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떠오르는 CEO (33) 쥬민 싸이버러 벤처캐피탈 투자회사 동사장

예순 살에 인생 3막을 연 IT업계 귀재

스무 살에는 농민으로, 마흔 세 살에는 실리콘밸리 창업기업가로, 예순에는 벤처캐피탈 투자가로 변신한 쥬민 동사장은 자신의 삶을 인생 3막으로 비유한다. 신중국 창립 바로 직전인 1948년에 태어난 쥬민 동사장(대표)은 1969년 문화대혁명 시절 ‘농촌에서 배우라’는 마오쩌둥의 구호에 따라 농촌으로 내려가 7년간 농민으로 지냈다. 1977년 대학입시가 부활되었을 때 늦깎이 대학생활을 했고, 졸업 후 농촌 민영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인생 1막을 ‘따뜻한 밥 한 번 배불리 먹기 힘든 고된 시기’로 회상한다.

서른여섯 미국 스탠퍼드대학 유학시절부터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공부를 마치고 ‘the future labs’라는 소프트웨어회사를 창립한 데 이어, webex라는 화상회의 프로그램 IT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IT 업계의 거두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경쟁하기도 했고, 2000년 나스닥에 상장해 IT 버블시기 어려움을 넘겼다. 그는 2002년 〈비즈니스위크〉誌가 선정한 ‘전 세계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혔다. 회사가 승승장구하던 2005년, 그는 중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 2007년 32억 달러에 webex를 시스코에 매각하며 IT업계 최대 규모의 M&A 사례를 기록했다.

그가 꾸려 가는 인생 3막은 이렇다. 2006년 중국에 1억 달러의 운용자금을 보유한 사이버러 벤처캐피탈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10여 개 중국 회사에 투자했다. 중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6년 ‘10대 해외유학파 창업기업가’, 2007년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엔젤투자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벤처캐피탈 투자회사는 전통적인 형태와 조금 다르다. 글로벌 자원과 IT서비스 경험, 자금력을 이용하여 높은 잠재력을 지닌 기업의 경영을 돕고, 기업의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webex 직원들과.
“기업경영과 벤처캐피탈의 중간 성격이라고 할까요? 벤처캐피탈이지만 적극적으로 기업경영에 조언하며 돕고 있습니다.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창업기의 기업보다는 성장기에 있는 기업을 찾습니다. 투자할 회사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예술품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예술품을 보는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삶의 과정을 거치면서 쌓인 연륜이 필요하죠.”

예순이 다 된 나이에 미국에서의 화려한 성공을 뒤로하고 귀국한 이유가 뭘까. 그는 개혁개방 시기 해외에서 유학한 1세대 국비 유학생이다. 그는 “덩샤오핑이 유학생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국비 유학을 보낸 것은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것”이라며 말을 잇는다.

“실제로 유학생의 90%가 돌아오지 않았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바둑에 빗댈 수 있어요. 개혁개방이라는 포석(布石)을 두고 중국시장을 개방하면서, 주요국에 많은 인재를 유학시키는 전진배치형 행마(行馬)를 두는 거죠. 해외 유학생들은 현지 국가와 교량 역할을 하며 그 영향력을 넓게 펼쳐 나갔습니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전략이 성공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죠.”


중국시장은 백지와 같아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죠

2008년 저장대학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여 국제혁신연구원 창립 및 원장 역임.
중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30여 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한 그에게 중국은 낯선 고국이었다. 중국의 시장환경도 생소했을뿐더러 인맥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중국시장의 장점은 크고 진입 문턱이 낮다는 거죠. 중국시장은 한 장의 백지와 같아서 창업한다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그러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모든 밑그림이 그려져 있어 전형적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시장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그 시장을 쪼개서 그 분야에서 넘버원이 되면 나중에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 의료, 교육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중국식 해법을 제시했다.

“모든 일은 때에 이르면 가득 차고 다시 저물기 마련입니다. 한쪽에서는 금융위기가 100년 만에 오는 위기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정부가 4조 위안의 초대형 진작책을 펴는 큰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위기나 기회의 한쪽으로 치달아서는 안 됩니다. 위기와 기회 속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의 전략이 중요합니다.”

2006년 가장 활발한 엔젤투자가로 선정.
요즘 중국에서는 ‘중국 제조(Made in China)’에서 ‘중국 창조(Invented in China)’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동안 저가 노동력의 중국산 OEM의 시대였다면, 중국 자주 브랜드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쥬 동사장은 ‘중국 창조’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 서비스업 시대’를 겪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비스가 없으면 창조도 없습니다. 중국 서비스업 시대는 중국기업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입니다. OEM식의 중국 제조는 그대로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지만, 서비스는 고객의 필요에 따라 혁신과 창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서비스업이 중국을 먹여 살릴 겁니다.”

그는 한국 젊은이에게 애정 어린 충고도 덧붙였다.

“한국인의 뛰어난 창의력과 기술력, 그리고 단결로 똘똘 뭉친 팀워크는 대단해요. 특히 한국의 강점인 IT, 의류 패션 등의 분야에서 방대한 중국시장과 결합한다면 놀라운 시너지를 갖게 될 거라 믿습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인생 3막을 시작하는 그의 꿈은 무엇일까?

“중국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한 곳이죠. 제가 중국인인 건 행운입니다. 이렇게 꿈이 있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다음 작품은 더 나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끊임없이 고뇌와 노력을 거듭하듯 기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더 좋은 기업,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과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가 증명해 주지 않습니까? 《삼국지》의 조운과 황충 장수도 일흔이 넘는 나이에 전쟁터에 나갔어요. 이들에게 행복이란 기력이 있을 때 전쟁터에서 목숨을 다해 싸우는 거죠. 기업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영원히 바래지 않는 꿈에 중독된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나이를 초월한 뜨거운 열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글쓴이 김윤희님은 현재 KOTRA 상하이무역관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통번역 석사를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復旦)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상하이-놀라운 번영을 이끄는 중국의 심장》을 썼다°
  •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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