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부산롯데호텔 양식당 ‘베네치아’ 주임

세계요리올림픽에서 금메달 받은 농부의 아들

세계의 요리 고수들이 모여 진검 승부를 벌이는 세계요리올림픽(IKA갏nternational Culinary Olympics). 세계 최대 요리 경연대회로,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요리올림픽에서 16년 만에 한국인이 금메달을 받았다. 설탕공예 부문 나성주 씨와 서양요리 부문 김봉곤 씨가 금메달을 안은 것. 대회는 요리 종류와 규모에 따라 5개의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김봉곤 씨가 출전한 카테고리 B는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로, 애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디저트 등 코스 요리 아홉 가지를 만들어 제출해야 했다.
“아침 7시에 요리를 세팅해 놓았는데, 12시까지 심사위원 10여 명이 와서 꼼꼼히 살펴보고 갔습니다. 오후 3시쯤 제 부스에 기자들이 몰려오더군요.”

부산롯데호텔 양식당 ‘베네치아’. 김봉곤 씨(38)가 일하는 곳을 찾아갔더니, 금메달 받은 요리 몇 가지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애피타이저는 붉은 참치 타르타르와 킹크랩, 수프는 오렌지를 곁들인 물냉이 크림수프, 메인 요리로 쇠고기 안심과 말린 토마토를 입힌 양고기였다. 참치를 육회처럼 간장, 참기름, 설탕, 달걀노른자로 무치고, 킹크랩은 곱게 찢어 소금, 후추로 간한 후 가토(프랑스 과자) 모양으로 접시 위에 올려놓은 애피타이저. 그 위에 4년근 수삼을 섞은 허브샐러드, 연어알과 상어알(캐비아)을 올렸다. 여기에 곁들인 발사믹 졸임, 고추냉이 소스와 오렌지 한쪽. 양식과 한식, 일식의 재료와 요리법이 총동원된 요리였다.

메인 요리는 양고기에 말린 토마토를 입힌 게 특징. 토마토의 속을 파내고 다진 후 이틀 동안 꼬들꼬들 말리면 달고 향긋한 맛이 나는데, 이게 양고기와 잘 어우러졌다. 세계요리올림픽에서는 요리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재료가 영양 면에서 얼마나 잘 조화되어 있는지, 당장 식당에서 서비스해도 좋을 정도로 실용성이 있는지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데, 그의 요리가 모든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어려서부터 미각과 후각을 단련해 온 서양 요리사들을 그는 어떻게 능가할 수 있었을까? 일찍이 서양요리를 맛볼 기회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전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남 함안 농부의 4형제 중 막내.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은 밭일하시느라 나가고 없고, 집이 비어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밥도 하고 청소도 했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면서 귀찮기보다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의 형님 중 두 명이 요리사. 그때만 해도 요리사가 별로 대우받지 못하던 직업이라, 가족들은 “자동차 정비나 중장비 같은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취직한 곳은 제과점이었다. 그러다 1992년, 양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꿈에 그리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첫발을 뗀 것이다. 그러나 5년 동안은 요리 근처에도 못 가고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만 했다.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인내해야 했다.

쇠고기 안심과 말린 토마토를 입힌 양고기.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겨우 칼을 잡을 수 있었던 그는 1997년, 부산롯데호텔이 문을 열 때 이 호텔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온 길이었다.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 살아 본 적 없는 토종 요리사인 그가 어떻게 그 한계를 극복했을까? 그는 “노력밖에 없었다”며, “요리사의 기본은 부지런함”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요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싶었던 그는 요리대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전국기능인경진대회 요리 부문에 출전해 상을 받았고, 양식뿐 아니라 한식, 일식 조리사와 제과제빵사 자격증까지 딴 후 2004년에는 최고의 요리사에게 수여되는 조리기능장까지 받았다. 보통 40~50대에 도전하는 자리라 그가 최연소였다. 조리기능장이 되기 위해 궁중음식까지 배웠다. 세계 요리 트렌드에 뒤지지 않기 위해 웬만한 요리책은 모조리 사들여 섭렵하고, 영어와 불어로 된 외국 요리잡지까지 받아 보았다고 한다. 동서양 요리법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메뉴이면서 세계 요리올림픽에서 “트렌드를 잘 읽었다”고 평가받은 그만의 요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셈이다.

“제과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유명 요리사들은 디저트까지 직접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양식 요리사와 제과제빵사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어 그렇지 않지요. 제과제빵에서 얻은 노하우가 다른 요리를 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맛과 모양, 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그가 롤모델로 삼은 요리사는 ‘분자요리’의 대가인 스페인의 천재요리사 페란 아르디아. 눈으로는 어떤 맛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른 경험을 안기기 때문이란다. 그의 꿈 역시 ‘새로운 맛과 모양, 향으로 먹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세계요리올림픽에 내놓은 요리 중에는 ‘전복과 햄, 포도로 속을 채운 양상추롤’도 있었다. “어떻게 전복과 햄, 포도같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한꺼번에 쓸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그에게 요리는 새로운 시도와 모험, 놀이같아 보였다. 11명의 요리사들이 포진한 ‘베네치아’의 주방에서 그는 서열 5위의 요리사. 아직은 자신의 메뉴를 내놓을 만한 연차가 되지 않는다.

요리대회는 그에게 ‘내 요리’에 대한 갈증을 푸는 출구였다. 밤 10시, 식당이 문을 닫고 모두 퇴근한 다음에도 그는 주방에 남았다. 새벽 2~3시까지, 혹은 밤을 새며 새로운 메뉴개발에 열중했다. 그렇게 만든 ‘새 요리’들은 롯데호텔 요리사들이 실력을 겨루는 ‘롯데요리경연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8년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에 참가해 애피타이저 부문 동상, 다시 10월에는 세계요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세계 요리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이다. 두 대회 모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것이라,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스스로 마련했다고 한다. 그에게 “왜 그렇게 세계대회에 나가고 싶었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명료했다.

“그건 제 꿈이었습니다.”

(왼쪽부터) 물냉이 수프, 참치와 킹크랩 애피타이저, 디저트.
물론 세계에는 뛰어난 요리사들이 많지만 나도 잘할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요리 본고장에서 인정받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도 금메달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대회. 너무 기뻐 시상식에서 세계조리사연맹 회장을 덥석 안았다고 한다.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다”고 한다.

“자랄 때 항상 ‘누나가 있었으면’ 했는데, 다섯 살 연상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어요. 이것저것 자격증을 딴 것도, 세계요리대회에 출전한 것도 아낌없이 지원해 준 아내 덕이었죠.”

아내는 종종 그를 보고 “당신이 요리사가 되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라고 말한다. 그가 요리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붓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리에 방해가 될까 봐 술, 담배는 아예 배우지도 않았다. 이제 그는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걸까?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면서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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