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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소형 마이크로캡슐 내시경 ‘미로’ 만든 KIST 김태송 박사

황당한 꿈이라고요? 도전하면 현실이 됩니다

“이제 어느 나라, 어느 연구진이든 뛰어난 기술을 갖게 된 시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뛰어드는 용기지요.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1987년 개봉한 멕 라이언 주연의 영화 〈이너스페이스〉.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캡슐 로봇 잠수정이 살아 있는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소화기관과 혈관을 따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인체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몸속에 로봇을 집어넣는다는, 조금은 황당한 발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매혹시킨 전형적인 할리우드 SF영화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난 2007년, 이 영화를 현실로 만든 한국인이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 김태송 박사(49세ㆍ사업단장)가 만든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 ‘미로(MiRO)’. 높이 1.1cm, 길이 2.4cm로 팥알 크기만 한 이 내시경은 영화 <이너스페이스>에 등장하는 초소형 로봇 잠수정과 흡사하다. 사물을 10억 분의 1m 이하로 나누는 기술인 나노기술과 마이크로 로봇기술, 그리고 의학 지식까지 접목한 ‘미로’의 연구 개발은 1999년 시작됐다.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과 연구역량을 갖춘 기업가형 연구책임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시작된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첫 번째 지원을 받아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KIST뿐 아니라 연세대 의대, i3system 등 산ㆍ학ㆍ연 200여 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프로젝트로, 김태송 박사가 진두지휘했다.

‘미로’의 탄생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IST에서 재료공학 분야를 연구하던 김태송 박사는 해외 학회에 참가할 때마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바이오 기술과 마이크로 기술을 접목하고 있는 데 대해 도전과 갈증을 느낀 그는 미국으로 떠났고,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마이크로테크놀로지랩’에서 폴라 교수(현재 미 국방성 프로그램인 DARPA에 참여 중)를 만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에 눈을 떴다. 폴라 교수는 마이크로 로봇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로 기술과 의료기술의 접목을 시도한 인물이었다. 김 박사는 “이때부터 우리 몸에 마이크로 로봇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항상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양한 아이템을 생각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내시경이었다. 미국에서 일 년간 연구하고 돌아온 그는 내시경과 마이크로 로봇을 어떻게 결합시킬지 고심했다. 한국은 그러나 의료공학에 있어 황무지였다.

“대학 몇 군데에서 의료기기 연구가 이루어질 뿐, 의료기기라고 해봐야 주사기를 만드는 정도였습니다. 국산화로 한때 화려하게 주목받던 의료용 영상촬영장치도 있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외국에서 원천기술을 들여온 후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이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캡슐 내시경을 만들겠다는 그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처음 연구 개발을 시작할 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되지도 않을 일을 벌이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 김태송 박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과학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독일에도 우리가 시도하는 ‘먹는 내시경’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캡슐을 먹으면 그게 스스로 인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자동으로 외부로 전송해 주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요. 하지만 한국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로봇과 의료기기의 미래 트렌드를 정확히 예측한 정부와 연구진의 기획이 ‘미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2000년부터 본격적인 연구 개발을 시작한 ‘미로’는 7년 만인 2007년,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유럽의 CE(안전ㆍ건강ㆍ환경 및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유럽규격)로부터 인증을 받아 상용화에 성공했고, 현재 포르투갈과 스웨덴, 중동과 호주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모두가 믿지 않았던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크기와 화질, 전송방식에서 가장 앞서

영화 같은 일을 현실화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뛰던 그는 2001년, 한동안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마이크로 캡슐형의 먹는 내시경을 개발해 미국계 기업인 기븐이미징사가 필캠(PillCam)이라는 이름으로 곧 시판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것. 그는 그러나 이 소식을 재앙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캡슐 내시경을 최초로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해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한동안 허탈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봐라. 우리의 생각이 황당하고 무모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 연구진은 앞서 뛰고 있다’고 강하게 설득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일로 오히려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고, 2003년 1월 ‘미로’의 시모델이 나왔다. 김 박사는 예상보다 빨리 시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경쟁자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마이크로캡슐 내시경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미국계 기업 기븐이미징, 일본의 올림푸스, 중국의 오몸과 한국 등 네 곳. 이 중 크기와 화질, 영상자료의 전송방식 등에서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미로’의 기술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의 절대강자는 전 세계 시장의 41%를 차지하고 있는 필캠이지만 ‘미로’가 곧 필캠을 넘어설 것이라는 평가다. 김태송 박사는 필캠과 미로를 책상 위에 나란히 꺼내 놓고 둘을 비교해 가며 설명했다.

“‘미로’의 성능과 진단효과는 경쟁모델보다 단연 우위에 있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것으로 알려진 필캠(높이 1.1cm, 길이 2.6cm)보다 길이가 2mm 짧습니다. 캡슐 내시경을 삼킬 때 단 1mm의 차이도 환자들에게는 크게 느껴집니다. 작을수록 훨씬 삼키기가 쉽지요. 또 내시경이 보내는 정보의 양과 화질에서 진단의 질이 결정되는데, 필캠은 몸속에서 8시간 동안 다니며 6만 화소에서 최대 9만 화소의 사진을 초당 두 장씩 찍어 보내는 데 비해 ‘미로’는 13시간 동안 10만 화소의 사진을 초당 세 장씩 찍어 보여줍니다. ‘미로’를 활용하면 보다 선명하고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미로’의 경쟁력은 김 박사팀이 개발한, 몸속에서 찍은 영상자료를 외부로 전송하는 통신기술에도 있다. ‘인체전도 통신 방법’이라 불리는 기술로, 인체의 미세한 전기자극을 통해 외부와 통신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김태송 박사팀과 미국의 MIT만이 가진 원천기술이다. MIT의 기술이 인체 표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데 비해 김 박사팀의 기술은 몸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세계 학계와 의료기업, 전자ㆍ통신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해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안테나를 없애 지금보다 더 작은 캡슐 내시경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기술은 의료공학뿐 아니라 미래한국의 성장 동력인 통신과 전자산업의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김태송 박사는 “항상 준비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먼저 움직여야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 나라, 어느 연구진이든 뛰어난 기술을 갖게 된 시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뛰어드는 용기지요.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사진 : 이창재
  • 200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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