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36) 이케다 토미키 도쿄공업대 교수

빛으로 움직이는 플라스틱 만든 세계적인 고분자 화학자

NHK 저녁 메인 뉴스, 앵커의 멘트가 흐르는 순간 분주히 움직이던 주변의 손놀림이 멈추고 조용해졌다. ‘어떡해?’라는 호기심과 의구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모두들 화면을 응시한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작은 물체가 서서히 커지면서 벌레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하얀 불빛 아래 춤추는 광대처럼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인다. 두께 50마이크로미터의 초박형 플라스틱 필름으로, 자외선을 비추면 수축하고 가시광선을 비추면 늘어나기 때문에 빛을 비추는 데 따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의도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이 신기한 플라스틱 필름을 개발한 도쿄공업대 이케다 토미키 교수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고분자화학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인 그는 취재를 수락하면서 “장치를 담당하고 있는 학생 사진을 꼭 넣어 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도쿄 교외에 자리한, 일본 이공계의 메카라고 하는 연구중심 대학 도쿄공업대학 자원화학연구소를 찾았다.

필자가 명함을 내밀자 그는 “이건 흔한 함자가 아니네요?”라며 구석구석 살피더니 꼼꼼히 기록한다. 호기심 어린 그에게 10여 분 넘게 역취재당한 후에야 간신히 화제를 본론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는 연구 과정을 설명하겠다며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필자를 데리고 가더니 연구의 뿌리에서부터 메커니즘, 현황, 향후 전개에 이르기까지 발표 자료를 하나씩 짚어 가며 자상하게 설명했다.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어진 눈높이 강의는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세계 정상급 과학자의 개인 레슨은 비전공자인 필자에게도 매우 알기 쉽게 다가왔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그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 그는 매년 열리는 어린이 과학교실의 인기 강사이기도 한데, “아저씨 너무 신기해요! 실험이 아니라 마술이지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자랑스럽게 웃는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과학소년을 보는 듯하다.

광모터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들.
‘춤추는 플라스틱’은 198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됐다. 그 후 20여년간 〈Science〉 〈Nature〉 등에 발표한 그의 논문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면서 수없이 인용됐고, 2008년 무동력으로 회전하는 ‘광플라스틱 모터’ 시제품을 발표했을 때는 독일 화학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일본 안팎에서 3000건에 달하는 기술 문의를 받았다는 ‘광플라스틱 모터’를 보기 위해 실험실로 자리를 옮겼다. 직경 10mm와 3mm의 차륜에 폭 5.5mm, 길이 36mm의 광플라스틱 필름을 벨트 형태로 끼운 것이 15초에 약 4분의 1씩 회전한다. 배선이나 전지 등 아무런 동력이 없는데도 빛을 비추면 돌기 시작한다.

“지금은 실증실험 단계여서 작은 차륜을 사용하지만 파워는 대단합니다.”

이 작은 것이 인간 근섬유의 10배에 가까운 힘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케다 교수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파워라고 한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완성된 ‘무동력으로 회전하는 필름벨트’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빛에 노출되면 빛을 흡수해 분자구조를 변화시키는 화학물질인 아조벤젠이라는 고분자재료를 이용해 만든 ‘광운동재료(플라스틱 필름)’를 벨트로 가공해 2개의 차륜에 끼우고, 여기에 파장 366nm의 자외선과 파장 500nm 이상의 가시광선을 조사한다. 자외선과 가시광선을 조사하면 굴곡하는 성질을 이용해 광선의 조사 위치를 조정하면 벨트상의 필름이 회전하는 구조다.

이케다 교수가 처음에 만든 고기능 플라스틱 필름은 빛을 비추면 약 10초 동안 축소되었다가 10초 동안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케다 교수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1만 가지나 되는 아조벤젠 분자구조를 하나씩 추출해 빛을 비추고 변형속도를 측정했다. 5년간 이렇게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실의 한 학생이 우연히 모든 분자가 한쪽 방향을 향하는 성질을 지닌 아조벤젠을 발견해 내고는 이케다 교수에게 달려왔다. 무동력 광운동 모터의 단초를 찾아낸 순간이었다. 아조벤젠이 한쪽으로 향하면 빛을 비추었을 때 막대상의 분자 하나가 V자로 굽으면 옆에 있던 분자도 도미노 식으로 잇따라 굽으면서 물질 전체로 확대되는 ‘협동현상’을 활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필름 상으로 성형해 빛으로 움직이는 플라스틱 필름을 완성한 것이다.


모형비행기 좋아하던 과학소년 시절 꿈을 좇아

그는 어떻게 20여 년간 묵묵히 한우물만 팔 수 있었을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형비행기를 좋아했어요. 고무벨트를 이용, 회전하는 프로펠러를 달아 날려 봤더니 순식간에 떨어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무거운 모터를 달아서 날렸더니 이번에는 날지도 못하고 툭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무거운 모터가 아니라 가벼운 플라스틱 모터가 있다면 좀 더 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지요.”

이 플라스틱 필름은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같은 빛을 사용해도 태양광 발전은 빛을 전기로 바꿔서 사용하는데, 광플라스틱 모터는 빛을 직접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년간 지구를 향해 내리쬐는 태양에너지는 전 세계가 1년간 소비하는 에너지의 6000배나 된다. 이것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태양이 작열하는 인도나 중동 같은 곳에서는 용수 펌프나 무인 기상관측 장치의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경량이라는 장점을 살리면 선박이나 자동차에도 응용할 수 있지요.”


아직은 속도가 느린 게 문제. 이케다 교수는 회전속도를 높여 좀 더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도록 빛을 강하게 비추거나 필름의 두께를 조절하는 등 제4세대 필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에게 어떻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지 그 비법을 물었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60점에 만족한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나머지 40점은 창조적인 사고로 메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생각에만 빠져 있지 않으려고 한다. 잠자는 머리맡에는 항상 연필과 메모지를 놓아 둔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과학 잡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그는 제 1저자를 학생 이름으로 올릴 때가 많다.

“학생이라도 논문에 가장 창조적으로 기여한 사람을 제1저자로 기입합니다.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지요. 그것이 과학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첩경입니다.”

지금 그의 꿈은 빛으로 움직이는 미니어처 카를 만드는 것이다. 정년을 6년 남겨 두고 있는데, 그전까지 이 꿈을 꼭 실현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모형비행기를 좋아하던 과학소년의 꿈이 현실로 다가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 연구원으로《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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