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50) 농작물 재배 게임 만든 (주)에르디 구즈시마 아키나(葛島明奈) 대표

게임 속에서 재배한 농작물이 진짜 배달돼요

‘IT와 농업이 만났다’ ‘인터넷이 자급자족을 실현했다’ ‘휴대전화 게임이 지구온난화를 해결한다’. 최근 일본에서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화두다. 이 화두의 발단은 신흥 벤처기업이 1만여 명의 20~30대 농업청년과 힘을 모아 서비스를 개시한 일본 최초의 농업체험게임 ‘하타케피(畑っぴ)’다. 연간 이용자 10만 명에 매출액 6억 엔에 이를 정도로 반향이 크다.

3D 업종보다 더 힘들다는 농업. 수입이 불안정해 젊은이들로부터 경원시되던 일본 농업에 변화가 일고 있다. 자나 깨나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는 이른바 엄지족들이 최근 농작물 재배에 푹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가상세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게임 시작 1주일 후, 겉잎이 벗겨지지 않은 두툼하고 싱싱한 ‘상추’가 배달되었다. 농가에서 택배로 부친 것이 다음날 도착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가상농장(모델 농장이 실제로 존재)에 상추씨를 뿌린 후 서투른 손놀림으로 작은 버튼을 눌러가며 1주일 동안 열심히 공을 들인 대가였다. 상추 값은 무료. 유저는 게임 이용료만 지불하면 상추 값과 운송비는 사이트 운영사가 부담한다.

농업과 IT를 융합시킨 게임을 기획, 개발한 에르디(LD) 주식회사의 구즈시마 아키나(葛島明奈) 사장을 만났다. 젊은이들의 메카라 불리는 시부야 인근에 자리한 신흥 벤처가에 있는 오피스. 게임 오타쿠(마니아)이거나 프로그래머를 연상했는데 뜻밖에 IT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27세의 여성이었다.

“이 게임의 최대 장점은 게임을 즐기면서 농작물 지식을 습득하고, 건전한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타케피는 농지가 없어도 농업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체험형 농업게임. 흙 한번 밟아보지 않고 도심 빌딩 숲에서 지내는 젊은이들에게 더욱 인기라고 한다. 감각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야채 재배가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가상세계로 끌어들인 데다 재배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어렵게 재배한 농작물이 실제로 도착하면 다른 게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지요.”

오락성과 함께 농업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도 유저가 흥미를 느끼는 요인. 게임은 단순히 물이나 비료를 주는 획일적인 작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업청년단체의 엄격한 감수를 거치기에 현장성이 강하다. 작물 재배기간과 난이도에 따라 초급・중급・상급으로 나뉘는데 초급 단계를 달성하면 중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재배 가능한 작물이 늘어간다. 재배기간은 초급은 4~7일, 중급은 7~30일, 상급 과정인 마이스터는 30~60일이 걸린다. 재배 가능한 작물은 피망・밀감・사과・딸기・멜론・상추・감자・피망・고구마・수박 등 야채와 과일 10여 종류다. 월 이용료는 210엔. 여기에 종자씨나 비료 등 농작업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때마다 30~50엔이 들어간다. 게임 속의 하루는 1.5시간. 16일은 24시간. 1년이 23일이다. 날씨와 밭의 상황에 따라 물 주는 양을 조절하고 호미나 괭이로 잡초를 제거해 100점 만점에 75점 이상을 받아야지만 작물이 배달된다.


게임으로 사회를 바꾸어나갈 겁니다

구즈시마 아키나 사장은 어패럴 회사, 통신판매사 상품기획, 모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IT에는 문외한이었다. IT라면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 정도가 지식의 전부였던 그가 하타케피 개발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은 휴대전화 동화배신(動畵配信) 서비스 모델에 응모했을 때 알게 된 포털 운영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그의 아이디어를 들은 운영사 간부가 벤처기업 설립을 제안해온 것이다. 그들은 곧바로 의기투합해 3개월 후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경영을 공부한 적도, 기업경영에 뜻을 둔 적도 없다. 단지 남에게 끌려 다니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한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효고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농업에 친숙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할머니가 집 앞 텃밭에서 야채를 가꾸고 계셨지요. 그날 수확한 야채로 요리한 반찬이 저녁 밥상에 오르곤 했어요.”

그는 지역에서 유명한 입시 명문고의 영어 특진반에 들어갈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패션잡지를 접했고, 소녀는 서서히 패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도쿄의 복식전문학교를 선택했다. 진학지도를 하던 담임선생님은 물론 집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렇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한번 정한 일은 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결국 져주셨지요.”

복식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어패럴업계에서 2년간 근무했다. 백화점 매장에서 고객을 상대하면서 고객의 기호를 파악했고, 점점 자신의 점포를 갖고 싶어졌다. 세계를 상대로 거래하려면 바이어의 안목과 완벽한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밤일까지 하면서 유학 경비를 모았다. 코피를 흘리며 6개월간 모은 60만 엔을 손에 쥐고 무작정 영국으로 향했다.

“학비 내랴, 생활비 하랴 당연히 돈이 부족했지요.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낮에는 학교, 저녁에는 음식점과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년간을 견뎠어요.”

어학연수를 마친 그는 바이어 수업을 위해 통신판매회사에 들어가 의류와 보석을 중심으로 상품기획을 담당했다. 사람들이 일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밤낮 없이 일에 몰두했다. 피로가 쌓이면서 피부도 거칠어졌다.

“‘피부가 거칠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 자기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뭘까?’ 생각했어요. 바로 떠오른 것이 신선한 야채와 자연산 화장품이었어요.”

그때 그는 자신이 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거야!’ 하고 필이 팍 왔어요. 휴대전화, 게임, 야채, 화장품이라는 키워드를 모았더니 휴대전화게임이라는 콘셉트가 나왔죠.”

그는 앞으로 젊은이들이 오락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게임을 통한 사회계몽이 그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게임에서는 유기농과 무농약 야채 재배체험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전국 각지의 특산 야채나 과일을 게임에 올려, 게임을 통해 농가를 브랜드화하고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생각입니다.”

그는 현재 경영자 수업에 여념이 없다. 각종 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하며 인맥을 쌓고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넓혀가고 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모델 출신의 젊은 여자가 뭘하겠느냐’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잠재우고 싶다”는 그는 시작은 게임이었지만 농가 컨설팅으로 영역을 확대해 자신의 사이트를 전국 농가의 직판 메카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경영도 모르고 게임도 모르고 사장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이렇게 사장을 하고 있잖아요.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패션 매장을 갖겠다는 꿈도 잊지 않고 있단다.
글쓴이 염동호 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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