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71) NPO법인 도시마치켄(としまち硏) 스기야마 노보루(杉山昇) 이사장

커뮤니티를 되살리는 주택 ‘코포라티브 하우스’의 선구자

일본 도쿄의 중심부 간다(神田)는 에도시대부터 소상공인과 장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전형적인 서민타운이다. 전자상가로 널리 알려진 아키하바라의 옆 마을이자 도쿄역에서도 가깝고, 신주쿠에서도 전철로 불과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크고 작은 상업용 건물과 오피스 빌딩이 늘어서 있다.

한낮의 간다역 주변은 오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역에서 10여 분만 들어가면 인적이 뜸해지는 전혀 딴 모습을 보인다. 특히 밤이면 역 주변과 큰 길을 제외하곤 불 켜진 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리는 어둠에 싸인다. 최근 20여 년 사이 거주 인구가 줄고, 초등학교 학급도 하나 둘 줄었다. 밥 짓는 냄새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 되어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도심 한복판 초등학교에 이변이 일기 시작했다. 수는 적지만 조금씩 초등학생이 늘어나 지역 주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오염된 연못을 정화하고 물고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소리 없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한 사회활동가의 노력이 있었다. 바로 스기야마 노보루 NPO법인 ‘도시마치켄’ 이사장이다. 그는 일명 ‘코포라티브 하우스의 선구자’로 통한다. ‘도시마치켄’이란 ‘도시 마을 만들기 연구회’의 줄임말인데, 개성 있는 주택을 공급해 낙후된 구도심이나 무너진 커뮤니티를 재생시키는 형태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싸늘해진 도심에 사람 냄새를 다시금 불러들이고 있다.

간다역에서 10여 분을 걸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일각에 자리한 삼각형에 가까운 이색적인 지붕의 건물이 있다. 2층 회의실, 한 중년 신사가 파워포인트를 넘겨가며 열심히 발표를 하고 있다. 상대는 도시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마을 만들기를 시찰하러 온 한국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이란다.

“최근 들어 방문자가 늘고 있는데, 이처럼 도시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급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명을 하려니 조금 긴장되네요.”

그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로 ‘굿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도심 커뮤니티를 되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번 표창을 받았지만 무슨 상을 받았는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벽에 걸린 표창장과 상패를 보고 “수상 경력이 화려한데요?”라고 말을 걸었다. “주니까 받아놨는데, 무슨 상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주변 지역을 산책했다. 간다 지역의 색다른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이 삼각형인 빌딩, 베란다에 식물이 가득하고 넝쿨이 장막을 이루고 있는 건물, 창문의 위치가 모두 다른 건물 등 이 지역의 특성이나 건축 구조를 생각할 때 이해하기 힘든 빌딩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도시마치켄’이 지은 건물이란다. 어떻게 창문의 크기나 위치가 서로 다른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코포라티브 하우스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공동주택이지만 입주하는 주민들이 가족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맞게 모든 가구의 설계를 따로 했기 때문이지요.”

건축 구조상 요구되는 골격과 공용 부분을 제외한 내부 기둥에서부터 주방, 침실, 욕실, 창문의 위치까지 모두 다르다. 마감도 다르고 설계도 다르니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 같지만, 일반 건설업자가 짓는 것보다 약 15% 저렴하다고 한다.

“토지대금, 공사비, 설계비, 코디네이트비가 주요 경비인데, 일반 건설업자가 취하는 개발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건물 설계도 NPO법인에 소속된 멤버가 담당하기 때문에 설계비만 받는다. 건축자재도 조달 가격을 공개해 추가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의 수익원은 정해진 소정의 컨설팅료. 기본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자금이 필요하지 않다.

코포라티브 하우스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타운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과 취향이 십인십색이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다 같이 정한 공동행사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주택을 만드는 것이다. 기획에서 입주까지는 보통 2~3년 걸린다. 이 중 설득과 설명하는 데 3분의 2가 소요된다. 처음 6개월에서 1년은 땅주인과 협의하거나 설득하고, 그 후 입주할 주민을 모집하고 어떤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들 것인지, 수많은 주민 설명회를 갖는다. 가구별로는 어떤 구조로 내부를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미팅을 갖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협의한다.

“여기까지가 제일 힘든 작업이지요. 그리고 커뮤니티를 되살린다는 철학과 노하우가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코포라티브 하우스를 건축하는 토지는 도심에서 인구나 산업이 빠져나간 지역이나 낡아서 재건축이 필요하지만 땅주인에게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곳이 대상이 된다. 기본 철칙은 토지 제공자나 지역 주민이 그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이 점이 토지를 제공하고 보상금을 받아 외지로 나가는 재개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코포라티브 하우스는 커뮤니티가 핵심이기 때문에 다 같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땅주인도, 입주하는 주민도 모두 인식이 같아야 하는데, 비용만을 공유한다면 참여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노하우를 살려서 일반 건축업자가 짓는 아파트보다 더 저렴하게 짓는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그의 손을 거쳐간 코포라티브 하우스는 16채.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코포라티브 하우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마치켄’이 간다에 둥지를 튼 것은 17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대형 건설회사인 하자마구미에 입사해 20여 년간 도시개발을 담당했다. 개발 계획에서부터 주민 설득에 이르기까지 회사에서 인정받는 디벨로퍼였지만, 거대 조직의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낀 그는 제2의 인생을 자신의 힘만으로 개척해보고 싶었다. 퇴직 후 부동산 컨설팅회사를 설립한 것은 그가 46세이던 1995년, 창업 초기부터 부르는 데가 많았다. 전국을 돌며 컨설팅을 진행했다. 1년의 절반 이상이 지방 출장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었다. ‘살기 좋은 도시, 편안한 주택’에 대한 연구 모임이었다.

1995년부터 매월 첫 번째 목요일에 연구회를 운영했는데 올해 4월로 200회를 맞았다. 15~16명으로 시작했던 연구회는 내부 모임 시에는 평균 40명, 외부 모임 시에는 200명 가까이 사람이 몰린다. 그러던 1997년, 간다형 공동 재개발에 대한 자문이 들어왔다. 코포라티브 하우스에서 가능성을 감지한 그는, 간다를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조직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구회 멤버를 중심으로 2000년, NPO법인을 발족시켜 연평균 1.6동의 코포라티브 하우스를 건축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코포라티브 하우스는 지역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고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뛰쳐나온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매일 사람들 속에 섞여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 만나는 게 즐겁다고 한다.

“디벨로퍼로서 일할 때는 조직의 수익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개발이익이 아니라 사람이 빠져나간 도심 지역을 육아가 가능한 지역으로 부활시키고, 입주민들이 사이좋게 코포라티브 하우스 내에서 교류하고 지역 축제에 참가하는 등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뛰죠. 매우 뿌듯합니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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