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미디어 그룹 RDF와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하는‘퍼니플럭스’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시계놀이 애니메이션

“지난해 가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영상 관련 견본시장 ‘밉콤주이너(MIPCOM Junior)’에 참가했을 때였어요. 큰 회사들이 바닷가에 요트를 정박해 놓고 파티를 여는데, 영국의 유명한 미디어 그룹인 RDF가 우리를 제일 큰 요트로 초청했지요.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느냐?’며 칭찬하는데,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옆에서 보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왼쪽부터 이남옥 PD, 정길훈 대표, 김종현 제작실장.
최근 영국 RDF와 공동 제작,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퍼니플럭스’ 정길훈 대표(39)와 이남옥(29) PD. 두 사람과 김종현(37) 제작실장까지 세 사람이 “새로운 차원의 애니메이션 회사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 서울 역삼동 지하실에 둥지를 튼 것이 2007년 8월이었다. 그런데 첫 작품으로 기획한 〈똑딱하우스〉(TicToc House)가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은 끝에 영국 회사와 공동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똑딱하우스〉는 시계놀이 애니메이션으로, 11분짜리 52편의 TV 시리즈물로 만들 예정. 3~6세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면서,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까지 담는다. 교육적인 요소에 재미와 흥미를 더한 ‘에듀케이션’ 물로,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소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세계시장에서 각광받았다.

남산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 자리 잡고 있는 퍼니플럭스를 찾았을 때, 정 대표와 이 PD는 영국 출장을 앞두고 분주했다. RDF 본사를 찾아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로 했단다.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세계 최대 하청국이던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기획을 가지고 외국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공동 제작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 〈똑딱하우스〉는 그런 면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히트하면 문구와 완구 등 각종 캐릭터 상품에 라이선스를 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똑딱하우스〉를 만들면서 프로그램 제작뿐 아니라 배급, 라이선스 관리에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RDF와 손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첫 작품으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을까.


정길훈 대표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전자회사에 취직해 6개월 정도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 후 애니메이션에 입문, 경력을 쌓아 왔다. 방송 프로그램인 〈TV 유치원〉과 영화 〈오아시스〉 〈천사몽〉의 3D 애니메이션, SF 애니메이션 〈엘리시움〉 제작에 참여했다. 이남옥 PD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해 미대를 졸업한 미술학도로, 캐나다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한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 두 사람. 이 PD가 회사를 옮기면서 계속 함께 일하지는 않았지만, 정길훈 대표가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독립을 결심한 후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이 PD였다. 정 대표는 이 PD에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을 뚫으려면 마케팅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네가 그 일을 해달라”고 청했다.


“저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분이 한 말이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죠.”(이남옥 PD)

“팀원으로 데리고 있을 때 보니,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하는 것보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 새로운 영역 개척하는 것을 잘하더라고요.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이 PD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도 잘 붙이고 대놓고 묻기도 잘해요. 외국에서 공부해 영어도 능하고요. 아무리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도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면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데, 이 PD는 오랫동안 제작에 몸담아 온 사람이니 적임자라고 생각했지요.”(정길훈 대표)


애니메이션 방영과 함께 문구, 완구에 라이선스 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 대표와 이 PD, 김 실장 모두 미혼. “이 일을 하다 보니 결혼하는 것도 잊었다”면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계가 워낙 열악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 열정,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오래 못 버텼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도 세계시장에 내놓고 뻐길만한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패기로 뭉친 이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몸을 던졌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도 TV 만화를 볼 시간이 없지 않느냐? 미취학 아이들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유아교육 전시회나 서점을 다니며 열심히 시장조사를 했는데, 서점 어린이 코너에 유난히 시계놀이 책이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았어요. 그건 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고요.”

“부모들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어하는 ‘시계 보는 법’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전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애니메이션이 〈똑딱하우스〉다. 매 정시에 뻐꾸기가 튀어나와 시간을 알려 주는 뻐꾸기시계처럼, 나무 인형 ‘똑이’와 ‘딱이’가 나와서 시간을 알려 주는 똑딱하우스. 네 살짜리 하늘이 방에 걸려 있는 벽시계인 똑딱하우스 안에서 똑이와 딱이는 어떻게 생활할까?라는 상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시계 속 세상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숫자 읽기와 시계 보는 법을 익히고, 시간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는 기획. 〈똑딱하우스〉의 캐릭터는 유럽 아이들에게 친숙한 나무 완구 형태로, 애니메이션과 함께 캐릭터를 활용한 나무 완구까지 같이 출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수십억 원이 드는 제작비가 문제였다.

“맨손으로 시작했으니, 그때그때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면서 일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행운이 뒤따랐다. 〈똑딱하우스〉는 참신한 기획과 수준을 인정받아 2007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사업’에 선정됐고, 2008년에는 ‘글로벌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남옥 PD는 세계시장 개척을 위해 적극 뛰었다. 2008년 2월, 그는 뉴욕에서 열리는 ‘키즈스크린 서밋’에 이 기획안을 들고 나갔다. ‘키즈스크린 서밋’은 아동용 TV 프로그램과 영화 관련 제작, 배급, 라이선스 관계자들이 총집결하는 행사. 국내에서는 “누가 거들떠보겠느냐?”고 했지만,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은 흥미로워했다. 두 달 후인 2008년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방송영상물 견본시인 밉TV(MIPTV)에 참가했을 때는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상담을 벌였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캐나다 등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았어요. ‘나무 완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친숙한 소재인데,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생각을 했느냐?’며 놀라워했지요. 파트너를 좀 재면서 골랐습니다. 전 세계에 배급하려면 영어권과 손잡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영국의 RDF를 선택한 거지요.”

이 회사와 6개월여 줄다리기 끝에 올 봄 뉴욕에서 계약을 체결한 그는 “물어볼 사람이 없어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야 했다”고 말한다.

“공동 제작 형태니, 제작비와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세세한 부분까지 협상해야 했어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봤지만, 정답이 없더군요. 협상의 기술이나 법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계약서를 어떻게 쓰는지 저 스스로 익혀야 했습니다. 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지요.”


국제 협상에 있어서는 ‘정직과 진실’만큼 잘 통하는 게 없더라고 말한다.

“내 것을 챙기기 위해 뭔가를 숨기면 금방 알아차리더라고요. 왜 우리에게 그런 조건이 필요한지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더 잘 통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건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소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올해 2월 말, 마지막 협상에서 그는 모든 요구조건을 다 얻어 냈다고 한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번 크게 던져 본 것인데, 그걸 다 수용하더라고요. 계약 조건에 합의한 후 함께 밥 먹고 술마시며 노는데, ‘이 사람들은 나한테 다 양보하고도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어요. 혹시 제가 놓친 게 있으면 훗날 수익에 크게 영향이 생기니 정말 긴장되지요. 그쪽에서 저희 작품의 시장성을 믿고 웬만한 조건은 다 들어준 것 같아요.”

〈똑딱하우스〉는 올해 말 제작을 완료해 2010년부터 영국 BBC 방송 등 세계 각국에서 방영될 예정으로, 우리나라와 영국 작가가 함께 시나리오를 쓴다. 그 후 세계의 어린이들로부터 평가받는 것이라 더욱 긴장된다는 이들. 이들의 계속되는 도전이 기대된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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