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49) '슌카엔 분재미술관' 고바야시 구니오 관장

일본 최고의 분재작가

“분재는 대자연과 문화가 응축된, 공간과 시간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예술이자 작은 우주입니다. 그곳에 새겨진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자만이 분재의 가치를 알 수 있지요.”

현존 최고의 분재작가로 평가받는 고바야시 구니오(小林国雄) 카엔(春花園) 분재미술관 관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달변이었다. 분재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동양철학으로 풀고 있었다.

장인정신과 예술가적 작가정신을 겸비한 그의 작풍은 강인함과 격조 높은 품격이 묻어나는 게 특징이다. 700여 명의 일본 프로작가가 최고봉을 가리는 일본분재작품전에서 그는 4회 연속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결정적인 작품은 1999년 수령 600년의 흑송으로 만든 ‘청룡’이라는 작품이다. 형태미와 함께 나무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의 작품은 수천만 엔을 가볍게 호가한다. 1억 엔에 판매된 작품도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15개국에서 강연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엿보기 위해 그의 작업장을 찾았다. 창작만이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있어야 한다며, 2002년 도쿄 외곽 에도가와구에 대지 2645㎡(800평) 총공사비 10억 엔을 들여 만든 분재미술관이 바로 그의 작업공간이다.

영화배우 캐머런 디아즈가 언론을 피해 밀행할 정도로 입소문이 나 있는 일본 유일의 분재미술관. 연간 1000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고 매달 수십명의 외국인 연수생이 다녀가는 곳이다. 전통 일본식 건축물로 지어진 미술관 정문 앞에 내리자 20대의 젊은 제자가 마중을 나왔다. 분재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수령 100년이 넘은 분재가 가득 전시돼 있다. 수령 650년의 작품은 1000만 엔, 수령 1000년의 흑송 ‘청룡’은 2000만 엔이란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영어를 섞어가며 독일인 제자를 지도하고 있는 초로의 분재작가 고바야시 구니오 씨가 일손을 멈추고 반긴다.

“완공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최고를 추구하다 보니 건축비가 늘어나 사재를 몽땅 털어 넣고도 모자랐지요. 수차례 융자를 받고 지인에게 손을 벌려야 했어요. 주위에서는 객기 부린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요.”

분재, 전통 가옥과 정원, 기모노 체험, 다도 등 일본 전통문화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된 미술관은 일본 각지에서 모은 최고급 삼나무 원목으로 지어졌다. 내부 벽과 천장은 삼나무의 향과 원목의 무늬가 잘 어우러져 화지에 그린 그림을 붙인 것처럼 운치 있다. 정원과 마주한 15개의 전시실에는 계절과 테마에 맞춰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공간인 다다미방, 족자, 소도구, 분재가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분재에 이러한 요소가 두루 갖춰진 작품이 바로 일본의 전통 분재입니다. 어느 것 하나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품위와 개성, 자연미가 사라져 즐거움이 덜하지요.”

원예 농가에서 태어난 그가 분재를 만난 것은 29세 때였다. 가업으로 묘목을 기르고 꽃을 가꾸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분재경연대회에서 운명을 바꾸게 될 작품을 만난다. 수령 500년 된 높이 80cm의 오엽송(잣나무) 앞에서 얼어붙고 만 것.

“수십 분간 꼼짝할 수 없었어요. 줄기는 죽어서 하얘졌고, 나무껍질만으로 살아 있었죠. 소름 끼칠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하얀 뼈를 드러낸 채 가죽만 살아 있는 잣나무 분재에서 그는 생명의 존엄함을 느꼈다고 한다. 생과 사의 공존, 그 속에서 뿜어내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며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집념과 마음을 강하게 느꼈다. 그 순간 그는 일생 지고 가야 할 자신의 업을 찾았다. ‘나도 언젠간 이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집념이 생긴 날부터 그의 고행은 시작됐다. 대를 이어 작풍을 이어가는 분재계에서 그가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독학을 결심한 그는 수많은 관련 서적을 읽고 전국 분재 전문점을 찾아가 재배기술과 감각을 익혔다.


분재는 나무 내면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일

원예가 외적 미를 추구한다면, 분재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불필요한 가지를 쳐가면서 나무 내면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작가의 기량에 따라 우주가 되기도 하고 잡목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분재다. 그가 그동안 시들어 죽게 한 나무만도 1억 엔 상당에 달한다고 한다.

“좀 더 아름답게 하려고 욕심을 내면 나무들은 결국 죽음으로 항거해요. 나무의 특성은 파악했지만 나무와 깊이 있는 대화를 못 한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을 상대로 한 창작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입문 9년 만인 1985년 프로의 최고봉을 겨루는 일본분재작풍전 협회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9년에는 입문 14년 만에 일본분재작풍전에서 최고상인 내각총리 대신상을 수상하며 입문 14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이러한 그의 작풍 완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스승이 있다. 분재가 취미인 일본화 화가와 경도(景道) 선생. 일본화에서는 ‘내면의 미의식’과 구도를, 경도에서는 조화로운 표현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1996년 이탈리아 강연을 시작으로 매년 3~4회 해외 초청 강연을 한다. 벌써 15개국에서 30회 이상 강연을 했다. 2004년 산마리노공화국 강연 때는 그의 작품과 사진이 그려진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해외 강연 때 그는 항상 부인과 동행한다. 강연료는 필요 없으니 부인과 함께 가게 해달라고 주최 측에 요청하는 것.

“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지요. 아내는 그동안 제가 무엇을 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응원해줬거든요. 게다가 그 많은 제자들 뒷바라지를 다 해주었지요.”

그동안 15개국 200여 명의 제자가 그에게서 분재를 배웠다. 지금도 독일인 제자를 포함해 6명이 그의 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그에게 6년간 배운 영국인 제자 피터 씨는 지난해 유럽분재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문하에는 제자가 되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는다.

“제자들에게 최소한의 소양만 가르칩니다. 기술과 솜씨를 뽐내면 본질을 잊어버립니다. 분재의 주역은 나무예요.”

그는 매년 인근 초등학교에서 졸업기념 분재교실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묘목 기르는 법을 실연하고 있다.

“값싼 묘목에서도 분재의 즐거움과 식물의 자생력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들이 심은 것은 대부분 시들어버리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나무에 신령이 깃들어 있는 듯 느끼게 하는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술관을 국가에 기증해 분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 두 가지를 실천했을 때 삶이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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