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속 우승으로 주목받는 프로골퍼 서희경

오랜 징크스 깼으니 이제 한 단계씩 성장할게요

“한 번이라도 우승하는 게 절실했습니다. 조바심을 안 냈다면 거짓말이겠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우승한 선수에게만 쏠리는데, 당연히 저도 그런 관심을 받고 싶었죠.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맘처럼 안 되니 시합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172cm 늘씬한 키에 앳된 듯 청순한 외모. 덕분에 골퍼와 팬들 사이 ‘필드 위의 슈퍼모델’이란 별칭이 따라붙던 서희경(22) 선수가 한국 여자프로골프사(史)를 뒤흔드는 사고를 쳤다. 8월 30일 하이원컵SBS채리티여자오픈, 9월 7일 KB국민은행스타투어 3차대회, 9월 13일 빈하이오픈까지 3주 동안 세 대회 연속 우승을 이뤄 냈다. 지금은 한국 여자골프의 상징이 된 박세리와 김미현이 1996년과 1997년 기록한 이후 11년 만에 재현된 기록이다. 그녀가 이런 기록을 세우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9월 29일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프로 데뷔 후 무관의 설움을 한 번에 날려 버린 서희경을 만났다. 연신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며 질문 하나하나에 차분하고 분명한 말투로 깊은 생각을 담아 대답하는 그녀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우승 소감을 묻자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신기하다”는 그녀.

“한 번이라도 우승하는 게 절실했습니다. 조바심을 안 냈다면 거짓말이겠죠. 프로는 아마추어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예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우승한 선수에게만 쏠리는데, 당연히 저도 그런 관심을 받고 싶었죠.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맘처럼 안 되니 시합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9월 13일 빈하이오픈 우승 후.
2006년부터 시작한 프로골퍼 생활.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기에 그녀의 프로 전향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런 관심과 기대의 무게 때문인지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우승을 못 하고 언제나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게임이 더 안 풀렸어요. 1, 2라운드에서 순위권에 있다가도 3라운드에서 무너졌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마지막 라운드 징크스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녀의 ‘마지막 라운드 징크스’는 뭘까?

“2003년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 선발전 성격의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가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 1, 2라운드까지 1위였어요. 근데 대표선수가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지막 라운드를 망쳤어요. 1위는커녕 순위권에도 못 들었죠. 당연히 국가대표에서 탈락했고, 그동안 쌓아 놓은 성적으로 상비군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주위에서 ‘서희경은 마지막 날만 되면 게임이 안돼’라는 말을 하더군요.”

정말 이 징크스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모든 대회의 성적을 종합한 주니어 랭킹에선 1위였지만 정작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추어를 떠나 프로로 전향하며 징크스는 더 지독하게 이어졌다. 2006년 휘닉스파크클래식. 사람들의 시선은 미래 한국 여자골프의 주인공이라 믿었던 주니어 랭킹 1위 서희경의 첫 경기에 집중됐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가 프로 데뷔전을 했던 휘닉스파크네요. 첫 대회라 떨리긴 했는데 컷오프(예선탈락)였어요. 예선통과는 당연하고 중ㆍ상위권 이상이라고 평가받았는데 어이없었죠. 제가 예선탈락할 거라곤 저나 다른 골퍼들, 대회 관계자까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죠. 솔직히 말하면 1라운드 첫 파4홀 티샷 후부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스스로 게임을 포기해 버린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에 너무 짜증나고 실망스러웠습니다.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먼저 2승한 홍란 선수가 자신의 우승 재킷 입혀 준 후 저도 우승했죠

8월 30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컵SBS채리티여자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이후 지독한 징크스에 시달리던 그녀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우승 레이스를 벌인 것이다.

“첫 우승을 한 하이원컵대회 직전에 고등학교 동창이자 프로동기인 친구 홍란(22)이의 우승 재킷을 입어 봤어요. 홍란이는 올해 저보다 먼저 2승을 했어요. 홍란이가 자기도 우승 직전에 바로 앞 대회 우승자인 김보경 선수의 우승 재킷을 입었다면서 자신의 우승 재킷을 입혀 줬어요. 근데 진짜 제가 우승하더라고요.”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하이원컵 마지막 3라운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를 넘어뜨린 마지막 라운드 징크스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계속 선두였는데도 불안했어요. 13번, 14번 홀이 지나도록 자신 없었죠.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는 순간 ‘진짜 우승이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18번 마지막 홀이 끝나자 저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게 되더라고요.”

이후 그녀의 상승세는 거침없었다. 두 번째 우승이던 KB스타투어에선 2라운드까지 1등이었다가 3라운드 초반 2위로 내려앉으며 마지막 라운드 징크스를 재현하는 듯했지만 이내 역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빈하이오픈에서는 공동 2위이던 중국의 양타오리와 영국의 다니엘 몽고메리를 무려 5타 차로 따돌리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달리기도 잘했다. 한때는 육상도 했고, 수영선수 생활도 했다. 중학교 땐 체육 선생님이 필드하키선수를 권했을 정도였다.

“제가 중학교 때 달리기하는 모습을 보고 체육 선생님이 필드하키를 권했어요. 그때 ‘네’ 했으면 하키선수가 됐을지도 모르죠(하하하).”

골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초등학교 때 잠깐 수영선수를 했는데 중이염에 걸려서 못 하게 됐죠. 운동을 좋아해서 아버지가 하시는 운동은 거의 다 따라다녔는데 그중 골프가 있었습니다. 1년 정도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을 다녔는데, 절 유심히 보시던 한 코치가 ‘너 골프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선수 등록하고 어린이 대회에 참여하면서 제 골프 인생이 시작된 거죠.”

초등학교 때 시작된 그녀의 골프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중학교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는데, 자존심 때문에 뭐든 다 잘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사춘기 시절에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걸 참기 힘들었죠. 결국 골프를 그만뒀었어요.”

그러나 그녀는 골프를 중단한 지 1년 만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는 골프에만 전념했고, 주니어 랭킹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1, 2학년 때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면 참 어색했어요. 같은 반이지만 친구들도 낯설고, 공부도 낯설었습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죠.”

그녀에게 “3연승이라는 대기록도 만들었으니 이제 미국으로 진출하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아직 전혀 계획이 없어요. 너무 많이 부족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도 최고가 아닌데 어떻게 최고들만 모인 곳에서 제 자리를 만들 수 있겠어요? 골프 실력뿐 아니라 문화, 언어의 적응도 필요하죠. 이런 준비 없이 진출하면 부작용만 생긴다고 생각해요. 전 한국에서 상금왕과 대상(大賞)을 받은 후 일본에 갈 거고, 그곳에서 최고가 되면 미국으로 갈 생각이에요.”

두 딸의 어머니이자 LPGA 명예의전당 회원으로 가정과 골프 두 마리 토끼를 품에 안은 줄리 잉스터를 가장 존경한다는 서희경. 그녀는 줄리 잉스터처럼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인생을 차근차근 완성해 가는 삶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인터뷰 내내 필드 위 슈퍼모델이라는 화려함보다는 깊고 순수한 내면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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