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광고제 ‘영 라이언 컴피티션’ 은상 수상 제일기획 신석진 씨

4개월 차 신입사원 칸 광고제에서 일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위한 다음 단계는 망각”
“주제에 너무 몰입하면 생각이 묶여요.
대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되, 그 다음엔 잊어버려요.
그리고 탁 트인 공간에 나가 자유롭게 생각하는 거죠.”
6월 17일 오전 9시, 프랑스 칸에서 열린 ‘영 라이언 컴피티션’ 대회 사이버 부문 수상자 발표장.

“은상은…, 스크롤바를 이용해 심플하게 풀어낸 코.리.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대회 수상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수상자는 제일기획 입사 4개월 차 신입사원 신석진 씨(28세)와 한림대학교 광고홍보전공 4학년 최중식 씨(26세). 전 세계 44개국이 참가해 경합을 벌이는 세계 최대, 최고의 국제광고제인 칸 국제광고제에서 이룬 쾌거였다. 둘은 서로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광고를 만들던 24시간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신석진 씨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제일기획 본사 2층 ‘아이디어 스파’에서 만났다. 직원들을 위한 휴식 공간인 아이디어 스파는 놀이터 같았다. 벽면에는 온갖 종류의 만화책이 즐비하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소파와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알록달록한 대형 쿠션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각종 초콜릿과 쿠키가 바구니에 한 가득 담겨 있고, 냉장고엔 시원한 음료수가 꽉 차 있다. 신석진 씨에게 대회 당일 현장을 중계해 달라고 했다. 그는 캠코더로 직접 찍어 온 대회 현장을 노트북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씨의 설명으로 현장을 재현해 본다.

두 사람은 6월 15일 오전, 한글서체로 ‘내 사랑 내 겨레’라고 쓰인 티셔츠를 나란히 입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대표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사동에서 구입한 티셔츠였다. 신씨는 광고업계의 추천으로, 최씨는 2008 한국방송광고공사 주최 광고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한국대표 출전 티켓을 따냈다. 국가 대표팀으로 발탁된 이들은 수시로 만나 예상문제를 만들어 실전 대비 연습을 했다. 현장에서 준 주제로 24시간 안에 인터넷 배너 광고를 만들어 내야 하는 대회. 창의력과 순발력, 팀워크가 핵심인 이 대회에서 이들은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대회 당일을 맞았다.

다음 날 오후 6시, 주제가 발표됐다. 주제는 ‘유니세프 Tap Project’.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1달러를 기부하자는 캠페인이다. 신석진 씨는 놀랐다. 예상문제 중 하나였기 때문. 하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둘은 저녁식사로 샌드위치를 하나씩 들고 호텔방으로 갔다. 두 시간 동안 회의를 거쳐 키워드 세 개를 뽑아 냈다. ‘심플, 파워풀, 솔루션’.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어야 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대원칙이었다. 호텔방에 키워드가 적힌 카드를 붙여 놓고 옆에는 ‘Gold Winner(금메달은 내 것)’라는 카드를 하나 더 붙였다.

칸 광고제에서 은상을 받은 작품. 오른쪽의 스크롤바를 내리면 40명의 아이들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이 연출된다.
잠이 왔다. 시차 적응이 안 된 데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것 같았다. 한 시간만 자자. 알람 시계를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밤 12시.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호텔방에 있으면 잠이 올 것 같아 로비로 나갔다. 행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회의한 끝에 아이디어를 결정했다.

17일 오전 6시,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대회 부스장으로 향했다. 일본팀이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어진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심플, 솔루션’은 충족됐지만 ‘파워풀’하지 않았다. 피곤하고 힘이 빠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신석진 씨는 최중식 씨한테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생각이다. 심사위원들의 의도와 기대에서 벗어나지는 않되,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자.” 이 한마디가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둘은 정신을 재정비하고 다시 매달렸다. 점심도 먹히질 않았다. 그러다 오후 4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플래시 부문에서 버그가 생긴 것. 플래시가 주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버그가 생기면 치명타다. 눈앞이 캄캄했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진땀이 흘렀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자는 생각에 이것저것 만졌다. 그러다 우연히 버그가 해결됐다. 시계를 보니 7시, 마감 한 시간 전이다. 제출에 의미를 두고 작업을 완료했다. 8시 1분, 드디어 끝났다. 온몸의 맥이 탁 풀렸다. 심사위원이 다 됐냐며 다가왔다. 둘의 작업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는 심사위원의 반응에 기분이 반전됐다.

두 사람의 작품은 이렇다. 아름다운 여자가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포즈를 취하고, ‘$1 Drink’라는 카피가 쓰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오른쪽에는 아쿠아 스타일의 스크롤바가 눈에 띈다. 사용자가 스크롤바를 내리면, 물 부족 국가의 아이들 얼굴이 좌르르 올라간다. 그리고 ‘40 Children Drink’라는 새로운 카피로 끝난다. 여자가 기부한 1달러어치의 물이 40명의 아이들을 살린다는 내용.

칸 국제광고제의 수상작 발표 순간.

삶의 재미 잃지 않아야 창조적 발상 나와

신석진 씨는 홍익대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입사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신입사원이지만 이력이 간단치 않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제일기획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기본기를 다졌고, 그때 인정을 받아 학생 신분으로 단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 애니콜의 ‘talk, play, love’ 서체가 그의 작품. 입사 직후 S-Oil, 삼성화재 애니카, 던킨도너츠, 맥심 아이스커피 광고 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굵직한 역할을 해왔다. 신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광고 제작자의 세계. 카피라이터나 광고 디자이너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그에게 창조적인 발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물었다.

“입사하자마자 충격을 받았어요. 깜짝 놀랄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겐 발상의 소스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죠. 아이디어는 백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영상, 느낌과 경험 등이 다 재료가 되는 거잖아요. 그때부터 아이디어 재료를 얻기 위해 오감을 다 열었어요. 안 보던 <개그콘서트>, <무한도전> 같은 TV도 보고, 영화를 하루 한 편 이상씩 보고,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관찰하면서 라디오도 듣고, 무가지 신문도 봤어요. 식당에 가서는 메뉴판 하나도 그냥 흘려 보질 않았죠.”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위한 다음 단계는 망각”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주제에 너무 몰입하면 생각이 묶여요. 대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되, 그 다음엔 잊어버려요. 그리고 탁 트인 공간에 나가 자유롭게 생각하는 거죠. 가령 노란색이면 풍선, 풍선이면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배우는 누가 있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한팀으로 참가한 최중식 씨와.
그는 인터뷰 내내 ‘재미’라는 말을 많이 했다. 늘 재미를 찾아 기웃거리고, 주위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기 위해 구상한다고. 얼마 전에는 자신의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해 한 명씩 선물을 주고, 퀴즈를 푸는 사람에게 특별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단다. 그에게 가장 재미있는 건 ‘사람 사귀기’. 천태만상인 사람만큼 재미있는 연구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적 영감의 원천은 사랑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사 첫날 한 선배가 ‘많이 사랑해 봐라. 그래야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생긴다’고 하셨어요. 맞는 것 같아요. 한 대상을 미칠 듯이 좋아하고, 죽을 듯이 아파해 봐야 다른 세상이 보여요.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친구에 대한 우정이든 광고에 대한 애정이든. 사랑은 열정과는 달라요. 열정은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지만 사랑은 대상과의 상호 교감이 중요하잖아요.”

사진 : 장성용
  • 200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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