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 이종명

상식 파괴한 원색가구로 신세계를 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금빛 블리치로 군데군데 물들인 머리에 메탈 장식의 검정 가죽 재킷, 달라붙는 청바지에 백구두. 경기도 분당 이종명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종명 씨(44세)는 “중국에 가면 다들 나를 한류스타인 줄 알아. 시선이 팍팍 꽂히는 거야” 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종명 스튜디오는 동화 속 세상 같았다. 연두색 장롱에 파란색 수레, 알록달록한 소품들과 영롱한 비즈 장식….

영화 〈중독〉에 등장하면서 화제가 됐던 ‘이종명 가구’는 원색 수공예가구의 대명사가 됐다. 이종명 가구는 화려한 럭셔리 가구도 싫다, 심플한 젠 스타일 가구도 싫다며 자신만의 독특한 가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몰이 중이다.

그의 가구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최근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신전 중앙에 있던 거대한 조명도 그의 작품이고, 영화 〈은장도〉, 〈6년째 연애 중〉 등에도 그의 가구가 등장한다. 2006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가구박람회에서 호평을 얻으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고, 올해 안에 일본 도쿄에 직영점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페인트를 칠하고, 유화물감으로 꽃과 나비를 그려 넣은,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를 만드는 이종명 씨. 그의 가구는 상식 파괴와 편견 타파의 산물이다. 그는 스타일처럼 통통 튀는 말투로 말했다.

“왜 모든 가구는 무채색이어야 할까?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저 가구가 캔버스라면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3m 길이의 긴 식탁에서 둘이 앉아 밥을 먹으면 어떨까? 그게 빨간색이면 더 좋겠는데. 인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몽상가의 꿈같은 생각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넓은 가구를 캔버스 삼아 빨강겿캘?연두 페인트를 묻혀 붓질을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나비, 자동차와 비행기 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 넣었다. 대중에게 어필할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묻자,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한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았어요.”

공간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가구, 그래서 그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의 혼이 묻어 있는 가구. 이종명 가구를 보고 있으면 그간 우리는 가구가 주는 인간다움의 가치에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든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의 가구는 하나의 미술 작품 같아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을 치유해 주듯 따스함이 전해 오는 듯하다. 이 느낌을 전하자 그는 몇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제 가구가 치유기능도 한대요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엄마가 찾아왔어요. 제 가구를 아이 방에 두었더니 아이가 행복해하더래요. 그래서 다시 가구를 사러 온 거예요. 저희 가구가 비싸잖아요. 돈 안 받고 그 아이를 위한 장난감도 만들어 줬어요. 아픈 아내를 위한 선물로 사러 온 미대 교수님, 아픈 엄마 방에 놓아 드리겠다며 가구를 사러 온 두 딸도 있었어요.”

홍대 미대 가구조형학과를 나와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이종명은 일찌감치 목수를 꿈꿨다.

“대여섯 살부터 항상 손으로 뭔가를 만들던 기억이 나요. 종이와 천 쪼가리를 오리고 붙이고, 그림을 그려 넣었어요. 그렇게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구가 되더라고요.”

‘이종명 스타일’ 가구가 만들어지기까지 온갖 연구와 실험을 거쳤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마음속에 있는데, 왜 표현이 안 될까? 뭘 써야 할까? 오만 재료를 사다가 해봤어요. 철겚釜?끈겷뗬?등.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또 재료를 바꿔서 해보고. 그러다 페인트와 유화물감이 생각났어요. 수성과 유성은 섞이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가구에 적용한 거죠.”

그는 프라이드가 강했고, 그 프라이드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림은 늘 잘 그렸고, 손끝이 매워서 풀도 유난히 잘 붙였고, 남들이 잘 못 접는 것도 칼집 내서 잘 접었고, 공부도 아주 잘해 홍대를 수석 졸업했다”고 자랑한다.

동석한 아내 성지은 씨가 “이종명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잘난 체가 심해 거부감이 일었다”고 말해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내 성씨는 잡지에서 우연히 이종명 씨의 기사를 보고 ‘이 사람이 내 남편이구나’ 하고 운명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만난 지 보름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두 사람. 분홍 재킷에 두건을 두른 성씨의 옷차림은 이종명 가구를 닮아 있었다. 성씨는 이종명 씨를 “사고방식의 틀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며 “감수성과 정신연령이 1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 나이에 감수성이 살아 숨 쉬는 가구를 만드냐고요? 저는 여우 같은 사람이에요. 제가 필요한 것만 콕콕 집어서 하고, 원하는 결과를 딱 얻어요. 제가 원하던 콘셉트의 가구를 만들었잖아요. 그 다음엔 그 콘셉트가 유지되게끔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이젠 웬만큼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이종명 가구는 가내 수공업 형태로 제작된다. 큰형과 셋째 누나, 육촌 형, 사촌 동생 등 12명이 모여 만든다. 모든 과정이 수공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생산량이 적어 비싸다. 콘솔 의자 하나에 30만 원이 넘고, 웬만한 서랍장은 몇 백만 원을 호가한다. 그가 만든 조명은 한 작품에 3000만 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종명 가구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초 베트남에 ‘이종명 가구공장’을 차렸기 때문.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지지만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판매가를 낮출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공급량이 늘면서 올 3월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6월엔 인천공항 면세점에도 숍을 연다. 명동의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에서도 줄곧 러브콜이 온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에서 영감을 얻고, 사춘기 시절 읽은 세계명작 소설에서 이미지를 차용한다. 요즘엔 추리소설을 읽으며 도시적인 영상을 상상하는 재미에 빠져 있단다. 공장에서 붕어빵처럼 찍어 내는 패스트 가구가 아닌,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드는 슬로 가구인 이종명 가구. 그의 가구는 인간적인 감성에 목말라하는 디지털 시대에 더 힘을 발하는 것 같다.

사진 : 이창주

| 아내 성지은 씨, 아들 언수와.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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