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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인터뷰 | 일본 최고의 장인 (23) (주)도쿄신유 사이토 마사루 사장

청각장애인을 위한 제품 개발하는 80세 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구세주’ 사이토 마사루(藤勝) 도쿄신유(東京心友ㆍ80세) 사장. 그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청각장애인으로부터 팩스편지가 날아온다. 모든 팩스에는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라는 감사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앞에 쌓인 팩스는 꼭꼭 눌러 담아도 수 박스에 달할 정도. 감사 팩스가 말 그대로 산을 이루고 있다.

의사도 아닌 그가 일본 청각장애인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은 다기능 손목시계 ‘시루워치(Silwatch)’를 발명해 세상에 내놓으면서부터. 개발에 착수한 지 7년 만인 1999년 상품화에 성공한 ‘시루워치’는 청각장애인에게 진동과 문자로 정보를 제공하는 손목시계다. 시루워치란 일본어로 안다는 의미의 ‘知る’에 시계라는 뜻의 영어 ‘워치’를 조합한 것. 즉 ‘청각장애인이 알게 되는 시계’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진경보, 화재경보,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현관 벨이나 휴대전화 소리에 대한 정보가 청각장애인이 차고 있는 이 손목시계에 전해지면 진동이 울리며 점자로 된 손목시계 문자판에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는 시스템. 청각장애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와 같은 제품이다. 그는 이 시계로 2001년 도쿄도 벤처기술대상 장려상을 비롯해 우량기업상, 경영혁신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시스템이지만 이제는 매출의 70%가 기업의 생산관리와 안전관리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진동 알람 손목시계, 화재경보기, 청각장애 운전자를 위한 긴급자동차 접근통지시스템 등 다양한 제품 개발로 이어지면서 라인을 풀가동해도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어 납기를 연장하거나 분납으로 해결할 정도다. 영국과 미국 등지로의 해외 수출도 늘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토요가도는 1만 세트를 구입해 전 점포에 설치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도요타 자동차와 닛산 자동차 등에서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시계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69세 때였다.

“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그 나이에 무슨 돈 욕심이 있었겠어요? 단지 청각장애인의 삶을 개선해 보고자 시작했는데, 이렇게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감사를 받는 제품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시루워치’는 사이토 마사루의 ‘인간승리’라고 말한다. 도쿄 도심의 오피스 가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시루워치’. 이 기기는 손목시계로 만들어지기까지 무선 기술 등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그는 여든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제품에 대해 정열적으로 설명한다. 설명에 열중하던 그가 가끔 귀로 손을 가져가더니 “보청기가 없으면 사람 말을 전혀 듣지 못해요”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 청각장애인인 것. 그는 “65세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무사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도움이 컸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 후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모든 것을 아내가 다 해주었는데 혼자 남았으니 내가 직접 해야 하잖아요. 집에 불이 켜져 있는데 택배가 와도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까 오해를 사고, 삶이 녹록하지 않더라고요.”

시루워치 개발에 매달린 건 그때부터다. 집 한쪽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무선이나 기계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독학으로 무선 시스템을 공부했다.

“필요가 최대 스승이라고 하지요. 무선의 ‘무’자도 몰랐던 내가 무선 수신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지요.”


계속되는 역경이 나를 앞으로 나가게 해

일본 대기업에 근무하는 무선 전문가인 사위에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연구해도 10년에서 15년은 걸릴 것이란다. 기술적인 최대 난관은 조그마한 손목시계 안에 안테나를 집어넣는 것과 배터리 수명을 길게 하는 것. 작은 손목시계에 안테나를 내장하면 부품끼리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수신감도가 떨어져 정보전달이 불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소한 6개월 이상 전지의 수명을 유지해야 하는데, 일반 전자시계의 전지로는 공간이 좁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손목시계 타입을 고집했다.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밖에 차고 나가도 위화감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또 잃어버릴 염려도 적잖아요”라고 설명한다.

드디어 부품 배열을 바꾸고 베어침을 사용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5cm 정도의 안테나를 내장하고 8개월간 전지 수명이 유지되는 시루워치 개발에 성공했다. 통신거리도 170m, 중계기를 설치하면 300m를 더 연장할 수 있었다. 6년 전 그는 대장암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대형수술을 받았다. 건강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그는 원래 몸이 튼튼하지 못하다. 평생 병과 싸워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한 게 어렸을 적 기억의 전부”라고 회상한다.

1남 6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소화기 계통이 약해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잔병이 잦은데다 중증 중수염을 앓은 후에는 약물 후유증으로 청각을 거의 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50세가 넘자 보청기가 없으면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워낙 병치레를 많이 하다 보니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의대에 진학했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해 오랜 휴학 끝에 결국 의사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그는 뒤늦게 경제학부로 전과해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듣지 못하니 임상의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대장암이 완치됐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암 아닌가. 그러나 그는 상담이 들어오고 제품에 개선할 점이 있다면 여든 고령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현장을 찾아간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업이라면 재미가 없을 거예요. 그 중심에 인간이 있어야지요. 그래야 밝은 웃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병과 싸웠던 기억밖에 없다는 젊은 날의 좌절, 청각장애, 부인과의 사별, 대장암과의 투병 속에서 그가 이뤄 낸 것은 바로 ‘청각장애인의 밝게 웃는 얼굴’이다. 그의 꿈은 앞으로도 인간에게 유익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청각장애인의 생활에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아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요. 여든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인간에게 유익한 제품은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웃게 한다는 것을 이 나이에 새삼 깨달았어요.”

그는 지금도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매일 아침 9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산 속에 들어가 기분을 전환하며 제품개량과 신제품을 구상한다. 그는 유학생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6년간 유학한 경험이 있는 딸이 일본에 유학온 학생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면서 집에 각국 유학생들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마음이 젊다. 여든의 그는 시행착오를 즐기라고 충고한다.

“앞으로도 시행착오를 거듭하겠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자 장인정신 아닐까요?”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NHK 국제방송국, 닛케이 라디오 캐스터로 활동 중이며《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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