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예 ‘바늘이야기’ 사장

손뜨개로 블루오션 개척한 종갓집 종부

솜씨 좋은 여성들의 취미생활로만 인식되던 뜨개질을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주부사업가가 있다. 전국에 70군데의 가맹점이 있고, 10명의 직원이 일으키는 연매출은 20억 원이 넘는다. 일본, 중국, 유럽에까지 이름이 알려져 최근에는 해외에도 진출했다. 그 화려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늘이야기’의 송영예 사장. 종갓집 종부인 그는 사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1년에 여덟 차례 제사를 지내고, 철마다 직접 된장, 고추장 등을 담그던 살림꾼이었다.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이 참 행복했다”는 그가 창업에 눈뜨게 된 것은 뜨개질의 매력에 빠지면서다. 둘째 아이의 태교를 위해 본격적으로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남다른 손재주와 감각으로 함께 시작한 이웃들의 부러움을 샀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PC통신 주부동호회에 손뜨개방을 열어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성지, 육아잡지 등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 잡지에 소개된 그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끌자 잡지사에서는 그에게 아예 고정 칼럼을 맡겼고, 입소문이 나면서 문화센터 강의 요청도 잇달았다.

손뜨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의의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1997년, 손뜨개 정보를 유료로 제공하는 정보제공업자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듬해에는 전자상거래 교육을 받고 국내 최초의 온라인 손뜨개 전문점인 ‘바늘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갈등이 많았어요. 워낙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도 어려 걸리는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남편 사업이 힘들어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이때부터 그는 홈페이지에 부지런히 작품을 올리고 만드는 방법과 함께 재료들을 팔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시장에 나가 물건을 가져다 직접 포장해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워낙 솜씨가 뛰어나 그의 작품에 반한 고객들이 많았고, 덕분에 홈페이지는 오픈 초기부터 별다른 광고 없이도 늘 북적였다. 하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장사하는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호의적이던 분들도 거래량이 많아지니까 경계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될 때가 아니라 제 판매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거래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내친김에 유럽 시장에서 실을 들여왔죠. 어차피 당시 국내 시장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원색 실 위주였기 때문에 제 취향과는 잘 안 맞았거든요.”

그는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지만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린’ 유럽식 실에 매료되었고, ‘바늘이야기’를 통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손뜨개 작품을 선보였다. 결과는 예상대로 ‘대박’이었다. 주문이 줄을 이었고, ‘바늘이야기’는 창업 3년 만에 연매출 30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결국 일본 실 일색이던 재래시장에서도 유럽 실을 구비하기 시작할 정도로 시장에 미치는 ‘바늘이야기’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요인을 ‘주부의 감각’에서 찾았다.

“재료상 주인들은 대부분 남자인데, 그분들이 보는 눈과 직접 손뜨개하는 주부가 보는 눈은 다르잖아요. 저는 밝고 은은한 색감에, 손뜨개 작품 특유의 편안하면서 고상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재료 위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게 다른 주부들에게도 통했던 것이죠”.


손뜨개 재료 수입하던 일본에 역수출

초창기부터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그는 2001년부터는 가맹점 사업을 시작하며 바늘이야기를 키워 나갔다. 단골이던 한 고객이 가게 이름을 쓰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전국에 70개의 매장이 생겼다. 최근에는 미국, 중국에 거주하는 현지 교포들의 가맹점 개설 문의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는 가맹점 수를 늘리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가맹점이든, 사업규모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만 유지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가맹점 사업은 특히 욕심을 버려야 해요. 무조건 매장을 내 주고, 실만 팔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일시적으로는 돈이 되겠지만 결국은 본사와 가맹점 모두 망하는 길이거든요. 저는 점주들이 모두 주부들이고,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갖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함께 성장해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업계 선두주자로서 책을 통해 새로운 패턴 트렌드를 선보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벌써 몇해 전부터 그의 책이 번역 출간되고 있고, 지난해에는 일본에도 진출했다.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시장에 패턴과 제품을 수출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지난해 새롭게 개발한 생활소품 DIY 패키지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진 것. 만들 수 있는 제품도 다양해 슬리퍼, 핀쿠션, 화분바구니, 키홀더, 명함지갑, 컵싸개 등 모두 20여 종에 달한다. 실, 패턴, 장식이 모두 한 봉투 안에 들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무엇보다 손뜨개 부문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에 처음으로 패턴을 수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을 발판으로 그는 앞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중국, 유럽으로도 조금씩 제품이 나가고 있어 전망은 밝다.

이처럼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임에도 여전히 ‘취미’로 홀대받는 손뜨개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그는 3년 전 ‘손뜨개협회’도 만들었다. 민간 차원에서 실시되는 자격시험을 국가 공인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손뜨개를 직업군으로 인정받아 고용보험 환급 교육과정에도 포함시키기 위해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한다. 그는 이것을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표현했다.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될 때까지 해야죠. 제가 정말 하고 싶은건 기능학교를 만드는 일이에요. 그래서 손뜨개를 산업화하고 싶어요. 특히 불황인 요즘이 저에게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외환위기 때 제가 그랬던 것처럼, 경기가 어려우면 소자본 창업의 길에 나서는 주부들이 많아질 테니까요. 요즘 예비창업자들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재고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요.”

이제 ‘종갓집 종부’보다 ‘블루오션을 개척한 사업가’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송영예 사장.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끊임없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그의 사례는 불황을 이겨 내는 또 하나의 대안이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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