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스윙악기 대표

록밴드 기타리스트에서 기타 제조업자로

“한국의 악기들이 외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아시나요? 질 낮고, 서비스도 엉망인 싸구려입니다. 스윙은 명품 이미지로 승부할 것입니다. 제가 못하면 뒤를 이어 스윙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꿈을 꼭 이룰 겁니다.”
유럽과 일본에 수출하는 기타를 만드는 스윙악기 김태영(42) 대표의 각오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서울역과 파주를 잇는 통근열차가 멈춰 서는 월롱역. 다시 차로 10여 분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면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파주 월롱공단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공단의 끝자락에 한국 기타의 자존심 스윙악기가 자리 잡고 있다.

김태영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타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기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열여섯 살 때. 자전거에 라디오를 매단 채 음악을 들으며 등교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라디오를 들고 갈 만큼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레드 제플린의 ‘Since I’ve Been Loving You’ 중 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애드리브 기타 연주에 충격을 받았다.

“‘와, 이런 기타 연주도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어요. 이때까지 듣던 포크송의 통기타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바로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죠. 그때만 해도 레코드 가게에서 공 테이프에 손님이 원하는 음악을 녹음해 줬거든요. 주인아저씨한테 레드 제플린의 ‘씬스아이브빈러빙유 녹음해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가 저를 훑어보고는 ‘너 기타 치냐’하고 묻더군요. 얼떨결에 ‘네’ 했어요. 주인아저씨가 기타 연습하는 데 좋은 곡이라며 ‘하이웨이스타’ 등 몇 곡을 더 녹음해 줬어요. 그때부터 그것만 듣고 다녔죠.”

강렬한 기타 연주는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고,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처럼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기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명동칼국수로 달려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5만 원을 모았어요. 그걸 들고 낙원상가에 가서 전자기타를 샀죠. 그 후 밤이고 낮이고 기타만 쳤어요. 기타를 칠 때면 완전히 몰입하는데, 침도 흘리고, 머리도 흔들고, 표정도 묘해지죠. 동생이 이걸 보고 부모님한테 ‘형이 미쳤다’며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어요.”

Zero-G 시절의 김태영 (왼쪽에서 첫번째)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그는 친구들과 ‘Zero-G’라는 헤비메탈 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꽤 잘나갔어요. 진짜 어릴 때부터 꿈꾸던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이 된 듯했죠. 당시 인기 있는 밴드가 백두산, 시나위, 블랙 신드롬 정도였는데 우리도 그 밴드들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어요. 당시는 밴드나 가수들이 음반을 낼 때 계약금이나 개런티 없이 첫 음반을 내 보고 잘되면 다음 음반부터 돈을 받는 게 관행이었는데, 우리 밴드는 첫 음반부터 당시로선 파격적인 1500만 원을 받고 음반을 제작했을 정도니까요.”

그의 밴드는 3장의 정규앨범과 5장의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며 록음악계에서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스물일곱에 결혼을 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일이 있을 때는 목돈을 쥐지만 일이 없으면 백수가 되는 불안정한 생활로는 가족을 돌볼 수 없었다.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일이 필요했다. 그는 “그때서야 처음 현실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악기 유통회사에 취직했다.

“1995년인가 회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뮤직메세’라는 악기쇼에 보내 줬어요. 말로만 듣던 유명한 악기들을 처음으로 보았지요. 제가 밴드 시절부터 기타를 새로 만들다시피 완전히 개조해서 사용했었거든요. 뭘 몰라서 그랬는지 ‘나도 저 정도는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기타 만들 궁리만 했죠.”


손쉬운 OEM 제작 대신 우리 브랜드로 세계시장 뚫겠다

(위) 스윙기타를 사용하는 제프 왓슨과 함께한 김태영. (아래) 스윙기타를 든 이승철.
2001년, 그는 세계 수준의 기타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스윙악기를 설립했다.

“덜컥 회사는 열었는데 돈이 없었어요. 공장에 기타를 만들 기계조차 갖춰 놓을 수 없었지요. 기타제조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조건으로 남의 공장에서 기계를 빌려 처음 기타를 만들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일석이조였어요. 몇 마디 가르쳐 주면서 공짜로 기계를 빌려 쓸 수 있었고, 회계나 인력관리 같은 회사와 공장 운영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만든 기타를 시장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기타를 판 돈이 모이는 대로 하나 둘 기계를 주문했습니다. 그게 여기 있는 이 기계들입니다. ”

록밴드 기타주자 시절 헤비메탈의 강렬함과 블루스의 끈적끈적함을 동시에 소화하는 연주자라고 평가받던 김태영.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가 만든 스윙의 전자기타들은 빠른 연주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강렬한 음과 함께 끈적끈적한 여운이 남는 울림으로 뮤지션들 사이에 정평이 났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여덟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주로 유명한 나이트레인저의 제프 왓슨(Jeff Watson),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 신대철, 나비효과 김바다, 블루스의 대가 타미 김, 이승철과 박창곤까지 록과 블루스계의 내로라하는 기타리스트들은 스윙의 전자기타와 함께 무대에 섰다.

공장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들어서자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뮤직메세’, 미국 애너하임의 ‘남쇼’, 상하이 ‘뮤직 차이나’ 등 세계 악기 박람회를 찾아다니며 스윙기타를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OEM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우리 브랜드로 기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스윙’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게 절박했지요. 2002년부터 박람회에 참가했는데, 3년 정도는 뮤지션들이 우리 기타를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바이어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럽 쪽에서 우리 기타의 수준을 인정하고 있어요. 우리가 300달러에 넘긴 기타를 유럽 바이어들은 몇 배씩 붙여 1000유로에 판매하더군요.”

이제 미국 시장을 뚫는 게 가장 큰 과제. 미국 시장에 들어가 ‘깁슨’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하면서 세계 뮤지션들로부터 인정받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친한 외국 바이어들은 우선 미국에 진출하고 봐야 한다며 조언하기도 한다.

“보통 한국 기타는 세계시장에서 50~60달러에 팔리는데, 스윙은 200~600달러씩 받습니다. 친한 바이어들은 미국 시장에 들어가려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충고해요. ‘메이드인코리아’ 기타는 비싸면 사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인건비와 재료비를 줄여 원가를 낮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타를 만드는 장인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반제품을 들여와 조립만 해서 팔라는 바이어도 있는데,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뮤지션 출신 아닙니까?”

한국 기타에 대해 ‘싸니까 산다’는 인식이 굳은 바이어들은 “100달러만 넘게 불러도 ‘왜 메이드인코리아가 100달러냐?’고 되묻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상황에도 ‘스윙기타’라는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를 묻자 “후배 뮤지션들과 세계 팬들에게 한국 기타로 만든 한국 음악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서양 악기인 기타의 선율 속엔 록이든 블루스든 끈적끈적한 한국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그 무언가는 결국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 수밖에 없죠. 제가 그 작업을 하는 겁니다.”

그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1902년에 시작한 깁슨이 제값을 인정받는 데 30년이 필요했다”고 한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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