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한과박물관 ‘한가원’운영하는 한과 명인 김규흔

코르동 블루에서 한과 만드는 법 가르쳐 달래요

“한과의 명맥을 계속 이어가고, 한과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려면 이제 자라는 아이들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한과를 먹여서 이 맛이 입에 배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육과 체험을 겸한 이런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열게 됐습니다.”
산정호수, 이동갈비, 막걸리로 대표되던 경기도 포천에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했다. 2008년 4월, 국내 최초의 한과박물관 ‘한가원’이 문을 연 것. 우리나라에 단 두 명뿐인 한과 명인 중 한 사람인 김규흔 관장이 3년간의 준비 끝에 사재 30억 원을 들여 설립했다.

한가원은 한과의 역사와 유래, 재료, 종류, 제작과정, 제작도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400m²(120평) 규모의 전시관과 다도실, 예절실, 실습실 등을 갖춘 1200m²(360평) 규모의 교육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유과, 약과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신궁전통한과’의 대표로, 박물관장으로 두 가지 일을 맡아 더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규흔 관장은 “박물관은 한과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명인이 된 후 이제는 돈을 버는 일보다 내가 가진 지식을 후세에 전하는 데 주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한과를 찾는 사람은 보통 40대 이후의 중장년층입니다. 어릴 때부터 한과를 먹어 봤거나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라도 봤던 세대이지요. 한과의 명맥을 계속 이어가고, 한과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려면 이제 자라는 아이들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한과를 먹여서 이 맛이 입에 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교육과 체험을 겸한 이런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열게 됐습니다.”

마침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시점이라 한가원은 개관 직후 큰 관심을 모았다. 우리 땅에서 자란 천연 재료들로 일체의 화학첨가물 없이 만드는 한과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전통 음식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한가원의 인기에 한몫했다.


한가원 인근의 고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던 제과제빵 강의를 한과로 바꾸었고, 1기생을 배출한 4개월 코스의 주부 강좌는 벌써부터 “다음 기수는 언제 모집하느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사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과자 하나도 마음 놓고 먹이기 어려운 때 아닙니까. 그런데 어느 교육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과를 만들어 먹이면서 내가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주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제사상에만 올리는 줄 알았던 한과가 이렇게 좋은 간식인 줄 몰랐다는 거죠. 그 말을 듣고 저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아이들이 한과에 맛들이도록 체험 공간 마련

한가원이 한과 대중화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라면 세계화 작업은 이미 오래전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40개국을 돌며 외국 과자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고, 시연도 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한과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프랑스 파리의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방문해 외교관 부인들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과 강의를 하고 돌아왔다. 유과, 약과로 나누어 이틀간 진행한 강의는 120석 좌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참석자는 우리나라 외교관 부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현지인이었다. 그가 만든 한과선물세트를 받은 세계적인 요리학교 ‘코르동 블루’ 관계자들로부터 ‘한과는 음식이 아니라 약(藥)’이라는 극찬도 얻었다.

“그동안 김치, 궁중음식 같은 몇몇 전통음식 강좌가 코르동 블루에서 열리기는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과자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하더군요. 색이 곱고, 우아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곡물로 만든 과자인데다 그 고운 색이 모두 치자, 백련초, 쑥, 녹차 같은 천연성분이라고 하니까 또 한 번 놀라더군요. ‘우리가 한과 강좌를 마련하면 와서 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동안 세계화를 준비하면서 유럽은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현지인의 이런 반응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가 한과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약과 공장을 하던 처가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해 2년 후 독립했다. 직원 한 명을 두고 아내와 함께 한과를 만들어 팔던 시절, 자전거 뒤에 한과를 싣고 재래시장을 돌며 문전박대도 숱하게 받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랜 대형 한과업체들 속에서 기가 죽는 법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주문량에 상관없이 제품의 질과 납품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며 신용을 쌓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는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이 경쟁업체가 아님을, 우수한 전통식품임에도 한과를 외면하는 우리의 현실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그는 ‘늘 새롭게’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지금까지 한과 분야에서 숱한 ‘최초’의 기록을 세운 것도 그 때문. 약과 모양을 지금 같은 형태로 만든 것도, 약과의 낱개 포장을 시작한 것도, 유과를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만들어 과자처럼 포장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한과 공장에 자동화 포장기술을 도입했고, 천연 성분을 개발해 한두 달에 불과하던 유통기간을 연장시켰다.

지난해에는 그가 만든 한과 제품이 처음 청와대 명절 선물로 들어갔고, 아시아, 유럽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 제3회 ASEM 회의 만찬에도 그가 만든 인삼 유과와 꿀 약과가 테이블에 올랐다. 밸런타인데이 때는 초콜릿을 묻힌 한과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입점하게 해 달라고 7년이나 쫓아 다녔던 백화점에서는 이제 먼저 그의 제품을 찾는다. 신궁전통한과에서 소량만 제작하는 ‘명인 김규흔 한과’ 브랜드 제품은 한 세트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이 많은 기록 중에서 그가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것은 바로 처음 시도한 한과박물관 개관.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감행한 일이기에 더욱 애착이 크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그 돈으로 차라리 빌딩이나 하나 사 두고 골프나 치러 다닐 일이지, 무슨 짓이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계속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대로 우리 한과가 서양과자에 밀려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세계화도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고요. 두 아이 모두 공부시켜 제 앞가림을 하게 키웠으니 이제 남은 삶은 국내에 한과 붐을 일으키는 것과 한과를 세계적인 식품으로 발전시키는 데 쓸 생각입니다. 한과 명인으로서 제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고요.”


그는 “한꺼번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강에다 돌을 던지면 파문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이런 시도들이 큰 결실로 돌아올 것”임을 강조했다.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와 가업을 잇겠다며 곁을 지키고 있는 아들 범진 씨와 딸 경미 씨는 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은 가시밭길일 수도 있지만 더 멋있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는 김규흔 명인.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는, 진정한 장인이었다.

사진 : 문지민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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