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햄 만든 한경대 최일신 총장

우리가 만든 햄이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사진 김선아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육가공제품 박람회인 ‘2007 프랑크푸르트 식육.육가공박랍회(IFFA)’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박람회 기간 중 개최된 국제 품평회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무려 9개 부문의 상을 휩쓴 것. 이 대회에서 국내 기업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무엇보다 햄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쟁쟁한 업체들을 물리치고 거둔 수상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햄을 만든 회사는 경기도 안성에 자리 잡고 있는 한경햄. 한경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안에 만들어진 교내 벤처기업이다. 특별한 마케팅도 없이 입소문만으로 프리미엄 햄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한경햄을 만든 사람은 한경대 최일신 총장. 한경햄은 총장에 선임되기 전인 2003년 4월 설립한 것으로, 지금은 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물론 총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에는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IFFA가 한경햄을 살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대회에서 수상한 덕분에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것이 고스란히 홍보 효과로 이어져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상을 타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어요. 우리나라보다 기술이 앞선다는 일본도 이 대회에서 동상을 탄 게 전부이니, 기대를 안 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죠. 그래서 제품만 출품하고, 사람은 안 갔어요. 돈이 없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들은 낭보라 더 감개무량했지요.”

그는 “마침 회사가 한창 힘든 때이기도 해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며 “사업은 확실히 아이디어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짓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확신도 있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한경햄을 설립하기 전까지 그가 걸어 온 길은 사업과 무관했다. 어려서부터 농부가 되겠다고 생각해 일부러 농업고등학교를 선택했고, 한경대의 전신인 안성농업전문대학을 마쳤다. 한동안은 자신의 바람대로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서른을 앞두고 그는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며 훌쩍 일본으로 떠났다.

그가 선택한 전공은 육가공학.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본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친 그는 모교로 돌아와 강단에 섰다. 처음에는 가르치기만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것이 한경햄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탄탄하게 버티고 있는 햄 시장에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진 그는 그들과의 맞대결 대신 ‘수제’와 ‘고급’이라는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첫 번째 기준은 좋은 재료잖아요. 우리는 신선한 냉장육, 그것도 HACCP(식품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를 모두 통과한 위생적인 도축장에서 잡은 고기로만 햄을 만듭니다. 고기 함량도 97% 이상이에요. 당시 웰빙 바람을 타고 햄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많이 퍼졌는데, 정말 제대로 잘 만든 햄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초기에는 실패도 많았다. 교과서대로 만들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버리기도 여러 번. 모방이 가장 좋은 창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는 결국 독일에서 햄, 소시지 분야의 마이스터를 초빙했다.


6개월간 밤낮으로 우리 입맛에 맞는 햄 연구

그는 “어떤 분야든 오랜 세월을 거쳐 쌓은 기술을 단숨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독일의 뛰어난 기술을 이용해 우리 입맛에 맞는 햄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짠맛을 줄이면서 고기 단백질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포인트. 건강에 좋지 않은 발색제를 최소화하면서도 세균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도 과제였다. 이 때문에 창업 이후 6개월간 밤을 낮 삼아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원하는 맛을 찾을 수 있었다. 한경햄은 첫맛은 심심하지만 씹을수록 담백하고 햄 특유의 텁텁한 뒷맛이 남지 않는 것이 특징. 전분을 전혀 넣지 않아 고기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촉촉하고 신선하다. 한경햄 홈페이지(www.hanham.co.kr)와 우체국 쇼핑(mall.epost.go.kr), 갤러리아 백화점과 한남 슈퍼체인을 통해 16종의 햄과 소시지를 판매 중이다.

교수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로 비칠 수도 있는 햄 회사 설립에 대해 그는 “대학은 그 산업의 10년 혹은 20년 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가능성을 보고 프리미엄 햄 시장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또 축산 분뇨,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처리시설을 국내 대학 중 가장 먼저 설립했고, 친환경 농·축산물 인증기관도 유치했다. 올 4월 말 한경대 인근에 선보일 플로랜드도 그의 아이디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던 한경대 부설 실습 농장을 꽃동산으로 바꾼 것으로, 총 10만 ㎡에 색색의 꽃을 심어 장관을 이룬다.

“내일은 러시아로 떠납니다. 러시아에 발을 디딘 지는 벌써 10년도 넘었죠. 식량자원 확보 차원에서 이제는 외국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아무르 주는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우리나라의 7배나 됩니다. 그곳에서 지금 우리 졸업생이 5000만 ㎡의 땅을 계약해 콩, 밀 등을 재배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들여오는 곡물은 요즘처럼 사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농업이 자꾸 위기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지금이 우리 농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끝없이 미래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그의 모습은 교수보다 사업가에 가까웠다. ‘CEO 스타일’이라는 말에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학자와 사업가는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아요. 한쪽은 논문으로, 한쪽은 사업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상상력을 키우는 것만 다를 뿐이죠. 이제 한경햄이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오르면 경영다각화도 생각 중입니다. 제가 직접 키운 돼지를 햄으로 만들어 파는 식으로요. 돈을 많이 벌어 연구비도 내놓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좋은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만큼 나누는 기쁨도 크니까요.”
  • 2008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

201908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8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