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지 수지스(Suji’s) 사장

‘뉴욕 밥집’을 세계적인 레스토랑 체인으로 만들 거예요

저는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뉴욕의 요리학교로 또다시 공부하러 떠납니다. 레스토랑 매니지먼트, 요리, 와인을 두루 배우려고요. 돌아온 후에는 싱가포르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에요.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한 뒤 유럽에도 진출해 수지스를 세계적인 레스토랑으로 키우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전문직 싱글 여성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붐이 일고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 중 일본으로 진출해 큰 인기를 누리는 곳이 있다. 4년 전 이태원에 처음 문을 연 ‘수지스(Suji’s)’. 뉴욕에서 커리어우먼으로 활약했던 박수지 씨가 한국에 돌아와 ‘뉴욕 스타일의 정통 아메리칸 홈메이드 메뉴’를 표방하며 만든 음식점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재창조한 요리가 아닌, 미국인들이 어릴 때부터 먹어 온 가정음식을 그 방식 그대로 만들어 내놓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코엑스, 분당에 분점을 내고, 지난해 일본 도쿄에도 진출했다.

박수지 사장은 뉴욕에서 10년간 생활하며 패션 마케터, 국제회의 전문가 등으로 활동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에게 ‘뉴욕 밥집’을 차려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묻자 ‘시장을 정확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일한 직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사무실이었거든요. 외신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게 제 업무였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 얘기가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족들과 편안하게 식사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점을 찾는 것과 같은 심리죠. 저 역시 미국에서 먹었던 음식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는데 그런 맛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그는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미국인과 미국 생활 경험이 있는 한국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매장을 외국인이 많이 다니는 이태원에 낸 것도, 메뉴나 서비스를 외국인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업의 얼개를 짠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라면 하나도 제대로 끓일 줄 몰랐던 그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푸드 채널’을 시청하며 가정식 메뉴들의 조리법을 익혔다. 어느 업종이든 사장이 기술을 모르면 제대로 된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음식에 대한 감이 잡히자 한국으로 돌아왔고, 계획대로 이태원에 매장을 열었다.

새로 문 연 수지스 분당점.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수지스는 오픈과 함께 순식간에 입소문이 났고, 작은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외국인 고객들이 즐겨 찾는 수지스의 대표 메뉴는 ‘미트 로프(meat loaf)’와 오믈렛. 미국인에게는 우리의 된장찌개만큼이나 익숙한 음식이다. ‘가정식 음식’이다 보니 집에서 조리한 것 같은 손맛을 내는 것이 포인트. 신선한 재료를 기본으로 소스들까지 직접 만들어 낼 정도로 정성을 다한다.

우리 나이로 서른여덟. 그는 나이에 비해 매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선화예고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고 중앙대 국악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전도유망한 국악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가진 해외공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부모님께 ‘유학 가겠다’고 선언했다.

“국악 전공하는 애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이에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도 여자가 집안일을 많이 해 버릇하면 커서도 그렇게 된다며 설거지며 빨래, 청소 이런 것들을 통 못 하게 하실 정도로 ‘일하는 여성’이 되기를 원하셨거든요. 그래서 쉽게 떠날 수 있었지요.”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어학연수였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뉴욕생활은 ‘맞춤’이었다. 6개월 만에 랭귀지 스쿨을 졸업했고 세계적인 패션스쿨 FIT에 곧바로 입학해 또 한 번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 땅에서 동양 여자가 비교적 차별을 덜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 고민하다 패션 마케팅을 선택했어요. 그러려면 FIT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겠는데 토플시험 성적도 없고, 패션전공자가 아니니 포트폴리오도 없는 거예요. 무조건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신청했죠. 하도 끈질기게 얘기하니까 담당자가 한번 와 보라고 하더라고요.”


뉴욕에서 패션 마케터, 국제회의 전문가로 활동하던 커리어우먼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짐을 꾸렸다. ‘정말 이 곳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높이 산 학교 측에서 조건부 입학을 허락했고, 6개월 뒤 정식 학생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잠시 패션 마케팅 분야에 몸담기도 했지만 겉치레를 중시하는 패션계에 실망해 다시 전업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국제회의 쪽을 택해 국제회의 전문가 과정 자격증을 땄다. 미국 회사에 취업해 우리나라 정부나 대기업들이 뉴욕에서 치르는 이벤트, 컨퍼런스 같은 굵직한 행사들을 도맡아 진행했다. 1999년 말, 벤처 붐이 한창이던 때는 한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IT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수지스의 대표 메뉴인 미트 로프와 파스타.
“실리콘밸리에서 기술을 가져왔는데 우리나라에는 시기상조인 아이템이었어요. 결국 2년 반 만에 사업을 접었죠. 남의 돈을 투자받아 사업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작더라도 내 힘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어찌 보면 그게 수지스를 만들게 된 계기예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희열을 느낀다는 그는 지난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내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으로 날아간 것. 아시아 금융, 경제의 중심지로 통하는 도쿄에서 성공해야 진짜 성공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타깃은 국내 매장과 동일했다. 새로운 방식인 수지스의 메뉴는 일본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고, CNN에도 소개되었다. 전 세계 베스트 오브 베스트 브런치 메뉴에도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일본 매장을 오픈한 뒤 1년 반 동안은 주로 일본에 있었어요. 오픈 초기에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 짬짬이 일본어도 공부하고, 정말 정신없었지요. 저희 매장이 도쿄타워 가는 길목에 있거든요. 관광객이 도쿄에 오면 꼭 들르는 코스가 됐습니다. 그런데 한국 관광객 중에 ‘한국에 있는 수지스가 일본 것을 똑같이 베꼈다’, ‘일본점이 본점이고 이태원점이 분점이었구나’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도 이게 서울에서 시작된 매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분당점의 주방장 토마스 씨와.
최근에는 서울에 머물며 새롭게 문을 연 분당점을 안정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 매장은 동생인 박성빈 이사가 총괄하고 있지만 초창기라 매장에 상주하면서 고객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추어져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크게 줄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뉴욕의 요리학교로 또다시 공부하러 떠납니다. 레스토랑 매니지먼트, 요리, 와인을 두루 배우려고요. 돌아온 후에는 싱가포르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에요.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한 뒤 유럽에도 진출해 수지스를 세계적인 레스토랑으로 키우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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