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 호두파이’ 만든 김이경 씨

최고의 맛을 찾아 실험 거듭한 게 인기 비결

호텔이나 유명 제과점을 제치고 “호두파이 중 단연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 있다. “친구들끼리 모일 때 그 호두파이만 가져가면 인기”, “달지 않아 자꾸 손이 간다”는 명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도대체 호두파이를 어떻게 만들기에….’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양상가에 있는 ‘삼순이 호두파이’ 본점을 찾아갔다. 상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단골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위치였다. 유리벽에 ‘SAMSUNI’라는 상호가 붙어 있고, 가정용 오븐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삼순이’ 김이경 씨와 그의 남편 장진갑 씨를 만났다. ‘삼순이’는 놀랍게도 제과제빵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고 했다. 순전히 자신의 미각만 믿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모두가 인정하는 호두파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빵이나 과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따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리저리 자유분방하게 실험해 볼 수 있었어요. 다른 곳에서 저희 파이를 가져가 그대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선입견이 굳어 있어 그 틀을 깰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삼순이 호두파이 맛의 비결은 ‘삼순이’와 남편만의 비밀. 두 사람은 노하우 중 몇 가지만 공개했다.

“보통 호두파이는 도(껍질)가 두꺼워 맛이 없죠. 그걸 어떻게 파삭파삭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어요. 반죽을 손으로 최대한 얇게 밀고, 가정용 오븐에서 2시간 30분 동안 위치를 바꿔 가며 굽습니다. 오븐 온도는 20분마다 조절하지요.”

보통 40~50분 굽는 것에 비하면 굽는 시간이 무척 길다. 오븐의 온도 조절은 그날그날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한다. 도시가스로 공급되는 화력이 날마다 달라 조금씩 조절해야 한다고. 반죽에는 현미가루와 검은깨 분말을 넣어 부드럽고 아삭아삭한 맛을 더했다. 녹차가루를 넣으면 담백하다. 통 호두를 빽빽하게 올리고, 속을 촉촉하고 달지 않게 만드는 것이 삼순이 호두파이의 특징. 삼순이는 설탕이나 첨가제, 광택제를 넣지 않는다고 했다. “설탕 대신 무엇으로 단맛을 내느냐?”고 묻자 “영업 비밀”이라며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삼순이 호두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호두파이를 굽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1월 11일부터. 처음에는 이렇게 잘 팔릴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게 2006년이었으니 그가 원조 삼순이인 셈이다.

“집 가까운 곳에 나만의 공간을 하나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아파트 상가 한쪽을 빌렸어요. 집에서 쓰던 오븐과 냉장고를 갖다 놓고, 작업대를 맞추고 수도, 가스 등을 설치하니 90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인 자리였는데, 돈을 못 벌어도 ‘나한테 이만큼은 투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배짱이었죠.”

이화여대 성악과를 나온 그는 7년 동안 국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했었다. 가게 벽에 그가 좋아하는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의 사진을 붙여 놓고, 칼라스 노래를 틀면서 노래 공부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47세, 아이들을 웬만큼 키워 놓은 다음이었다. 첫날에는 호두파이 10판을 구워 7판 반을 팔았다. 내가 만든 걸 누군가 돈을 내고 사 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런데 팔리는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거래처에 선물하겠다”며 다음날 아침까지 만들어 달라고 88박스를 한꺼번에 주문해 밤을 새워 만들기도 했다. 한창 일에 몰두할 때는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잊었다.

숫자 ‘3’이 쓰인 삼순이가 쓰는 밀대. 반죽을 최대한 얇게 밀어 오랜 시간 굽는 게 맛의 비결.
사람들이 쉽게 찾을 만한 위치에 있는 가게도 아닌데,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냈다. 삼순이 호두파이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죽전점에도 들어가 있다. 다른 백화점에서도 입점해 달라는 제의가 많지만, 공급을 댈 수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와 택배로도 배달한다.

호두파이 하나로 이렇게 인기를 끄는 비결이 뭘까? 삼순이는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해 왔기 때문 아닐까요?”라고 한다. 가게를 낸 다음에도 2년간은 실험을 거듭해 지금의 맛을 찾았다. 옆에 있던 남편 장진갑 씨는 “매 순간순간 목숨 걸고 사는 사람이니 끝장을 볼 줄 알았다”고 말한다.


뭘 해도 끝장을 보는 성격

서울예고를 나와 대학 성악과에 진학할 때도,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합창단 단원이 된 후에도 그는 정말 그 순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노래 없이는 못살 것 같았는데, 가정주부가 되고 나서는 살림이나 아이들 키우는 일에 또 목숨을 걸었다. 뜨개질이든 요리든 정말 열심히 했다.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실험을 해 일주일 내내 같은 반찬을 먹을 때도 많았다”고 남편이 거든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게 최고”라며 김밥이나 떡볶이, 김치찌개 장사를 하면 잘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유학 보낸 다음에는 골프에 빠졌다. 미친 듯이 연습해 싱글, 홀인원을 하더니 프로선수 수준인 70타 대를 치겠다며 달려들었다. 그러다 무리해 인대와 엘보를 다쳤고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한의원을 전전해야 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면서 우울증에 빠졌던 그의 인생에 전환기가 온 것은 2003년 1월 동네 동사무소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였다. 컴퓨터 선생님이 준 과제로 만든 게 ‘삼순이 빵집’. 마침 동네 서점에서 《빵 만드는 기초》라는 책을 사서 빵과 파이를 만들어 보던 터였다. 자신이 만든 빵을 꽃 돼지가 들고 배달하는 상상 속의 빵집을 컴퓨터 화면으로 만들였다. 1남3녀 중 셋째 딸인 그의 별명이 삼순이였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남편이나 저나 대학 시절에 먹었던 조선호텔 호두파이에 대한 추억이 있었어요. 그때는 참 맛있었는데, 맛이 변했더라고요. 그 맛을 찾아 실험을 거듭했죠. 책에 나온 대로 만드니 너무 달고 맛이 없더라고요.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계속 새로운 방법으로 구웠어요.”

이렇게 만든 호두파이를 남편이 거래처에 들고 가면 “맛있다”며 반응이 좋았다. 이에 용기를 얻어 호두파이 가게를 낸 것인데, 남편은 “이 사람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한다. “잘되지 않으면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니까요. 난 삼순이를 믿었지요”라며. 처음에는 남편이 퇴근 후 배달을 도와 “멋진 양복을 입은 신사가 배달을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호두파이 가게가 날로 번창하자 남편은 자신의 일을 접고 아내를 돕기로 했다.

‘삼순이’가 질 좋고 맛있는 호두파이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면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온 남편은 사업전략을 짠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비싼 재료를 쓰는 데다 공을 많이 들여 만드니 가격을 높이자고 하면 “내 호두파이는 누구나 쉽게 사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좋은 것을 많이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이 묻어 있다. 돈을 벌어서 좋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파이를 먹어 봅니까?”라고 인사할 때는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에게 연매출에 대해 물으니 “우리도 회계사에게 물어봐야겠는데요”라며 입을 다문다. 한 판에 백화점 가격으로 1만8000원인 호두파이가 하루 수백 개씩 팔리니 어림짐작해도 수억 원대 연봉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가게 문을 연 후 이제까지 쉰 날이 사흘밖에 안 될 정도로 몸도 고달팠다고. 명절 때 재료가 떨어져 “이 김에 쉬어 보자”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 이들은 “이제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함께 사업구상을 한다.

전날 저녁 삼순이가 만든 오징어볶음을 먹으며 “나 혼자 먹기는 정말 아깝다”며 감탄하던 남편은 “삼순이가 만든 갖가지 음식을 파는 삼순이타워를 만들까?”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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