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떠오르는 CEO (31) 허빈 허신그룹 총경리

3대에 걸친 꿈 이룬 중국 목제완구의 거목

상하이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5시간 가면 ‘민영기업의 집산지’인 저장성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윈허현(縣)이 나온다. 겉으로 보기엔 고요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평범한 농촌 마을이지만, 이곳이 바로 동화의 나라를 만드는 ‘목제완구의 고향’이다. 30여 년 전 목제완구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곳에는 현재 목제완구 기업이 700여 개, 여기에 종사하는 마을인구는 2만 명에 이른다. 중국 목제완구 전체 생산량의 70%, 전 세계 생산량의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 성과는 바로 ‘목제완구의 창시자’로 불리는 허신그룹의 창립자인 허빈 총경리의 조부로부터 시작됐다. 급성장한 중국 대부분의 신생기업과는 달리, 허신그룹은 30여 년간 3대째 경영을 이어온 개혁개방의 산증인이다.

올해 서른 살의 젊은 CEO 허빈 총경리는 목제완구의 역사와 함께했다. 그는 “30여 년간 빛나는 영광과 혹독한 아픔도 있었지요”라며 3대에 걸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1973년 허 총경리 조부가 회사를 창립하면서 윈허현은 목제완구 마을로 태어났다. 1980년 부친이 회사를 이어받아 목제완구에 공예와 기술적인 요소를 추가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연해 도시 발전과 수출장려책에 힘입어 1995년 광둥성 선전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일개 농촌기업이 낯선 대도시로 이전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어요. 아버지는 내륙의 작은 마을을 떠나 선전에서 직접 해외 바이어를 찾고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죠.”

창립자인 허 총경리의 조부.
허 총경리도 그때 아버지를 따라 선전에 갔다. 공장 이전 후 주문량도 늘고 회사 순익도 쑥쑥 올라갔지만 계속 순조롭지는 않았다. 선전의 수출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 1997년 허신그룹은 200만 위안의 수출대금 체불로 공인들 월급도 주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허 총경리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는 치명타였죠. 아버지가 자금을 모으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뜻대로 안 됐어요. 며칠 사이 머리칼이 하얗게 센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아무리 매출이 높고 실적이 좋아도 그 당시 기억을 일부러 들춰내며 정신을 바짝 차리죠.”

결국 선전 공장 문을 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친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그 도전정신은 허 총경리의 핏속에 진하게 남아 있다. 1998년 허 총경리는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을 내다보고 인터넷 마케팅에 매달렸다. 1999년 중국 최대 B2B 사이트 알리바바가 생기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 바이어를 발굴하면서 매출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회사 경영환경이 여전히 어렵던 2003년, 그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경영을 맡았다. 2004년 인터넷 비즈니스가 회사 업무의 95%에 달했고, 브랜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4년 10월, 대표적인 가전기업 Galanz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10대 e-business 기업가 상’을 획득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계에 혜성처럼 떠올랐다. 2005년에도 연이어 10대 e-business 기업가 상과 최고 혁신상을 휩쓸었다. 2005년 중국 10대 목제완구 제품상, 2007년 우수 디자인상, 2007~08년 중국 100대 완구기업, 2007~08년 완구 걸출 기업가로 선정됐다. 2003년 600만 위안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2008년 8000만 위안에 달할 예정이다. 중국 목제완구 시장의 시장점유율은 60%로 1위다.

(왼쪽부터) 2006 중국최고완구상, 2005년 중국최고완구상, 올림픽 유도완구혁신금상을 수상한 완구들.
어렸을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고 한다. 완구 제작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나중에 철이 들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목제완구를 깊이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 목제완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단다. 허 총경리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오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브랜드 확보다.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해 하루살이로 버텨 가는 타성에 젖다 보면 ‘OEM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요.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렵습니다.”

(왼쪽부터) CCTV 프로그램 협찬과 매장 모습.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성공에 이를 것

그는 과감한 투자를 했고, 그 결과 집중적으로 준비해 온 ‘무완스자’ 브랜드가 중국 내 목제완구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요즘 허 총경리는 회사일 외에도 ‘목제완구 클럽’을 만들어 애지중지 꾸려 가고 있다. ‘목제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동종 업계 CEO들이 함께 모여 기술과 정보를 교류하는 장이다. 2004년 창립된 이 클럽은 현재 회원사가 50여 개에 이른다. 모임에서 정보를 얻어 비용을 낮추고 신기술을 응용하는 등 성공사례가 나오며 질적인 성장도 함께 뒤따랐다.

e-biz 10대 기업가 상 수상.
“모임의 구심점은 함께 성장하는 ‘포용의 팀워크’입니다. 청년 기업가들이 포용의 팀워크 정신으로 회사와 업종을 통합된 유기체로 만들어 내는 게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올 들어 중국 내 노동집약업종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대표적인 사양업종인 완구업종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허 총경리는 위기를 기회로 본다.

“2년 내에 절반이 도산하고, 2012년에는 많아 봤자 40% 정도만 남을 거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물론 큰 위기죠. 그렇지만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경쟁력 있는 기업에게 곱절 이상의 성장 기회를 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올해부터 이미 해외 주문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고, OEM은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현금 흐름을 유지하고 과도한 확장은 가능한 줄이며 내수시장을 적극 활용하려고 합니다.”

허빈 총경리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브랜드 확보’를 통해 전통 사양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며 ‘Made In China’를 뛰어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저는 다른 저장 상인들처럼 세심하고 치밀하지 못해요. 오히려 북방사람들처럼 호방한 편이죠. 제게 없는 부분을 찾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제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려고 해요. 성공이요? 그저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지켜 나간다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김윤희님은 현재 KOTRA 상하이무역관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통번역 석사를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復旦)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상하이-놀라운 번영을 이끄는 중국의 심장》을 썼다°
  •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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