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샤프트로 미국 PGA 진출한 전재홍 MFS골프 대표

비법요? 죽기 살기로 매달렸죠

비제이 싱, 어니 엘스, 앤서니 킴, 저스틴 로스 그리고 최경주. 미국 PGA에서 활동하는 이 골퍼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작은 기업이 만든 샤프트(자루)가 들어간 골프채를 사용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테일러 메이드, 캘러웨이, 나이키, 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들의 또 다른 전쟁터가 되고 있는 PGA 무대. 이 틈바구니에서 MFS골프, 우리나라에서조차 낯선 한 작은 기업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MFS골프 본사에서 전재홍 대표(46)를 만났다. 그는 골프와 럭셔리를 연결시키는 풍토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골프를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입을 연다.

“우리나라에서는 골프를 부의 상징으로 생각해 초보자도 비싼 수입 골프용품을 아무렇지 않게 사들입니다. 골프는 건강을 위한 스포츠일 뿐입니다. 이제 과시욕을 버리고 자신의 나이와 체격, 습관에 맞는 제품을 골라야 합니다.”

골프 샤프트 전문기업으로 출발한 MFS골프는 골퍼들의 신체적 특징과 습관을 고려해 최적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국내 1호 맞춤 골프클럽 제작 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는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골프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원래는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죠. 그전에 병원 기획실에서 일했는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고민을 거듭하다 불현듯 어릴 적 단짝 친구들이 보고 싶어 무작정 유학 중인 친구들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가 1993년.

“중학교 때부터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을 찾아갔어요. 힘들어지니까 비빌 언덕이라곤 친구밖에 없더군요. 그때 한국에 있던 한 지인으로부터 ‘너 미국에 있으니, 그곳에서 우리 회사 골프채를 팔아 볼 생각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어요. 혼자는 자신 없어 친구들에게 이 말을 했더니 ‘젊은 놈이 뭘 못 하겠느냐’며 ‘한번 해보자’ 는 거예요. 그 일로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되었죠.”

그런데 그와 세 친구 모두 골프에 문외한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잘되겠지’라는 젊은 패기 하나로 부딪혔습니다. 골프채를 들고 LA에서 가장 큰 딜러 숍을 찾아가 ‘한국에서 제일 좋은 제품’이라며 보여줬더니 매니저가 웃더군요. 저희 눈에는 좋아 보였지만, 조잡한 제품이었던 거죠. 그가 제품에 대해 기초적인 것을 묻는데도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어요. 매니저가 답답했는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 하나도 팔기 어렵다. 우선 골프용품에 대해 공부부터 하고, 모르면 우기기라도 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전 대표와 두 친구는 매일 영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골프와 골프용품에 대해 공부하고, 한 친구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친구들이 모두 학생이었으니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위해 발 벗고 나서 준 우정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2~3년을 공부해 골프에 대한 지식이 쌓이자 더 고민스러웠다. 한국의 지인이 보내주는 골프클럽의 품질로는 도저히 미국시장을 개척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내가 딜러라도 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자’고 결론을 내렸죠. 골프클럽 전부가 아니라 핵심용품 하나만 잘 만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때가 1996년이에요. 허름한 창고를 빌려 공장으로 개조하고, 멕시코계 종업원을 고용해 샤프트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6개월씩 미국 대륙 횡단하며 세일즈

MFS를 세상에 알린 오렌지샤프트로 플레이하고 있는 최경주.
“골프는 백인의 스포츠입니다. 동양인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가져가도 관심을 안 보이죠. 최고 제품으로 인정받는 후지꾸라나 미쓰비시 등 일본 제품도 영업은 미국의 백인이 맡아야 할 만큼 인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높아요.”

그래서 택한 방법이 미국 대륙 횡단 세일즈. LA에서 시작해 6개월 동안 동쪽으로 동쪽으로 대륙을 횡단하며 눈에 보이는 딜러 숍과 피팅 숍마다 들어가 제품을 설명하고, 물건을 놓고 나왔다. ‘목숨을 건 행로’였다. “서툰 영어에 위험지역을 지나가는 일정이라 늘 총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였죠. 한 친구는 그렇게 6개월을 지낸 후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죽기 살기로 매달린 결과, 시장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5000곳의 딜러가 우리 제품을 받겠다고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제작했는데, 그것으로는 명품기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중요한 결정을 했다. OEM 대신 자신의 브랜드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제품의 질은 검증됐지만 브랜드를 알릴 이론적 배경, 즉 과학이 필요했어요. 2000년, UCLA에서 우주항공학을 연구하는 한국계 박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자신의 연구 분야인 유체공학 중 TTR공법을 우리 샤프트에 접목시켜 줬어요. 그 후 샤프트의 뒤틀림이 사라지고 스윙 때 힘 손실이 없어져 공의 비거리도 늘어났죠. 방향도 정확해지고요. 이렇게 완성된 샤프트에 우리 것임을 알리기 위해 오렌지색을 입혔어요. 이것이 MFS를 유명하게 만든 오렌지샤프트의 탄생입니다.”

이때가 2002년. 그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도전했다. 바로 PGA였다. 최고의 제품은 최고의 선수들이 사용할 때 비로소 인정받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PGA사무국에 출입증 신청을 했더니 클럽하우스에는 못 들어가는 출입증이 나왔어요. 클럽하우스 앞에 우리 제품 몇 개를 세워 놓고, 지나가는 선수마다 붙잡고는 테스트 좀 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대회로 신경이 곤두선 선수들을 귀찮게 했으니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그때 최경주 선수가 나타났다.

“최 선수는 1999년, 우리 제품을 3개월 정도 사용한 적이 있어 우리에겐 희망이었죠. 그런데 최경주 선수가 처음 건넨 인사가 ‘아직도 이거 하세요’였어요. 매일같이 나타나 잔디밭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비가 오면 그대로 맞으면서 고생하는 우리를 보고는 안쓰러운지 한참 후 우드클럽 한 개만 우리 샤프트를 쓰겠다고 하더군요.”


오렌지샤프트가 PGA 무대에 처음 서게 된 것. 그러나 최경주 선수가 컷오프(예선탈락)되면서 데뷔전은 화려하지 않았다. 이변은 다음 대회부터 벌어졌다. 당시 무명이던 최경주가 우드뿐 아니라 아이언까지 오렌지샤프트로 바꾸고 나선 벨사우스클래식과 크레이트 그린스보로클래식에서 톱 텐(Top 10)에 든 것이다. 2002년 컴팩클래식 역시 오렌지샤프트를 들고 나가 우승했다.
우승 직후 “사용하기 쉬운 샤프트로 바꾼 것이 원동력이 됐다”고 한 최경주의 인터뷰는 단숨에 MFS와 오렌지샤프트의 위상을 바꾸어 놓았다.

“PGA 선수들 눈에 한 수 아래로 비치던 최경주가 샤프트를 바꾼 후 우승했다고 하니 그가 쓴 샤프트가 뭐냐는 문의가 빗발쳤어요. 그 후 20여 명의 선수들이 오렌지샤프트로 바꿨고, PGA도 우리 제품을 공식 용품으로 승인했죠.”

이후 2004년 오렌지샤프트 마케팅을 접으며 전재홍은 또 다른 프로젝트 ‘오직샤프트’를 시작했다. ‘오직’의 반응은 오렌지샤프트를 능가했다. 제품 하나에 1200달러로 PGA 공식 샤프트 중 최고가임에도 45명의 PGA선수가 사용하며 후지꾸라, 아딜라, 그라팔로이 디자인에 이어 세계 점유율 4위에 올라섰다.

전 대표에게 최근 화두인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드는 노하우를 물었다. 그의 답은 “그런 건 없다”였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날 무렵 “세상에 비법이니, 노하우니 하는 건 자기가 만들어 가기 나름”이라며 “사장이고 사원이고 죽기 살기로 해보시죠”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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