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32) 나카무라 기이치(中村義一) 미타카코키 주식회사 대표

최고의 망원경´현미경 만들어 낸 장인

“우주의 빛은 모두 돈”이라고 말하는 장인이 있다. 일본 국립천문대에 설치한 천체망원경을 비롯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태양코로나 고해상 관측에 성공한 X선 망원경 등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온 일흔여덟 나카무라 기이치(中村義一) 미타카코키 주식회사 회장. 허름한 모자에 빛바랜 청색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난 나카무라 회장의 첫인상은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다. 그의 모습에서 사원 30여 명에 연매출 25억 엔을 이룩한 수장이자, 특수 관측기와 비접촉 3차원형상계측기, 뇌신경외과수술용 현미경으로 세계를 석권한 장인의 비장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일왕(日王)이 수여하는 산업훈장을 비롯해 정부와 각종 기관으로부터 수상한 상들이 현관, 복도, 회의실 이곳저곳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무슨 상이냐고 묻자, 그는 별것 아니라며 그냥 웃고 만다. “장인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전념하면 돼요. 다른 데 신경 쓰면 정신이 흐트러져요”라며 화제를 바꾼다.

1966년 천체망원경 제조업체로 출발한 미타카코키는 1978년 오로라 관측위성에 관측기기를 탑제하면서 일본 인공위성의 관측기기 단골이 됐다. 1978년에는 NASA의 우주왕복선에 특수모니터 카메라의 채용이 결정된 이래 20년 이상 NASA 로켓관측기기에 채용되어 왔다. 1988년부터는 의료기기업계에 진출해 뇌의 미세한 환부를 보면서 수술할 수 있는 수술용 현미경을 개발했다. 의료기기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미타카코키의 제품들을 슈퍼 닥터들이 애용하면서 한때 북미시장의 70%를 점유하는 히트상품이 됐다.


대졸이 중졸에게 밀리기 십상인 입사시험

우주왕복선에 장착된 관측기 옆에서.
이러한 세계적인 슈퍼 중소기업의 탄생에는 ‘최강의 장인집단’을 육성하는 독창적인 장인교육이 있다. 미타카코키의 사원은 도쿄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에서부터 중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5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대졸자가 중졸자에게 밀리기 십상인 게 미타카코키의 입사시험이다. 그 독특한 입사시험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치러진다. 재미있는 것은 시험문제를 일주일 전에 모두 가르쳐 준다는 것.

오전에는 도화지에 전구를 그리는 시험을 치르는데 심사위원은 청소하는 아주머니다. 아주머니에게 수험생이 그린 그림이 전구로 보이면 일단 합격이다. 가장 중요한 시험은 점심식사 시간에 치러진다. 수험생들을 부근 식당으로 데려가 핏기가 남아 있을 정도로 설익은 생선을 주고는 먹는 방법을 지켜본다. 아무런 반응 없이 묵묵히 먹는 사람이나 잘 발라서 먹는 사람은 거의 불합격이다. 그러나 설익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먹지 않는 사람은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

“장인은 신경질적인 부분이 있어야 해요. 특히 정밀기기를 만드는 장인은 더더욱 민감해야 해요.”

오후 1시부터는 4시까지 3시간 동안 모형비행기를 만들게 하고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는지를 살핀다. 4시부터 5시까지 1시간 동안은 필기시험이다. 문제는 5문제. 삼각함수, AC어댑터 구조 그리기, 망원렌즈와 거리 측정 등 다섯 문제를 풀게 한다. 물론 모든 문제는 응시자 전원에게 일주일 전에 모두 가르쳐 준다. 인력이 부족해도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채용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채용 철학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일을 줄이면 되지요. 아무리 고학력자라 해도 장인으로서 적합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노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3차원 측정기.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간파할 줄 아는 것도 경영자의 자질이요, 장인의 자질이라는 그. 장인에게 필요한 창조력과 지혜를 양성하기 위해 쉽게 기술을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그는 모든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한다. 물리학에서부터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그의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게 놀랍다.

“어렸을 때부터 국립천문대에서 놀고먹고 자랐어요. 천문대 교수님들이 저의 스승이자 놀이 친구였지요.”

그의 성장배경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천문대 건설 당시 주변 농가의 농지를 매입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천문대 주변 주민들은 그의 아버지에게 원한이 깊었고, 가족들만 보면 돌을 던져 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유리창이 깨졌고 오물이 투척되는 날도 있었다. 그는 주민들과 마주치면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가기 바빴다. 왕따가 심해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대신 아버지가 일하던 천문대에서 시간을 때우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천문대는 그의 놀이터가 되었고, 천문대 교수들이 친구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영재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는 17세 되던 해 시계 관리담당으로 천문대에 취직했지만 월급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면을 그려 설계하고 바늘을 다듬어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그때부터 천체망원경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틈틈이 어깨너머로 원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른 살이 된 그는 주위 사람들이 빌려 준 공구를 밑천 삼아 조그만 쪽방에서 공장을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천문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70년대 오일쇼크 때도, 90년대 장기불황 때도 단 한 번도 경영이 흔들린 적이 없다. 그 비결을 물었다.

외과 수술 시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는 현미경.
“편리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만들면 돼요. 편리한 것은 인간의 지혜를 녹슬게 하지만, 필요한 것은 진정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해 준답니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명 장인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사치라는 것을 모른다. 2남2녀의 장남이었던 그는 병약했던 아버지가 30세에 세상을 뜨면서 어머니와 4형제를 부양해야 했다. 기워 입고 붙여 입고, 검은 양복 한 벌로 수십 년을 살아야 했다. 유일한 검은색 양복도 상가에 작업복 입고 가기가 민망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젊음을 보낸 그는 아직도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

“장인도 경영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낸 ‘자린고비 경영철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10이 되는 방정식’과 ‘낚싯대 경영’을 강조한다. 낚싯대는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 그만큼 탄력과 저력을 지닌 경영을 구사한다면 불황을 모르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독창적인 기술과 경영기법을 듣기 위해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중 아시아, 중동, 구미에 이르기까지 해외 손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음 주에는 러시아의 고위관료가 온단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멀리 시코쿠에서 고등학생들이 그를 찾아왔다.

“가장 반가운 손님이 바로 청소년들이에요. 장인의 원석이잖아요. 주위에 좋은 젊은이 있으면 꼭 보내 주세요.”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대 겸임 연구원으로《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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