어가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된 지 오래다. 기업 현관 안내원도, 가사 도우미도 로봇으로 대체되어가고 있는 요즘, 손끝의 촉감이 아니면 안 된다며 수작업을 고집하는 장인 일가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634m의 전파탑 스카이 트리가 바라다보이는 도쿄의 변두리 가쓰시카구 아오토(葛飾区 青砥)의 일각에 4대에 걸쳐 일본의 전통 악기 ‘고토(琴)’와 ‘샤미센(三味線)’을 제작해온 장인 3대가 있다. 이들 3대는 모진 풍파를 감내하며 세월이라는 스승이 가르쳐준 오감이 살아날 때에만 제대로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맛을 내는 줄이라는 뜻을 지닌 샤미센은 세 줄의 목이 긴 일본의 전통 현악기다. 중국의 산시엔이라는 악기가 오키나와를 거쳐 본토에 전해지면서 샤미센이 되었다. 샤미센은 오른쪽 무릎에 몸통의 오른쪽 부분을 얹고, 왼손으로 지판을 받치고 현을 누르면서 오른손에 바치(撥)라는 도구를 쥐고 현을 켜서 음을 내는 악기다. 무게가 3.2~3.8kg나 되는 샤미센은 네 개의 목재 합판을 합쳐 만든 통에 길쭉한 지판을 붙이고, 세 줄의 현을 매어 만든다. 사각 몸통의 양면에는 고양이나 개의 가죽을 붙인다. 긴 목은 자단이나 떡갈나무로 만들며, 현은 명주실을 사용한다. 음색은 연주법에 따라 달라지지만, 샤미센을 구성하고 있는 현이나 바치 등의 재질과 크기, 두께, 무게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러한 악기를 100년 넘게 제작했지만, 후세에 길이 남을 명품 악기를 제작한 것도,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다바리처럼 수억원 하는 작품을 제작해 명공의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 3대를 향하는 시선이 뜨겁다. 샤미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일본 제조업의 근간이 된 ‘모노즈쿠리(ものつくり·좋은 물건 만들기) 정신’에서 부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3대가 운영하는 공방 ‘오카무라 샤미센’을 찾았다. 3대는 기역자로 자리를 잡고 앉아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오른쪽에 2대 나카무라 이사무(中村勇)씨가 자리하고, 안쪽 오른쪽에는 3대 나카무라 고지(中村浩司)씨, 그 왼쪽에 4대 나카무라 겐타(中村健太)씨가 자리를 잡고 앉아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

8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난 2대 이사무씨는 열일곱 살에 입문해 올해 여든일곱 살이 되었고, 형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가업을 잇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 열아홉 살에 입문한 3대 고지씨는 쉰네 살이 되었다. 5년째 수행하고 있는 4대 겐타씨 역시 가업을 잇는 게 운명이라 생각하고 열여덟 살에 입문해 스물네 살이 되었다. 세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165세인 전통 악기 장인 3대와 상큼하면서도 깊은 릴레이 토크가 시작됐다.

장인 외줄 인생 70년이 번개처럼 지나갔다는 2대 이사무씨는 질환으로 거동이 조금 불편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다다미방에 앉아 하루 12시간 이상씩 작업하다 보니 허리와 무릎에 이상이 생겨 수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몇 십 년 전 있었던 일들의 날짜와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공방을 압도한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50년 넘게 스포츠머리를 고집하며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다짐이지! 자신에 대한 다짐! 고객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고, 좋은 음색을 추구하는 장인의 마음으로 변치 않겠다는 다짐이지. 무엇보다 손님들이 이 스포츠머리가 어울린다고 해.”(웃음)

3대 고지씨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아버지 이야기에 지긋이 귀 귀울이다 필요할 때만 말을 거든다. 말솜씨도 차분하고 조리가 있다. 연예인 못지않은 수려한 외모에 차분한 분위기로 학창시절 인기가 높았던 그다. 화려한 길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대를 이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어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고, 결국 순응하게 되었단다. 긴장한 탓일까,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는 4대 겐타씨는 5년째 수행을 하면서 샤미센 만드는 기술을 대부분 섭렵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직 초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장인의 길을 선택한 그도 이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요. 그런데 아들이 나밖에 없으니 대를 이어야 하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아니었나 싶었지요. 수십 가지 기술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하려면 최소한 10년이 걸린다는데, 멀리 돌아갈 시간을 절약해 일찍부터 배우자고 생각했지요.”


죽기 전에 하나라도 자신의 기술을 완성할 수 있다면 행운이라는 장인의 길. 평생 자신의 기술에 만족하지 못하고 손에서 끌을 놓지 않았다는 선대 나카무로 요시나가(中村義永)의 장인정신이 계승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기술이나 장인정신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연주자가 줄어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전통 악기업계에서는 문을 닫고 수리공장의 단순 노동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장인도 늘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 3대의 처방전은 달랐다. 기본은 ‘정도를 걸어라’였다. 도를 닦듯이 기술을 연마하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심플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확대해간다는 것이다. 사원을 줄이고, 값을 내리고, 임금을 감축하는 ‘3감’ 전략을 택한 일본의 다른 기업과 달리, 이들 3대는 가격과 수리비는 유지하고, 100년간 이어온 ‘신뢰 마케팅’으로 고객을 늘리고 있다.

“인터넷 주문이 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작 비용을 먼저 받자는 의견도 있었고요. 그러나 ‘모든 것은 인간에서 나온다. 득도의 기술은 장인의 노력에서 나오고, 믿음은 신뢰에서 나오며, 그 기술과 신뢰가 만날 때 돈이 된다’는 창업자의 가르침을 되새겼지요.”

나이 드신 연주자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 이들은 홈페이지를 심플하게 만들었다. 정교하지 않고 다소 촌스럽지만, 크고 진한 붓글씨체 글씨로 디지털 느낌이 덜 느껴지도록 했다. 3대가 작업하는 모습을 올려 신뢰성을 높였다. 여기에 샤미센 몇 종류를 소개하는 게 전부지만 군더더기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판단이 효과를 발휘했다. 또 고객을 철저히 신뢰하는 마케팅을 고수했다. 홈페이지나 전화 주문이 폭주하면서 100% 후불제였던 대금 결제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악기 값을 떼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을 믿고 신뢰 마케팅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금을 받지 못한 적이 없다.

작업하는 동안 3대 장인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각자 묵묵히 작업에 열중할 뿐이다. 인정받는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짧아야 10년이 걸린다지만, 부자지간이라도 먼저 가르쳐주는 법은 없다. 말 그대로 어깨너머로 배운다. 3대가 쓰는 도구는 모두 다르다. 수십 년간 쓰면서 자신에 맞게 갈고닦은 것들이라 물려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손 모양, 압력, 작업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명공이 사용하던 고급스러운 것을 물려받는다 해도 자신이 의도하는 각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2대 이사무씨의 도구함에는 끌·톱·숫돌 등 수십 종의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대패만 6개나 된다. 자세히 보니 모양이 다 다르고 날의 각도도 모두 다르다. 대패 밑동이 원형으로 된 것도 있고 기울어진 것도 있다. 날도 15도·직각·역각 등으로 기울기가 다르다. 원목은 강도가 철판 버금가는 것을 쓰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무겁고 단단한 것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라운드 처리하고 얼마나 적절한 탄력으로 몸통에 가죽을 입히는가는 장인의 기술에 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도구가 발달한 것이다.

2대 이사무씨의 손을 보니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톱으로 베인 자국, 끌로 베어 떨어져 나간 곳 위에 생긴 피부가 60여 년간 샤미센을 만들어온 장인의 길을 말해주는 듯하다. 샤미센 장인들의 육체적 고통은 작업 중 발생한 상처만이 아니다. 지금이야 다다미 바닥에 다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다리를 풀고 작업하지만, 옛날에는 화장실 가고 밥 먹을 때 외에는 하루 종일 정좌 자세로 일해야 했다. 허리가 아픈 것은 부지기수고 심지어 다리가 기형이 되는 장인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2대 이사무씨도 허리 통증으로 세 번이나 입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전통 악기시장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장인들로 주목받고 있지만,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 중에는 수요가 없는 샤미센 대신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간 적도 있고, 장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샤미센을 수리해주겠다며 유곽을 드나든 적도 있다.

“앞으로도 부침은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로 스승과 고객에게 인정받고, 고객을 믿고 신뢰하는 정도를 걷는다면 전통 악기 샤미센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최후의 장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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