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65) 혼즈 시게키(本津茂樹) 긴키대학 교수

세계 최초로 치아 반창고 개발했어요

‘가난한 집에서 효자 난다’는 속담이 고사(古事)만은 아닌 것 같다. 숱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치과 치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치아 반창고’를 개발해 일본 의료계의 시선을 고정시킨 긴키대학 생명이공학부 혼즈 시게키(本津茂樹)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강풍을 동반한 대형 태풍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던 지난 9월, 도쿄를 비롯한 일본 3대 도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도로는 물바다가 되어 자동차가 멈추고, 강풍과 비바람으로 가로수는 부러지고 전철은 멈췄다. 그런 태풍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었다. 도쿄 역 부근 국제 이벤트 행사장에서 개최된 <이노베이션 재팬 2011> 견본시장이었다. 일본 전국 대학에서 연구 개발한 기술과 발명품이 전시돼 학계의 연구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견본시장 한쪽에 마련된 특별 세미나실. 긴키대학 혼즈 교수의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한산했던 자리가 순식간에 가득 메워졌다. 설명회가 끝난 후 매칭 코너에는 수십 명의 설명회 참석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와 명함을 교환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두께 약 0.005mm의 투명한 시트 한 장이다. 이 시트의 주요 성분은 우리 몸의 뼈나 치아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무기질로 임플란트 등에도 사용되는 수산화인회석(hydroxylapatite)이다. 치아 표면을 감싸고 있는 에나멜 성분의 약 97%가 수산화인회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수산화인회석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는 시트 상태로 가공한 것이 바로 ‘치아 반창고’다. 수산화인회석은 원래 딱딱하고 견고해서 지금까지는 아무리 정밀한 기술로 가공해도 구부리면 끊어지거나 금이 갔다.

“100마이크로미터 이하, 즉 0.1mm 이하면 갈라지기 때문에 그 이상 얇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덩어리를 위에서부터 깎아 만들던 방법을 버리고 밑에서부터 쌓아서 엷은 박막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지요.”

수산화인회석의 분말을 진공상태의 장치에 넣고 레이저를 쏘이면 칼슘 등의 원자와 분자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던 결합이 끊어져 분리된다. 이렇게 떨어진 원자와 분자는 장치 속에 놓인 기판 위에 쌓이고 그 기판에 열을 가한 후 식히면 원자와 분자가 다시 결합해 막이 형성된다. 레이저의 시간과 온도, 냉각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수산화인회석 막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실용화 전망이 서면서 이 시트의 용도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치아의 지각과민증이나 충치 예방 등 치과 치료용으로 임상실험을 하고 있는데, 지각과민증은 치아의 표면을 덮고 있는 에나멜질이 떨어져 치아 내부에 있는 상아질이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상아질 위에 이 시트를 붙이면 인공 에나멜질을 만들어내면서 자극으로부터 치아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치아의 형태에 맞춰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용도는 무진장하다. 무색 투명하기 때문에 색상이나 불소를 가미할 수 있고, 무색 투명한 상태로 사용하면 치아의 표면을 깎지 않고도 시트를 붙여 하얀 치아를 만들 수도 있다.

실용화의 가장 큰 과제는 가격과 접착 시간이다. 직경 약 5cm의 시트 한 장에 약 1만 엔. 최종적으로 한 장에 2000엔 정도에 공급할 수 있도록 개량을 거듭하고 있다. 구강 시술 시 한계 개구 시간이 20분이라고 하는데, 이 시트를 붙여 완전히 치아와 일체화될 때까지는 24시간이 걸린다.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면 수십 초 만에 가능하겠지만, 구강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을 고려해 어떤 이물질도 사용하지 않고 일체화될 때까지의 소요시간을 20분으로 단축시키기 위해 개량하고 있다.


일본 국내외 연구기관과 기업에서 공동 연구와 상용화에 참여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상용화가 다가오자 치과 의사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특히 개업의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약국에서 사서 붙일 수 있는 형태로 제품이 출시되면 치과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일본 정부의 인정을 받으며 2025년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립대학 전략적 연구기반형성 지원사업’으로 채택되었다. 그동안 체험하지 못했던 최신 설비와 시설을 갖춘 그는 타 대학의 시설을 빌려가며 연구를 할 수밖에 없던 20년 전을 회상하며 미소를 짓는다. 변변한 연구비조차 지원받지 못하던 그가 이런 결과를 내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인내,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

“‘Simple is best’, 이것이 학문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알기 쉬운 학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추구하는 것이 저의 연구 철학입니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3시간 거리인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 오사카에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20분 거리,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긴키대학 와카야마 캠퍼스가 그의 연구 거점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엄마가 다가오면 경보가 울리는 시스템을 만들어 아이들을 안심하고 놀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아침에 해가 떠올라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열리는 커튼을 만들어 엄마를 기쁘게 했다. TV 진공관 등 전기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은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컴퓨터, 반도체 시대를 예견한 그는 대학에 진학했고 연구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왕성해졌다. 학부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진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지도교수가 퇴직하면서 대학원에서 그는 부모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연구력을 인정받아 대학에 남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만을 위한 연구실도, 기자재도 없었다. 허름한 10m2(3평)짜리 창고 같은 방에 전기로 한 개가 유일한 설비였다. 39℃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여름방학도 잊고 매일 웃옷을 벗은 채 연구실에서 실험을 했다. 그러자 ‘학교에 알몸으로 연구하는 젊은 바보가 있다’고 소문이 나 연구 주임교수에게 불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문을 구할 선생님도 없었고, 시설도, 연구 환경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환경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교수가 된 후 그는 오사카에서 최대 시설과 설비를 갖춘 국립 오사카대학을 찾아갔다. 그리고 “레이저 기기를 다루는 기술 등 선진 기법을 배우고 싶어서 왔습니다”라며 문을 두드렸다. 교수 명함을 들고 찾아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연구자의 세계. 그동안 쓴 논문을 들고 학계 권위자를 찾아가 추천서를 받고서야 실험실 출입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겨우 연구실 출입을 허락받았지만, 기자재 사용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학원생들의 사용 스케줄이 빼곡히 잡혀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는 새벽 6시에 실험실에 도착해 청소부터 시작했다. 기자재를 독점할 수 있는 이른 아침 세시간은 그에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9시가 되면 수업을 하기 위해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학으로 돌아갔다. 학교 일이 끝나면 다시 오카사대학 실험실로 향했다. 그렇게 늦은 밤 두세 시간도 독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교수라는 것을 티 내지 않고 대학원생들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연구를 심화해갔다. 그러다 보니 그를 받아준 교수도, 연구실 대학원생들도 자문을 구해왔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중 생활’은 1987년부터 대학에 레이저 기기가 도입된 1993년까지 5년간 지속됐지만,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돈 없고, 시설 없고, 설비가 없다고 해서 연구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것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없는 것도 자산입니다. 저는 연구 환경이 어려웠기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눈물이 자양분이 되었고, 오늘 소박하나마 사회에 유익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염동호 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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